[현장에서] '부채 공화국' 폭발 타이머 째깍째깍

2024-02-07 05:00

가계부채 2200조원, 기업부채 2700조원, 정부부채 1035조원.

'부채 공화국'이라 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말 원화 기준 주요 경제 주체인 가계와 기업, 정부의 부채를 합산한 비금융부문 신용은 5956조9572억원으로 집계됐다. 국내총생산(GDP)의 273.1% 규모다. BIS가 아직 지난해 3분기 말 자료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2분기 말 기준 총부채가 1년 새 4% 증가한 것을 감안할 때 이미 3분기 6000조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가계·기업·정부 부채를 더한 부채 규모가 6000조원을 돌파한 건 사상 처음이다.

속도도 문제다. 총부채 상승 폭이 다른 국가에 비해 유난히 가파르기 때문이다. 실제 GDP 대비 총부채 비율은 지난해 2분기 말 기준 전년 동기 대비 4.9%포인트 높아진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31개국은 오히려 14%포인트 축소됐다. 재정건전성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세계적인 추세에 한국만 역행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산 넘어 산, 오는 4월 총선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대한민국에 또다시 무차별 '돈 풀기' 망령이 드리우고 있다. 가뜩이나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한국 경제에 빨간불이 커졌지만 정치권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선심성 정책 경쟁에 혈안이다. 

정부와 여당은 새해 벽두부터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를 시작으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확대, 임시투자세액공제를 1년 연장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 대주주 양도소득세 기준 완화와 신용카드 사용액 증가분에 대한 소득공제율을 상향하는 등 대규모 세수 감소가 불가피한 정책들을 줄줄이 내놓고 있다. 야당도 이에 질세라 신혼부부 1억 대출, 경로당 5일 무료 점심 등 표심을 잡기 위한 선심성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나라의 미래를 외면한 '매표(買票) 정치'에 제동을 걸지 못할 경우 빚으로 쌓아 올린 우리 경제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눈앞의 이익에만 집중해 아둔한 정책을 일삼는다면 결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나랏빚은 미래 세대에 부담을 떠넘겨선 안 된다.

이제라도 여야의 선심성 정책 경쟁을 중단하고 재정 낭비를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손 놓고 있다가는 그리스 국가부도 사태의 전철을 밟을 수 있는 상황이다. 그리스는 1970년대에 연평균 5.5%의 성장률을 자랑했지만 1981년 사회당 정부 출범 이후 현금복지 확대, 최저임금 과속 인상 등 선심성 복지 정책을 남발하면서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은 1983년 33.6%에서 10년 만에 100%를 넘어서며 결국 국가가 부도를 냈다. 

한국도 안전한 상황은 아니다. 재정 위기로 국민이 고통을 당하지 않으려면 재정에 대한 제동 장치가 있어야 한다. 정부는 이제 건전·긴축재정을 말로만 외칠 게 아니라 강력한 의지로 실천해야 할 때다.
최예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