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는 정비사업장] '결국 소송까지' 몸살 앓는 재개발·재건축, 해결할 묘수 없나

2024-01-23 18:07

서울 주택가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전국 정비사업 현장 곳곳에서 공사비를 둘러싼 건설사와 조합의 갈등이 법정 다툼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최근 물가 급등으로 건설사는 수익을 위해 공사비 인상을 요구하고 조합은 분담금 부담을 피하기 위해 갈등이 발생하는 탓이다.

업계에서는 공사비 분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계약 시점부터 분쟁 여지를 사전에 방지하거나 분쟁을 중재할 강력한 권한을 지닌 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조합이 부동산원에 인상된 공사비가 적정한 지 검증해 달라는 요청이 30건으로 집계됐다. 한국부동산원이 적정 공사비 검증 업무를 시작한 2018년에는 1건에 불과했으나 2020년에는 13건, 2021년에 22건을 기록한 뒤 2022년에는 32건에 달했다. 

이는 공사 비용이 크게 올라 공사비 인상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인상 폭도 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공사 현장에서 활용되는 원자재와 재료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공사비가 크게 올라간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진단이다. 지난 2020년 10월 120 수준이던 건설공사비지수는 지난해 10월엔 153.73을 기록하는 등 급격히 높아진 상황이다. 국토교통부가 표준시장단가 산정을 위해 지난해 건설 현장에서 시행된 공사 중 공종별 시공비용(재료비·노무비·경비)을 추출한 결과 2022년 대비 공사비가 7.3% 상승했다. 

대규모 공사비 문제가 시공사와 조합의 법정 다툼으로 비화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 사례가 눈에 띈다. 조합은 지난해 11월 분담금이 높다는 이유로 시공사 GS건설과 계약을 해지했다. 이에 같은 해 12월 GS건설은 조합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관계자는 "코로나19 이전 체결된 계약이 최근에 진행되면서 공사비 등을 둘러싸고 시공사와 조합 간 갈등이 많아진 것 같다"며 "사업장마다 다르겠지만 계약 당시나 관리처분계획 인가시점, 전년도 등과 비교했을 때 공사비 증가폭이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50%대에 달하는 경우도 나온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공사비 인상 갈등 여파로 재개발·재건축 공사가 중단되는 사업장이 속출하면서 23일 공사비 분쟁을 완화하기 위해 표준공사계약서를 내놓았다. 표준계약서에는 시공사가 제안하는 공사비 총액을 바탕으로 시공사를 선정하되, 계약 체결 전까지 시공사가 세부 산출내역서를 제출토록 의무화해 공사비 근거를 명확히 한다는 방침이다. 또 기존에는 착공 이후에는 물가 변동을 반영할 수 없도록 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착공 이후에도 특정 자재 가격이 급등하는 경우 물가를 일부 반영할 수 있도록 현실적 부담을 완화했다. 

다만 표준계약서 도입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공사비 인상과 관련해 시공사와 조합이 서로 입장이 다른 상황에서 정보 공유만으로는 양측의 불만을 잠재울 수 없다는 시각이다.

업계에서는 보다 강력한 강제권한을 가진 조정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국토부의 건설분쟁조정위원회 등이 조정기구로 활동하고 있지만 강제권한이 없어 유명무실하다는 시각에서다. 또 한국부동산원의 공사비 검증 결과도 권고사항이어서 큰 효과가 없다는 진단이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소송 결과 법정 판결이 나오는 것밖에 강제력이 없어 분쟁 조정의 한계가 크다"며 "현재로선 공사비로 인한 사업별 갈등에는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