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환의 Next Korea] 민둥산의 기적,…아직 절반의 성공
2024-01-10 06:00
한·독산림협력 50주년 특집
“우리는 언제 독일처럼 될 수 있는가! 우리 산이 푸르게 될 때까지 다시 유럽 땅을 밟지 않겠다.”
60년 전 1964년 12월 독일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스스로에게 맹세한 말이다. 또 다른 맹세는 경제강국 도약이었다. 박 대통령은 독일 중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뒤스부르크시에 위치한 함보른 탄광 강당에서 약 250명의 파독 간호사·광원들 앞에서 원고 없이 즉흥 연설을 했다. 그는 “비록 우리가 생전에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남들과 같은 번영의 터전이라도 닦아 놓자"고 눈물로 호소했다. 박 대통령은 서독 방문을 계기로 대한민국 역사를 바꿀 ‘독일 구상’에 착수해 착착 실행에 옮겼다. 이는 가장 먼저 1965년 ‘한·일 국교 수교’에 이어 경부고속도로 건설, 포항제철 등 중화학공업단지 조성, 새마을운동, 그리고 산림녹화 등 5 가지 국가개조 프로젝트였다.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독일 총리에게 상업차관으로 약 1억5000만 마르크를 받은 박 대통령은 “우리도 반드시 라인강의 기적을 만들어내겠다”고 다짐했다. 파독 간호사·광부 약 1만8000여 명이 고국에 보낸 돈은 1억 달러가 넘었다. 우리 경제 발전의 종잣돈이 되었다. 독일 '라인강의 기적'은 대한민국 ‘한강의 기적’으로 이어져 우리는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도약했다.
박 대통령은 국가개조 5대 구상 중 가장 늦게 10년 후인 1973년부터 본격적인 산림녹화에 들어갔다. 국가발전 프로젝트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이다. 산림녹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계기는 50년 전 1974년 한·독 산림 협력을 체결하면서부터다. 박정희 대통령이 ‘국토녹화 10개년 계획’(1973~1982)을 세운 이듬해 가장 먼저 국내로 초빙했던 산림 전문가들은 하이노 폰 크리스텐 박사 등 독일 산림 전문가들이었다. 당시 국내 거의 모든 산은 오늘날 북한과 같은 민둥산이었다. 독일 산림모델을 기반으로 한국의 산야를 녹색으로 바꾸기 위한 혁명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1973년 산림녹화 선언 당시 ‘1982년까지 모든 국토를 녹화한다’는 거창한 목표만 세웠다. 하지만 막상 국내에는 조림 기술과 경험을 가진 전문가·기술자가 전무했다.
한·독 산림 협력은 2단계로 이뤄졌다. 말이 협력이지 독일의 일방적인 지원이었다. 먼저 제1단계로 1974년 ‘한·독 산림경영사업’ 협정(MOU)을 맺으면서 유럽 최고 산림강국 독일 산림 기술진이 한국에 왔다. 산림청 기록에 따르면 ‘한독산림경영사업소’를 설치해 경남 울주군 등에서 사유림 경영협업 시범사업에 착수했다. 당시 독일에서 파견되어 중장기적으로 체류한 산림 전문가들은 크리스텐 박사를 포함해 24명이었고, 재정 지원 금액은 53억1400만원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이들은 독일의 선진 산림지식과 기술인 숲나무를 가꾸는 조림·육림 기술을 전수하고 소산주들을 모아 협동조합을 설립해 산림 발전을 지원했다.
그렇게 한·독 산림 협력은 20년간 지속되었고 1993년 종결되었다. 이후 한·독 간 산림 분야 협력은 거의 사라졌다. 또한 독일에서 산림 분야에 유학한 한국 박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독일은 글로벌 산림 최강국으로 도약했다. 숲나무 현황과 활용에서 독일이 우리보다 앞서가고 있다. 숲 면적이 독일은 1108만헥타르(㏊), 우리는 637만㏊다. 독일 숲에는 나무가 빽빽해 ㏊당 임목 축적량이 321㎥로 900억그루가 자라고, 우리 땅에는 165㎥로 71억그루가 자란다. 우리 국토 63%가 숲이지만 목재 8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독일은 국토 32%가 숲이면서 거의 자급하고 있다. 독일은 연간 목재 생산량이 6803만㎥이고, 우리는 16배나 적은 420만㎥에 불과하다. 또한 독일은 신재생에너지로 목재가 차지하는 비율이 50%에 이르고, 우리는 약 13.9%에 불과하다. 독일은 산림 종사자가 110만명에 매출액 224조원, 우리는 61만명에 160조원(수입 포함)을 올리고 있다. 독일 바이에른주 산림청의 헤르베르트 보르헤르트 박사는 “독일에서 산림산업은 자동차산업과 견줄 정도로 큰 산업으로 숲나무 클러스터 정책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숲나무가 좋은 일자리 창출과 국가경제에 크게 기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북대 박성준 교수 등 국내 산림 전문가들은 우리 산림녹화를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한다. 독일 등 선진국에 비해 숲과 나무의 경제적 가치 및 활용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은 독일과 대한민국이 숲나무 활용에서 차이가 나는 가장 큰 원인을 산림 전문가들은 “독일은 숲나무를 ‘가꾸고 관리’하는 철학에 기반하고 있고, 우리는 숲나무를 심고 방치하는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수치가 임목축적량과 숲길 개설 면적이다. 독일 숲길은 ㏊당 54.4m인 데 비해 한국은 ㏊당 3.97m에 불과하다. 숲길이 부족하다 보니 산불 진화에 고충이 큰 데다 동식물의 자유로움 이동을 막고 있다. 숲을 잘 가꾸고 숲길이 잘 건설된 독일에서는 산불이 거의 나지 않고, 산불 규모도 우리에 비해 아주 미미하다. 반면 우리는 자주 산불이 나고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잡목과 덩굴로 인해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또한 독일은 숲길뿐만 아니라 산에 케이블카를 많이 건설해 전 국민 산림복지에 충실하고 있다. 이를 통해 어린이, 노약자와 함께 전 가족이 숲나무에서 힐링하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즐기고 트레킹을 한다. 심지어 독일·스위스 알프스산 꼭대기에 호텔이 있고, 해발 3000m까지 인터라켄시가 시내버스를 운행한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숲나무을 가꾸기 위해 나무 수종을 교체하고 숲길을 내는 것을 환경단체들과 일부 정치인들이 반발하는 것도 문제다. 독일 바이에른주 산림청의 보르헤르트 박사는 필자에게 “독일 환경단체들은 무분별한 벌채에는 반대하지만 숲 가꾸기와 숲길 조성에는 찬성한다”고 말했다. 우리 국립산림과학원은 “숲을 가꾸면 나무가 42% 늘어나고, 이를 통해 이산화탄소 포집이 42% 늘어나며, 물을 머금어 불이 날 가능성도 43% 줄어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남성현 산림청장은 ‘산림 르네상스’를 내걸고 숲나무 가꾸기와 목재 활용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해 10월 필자는 산림청 간부와 함께 독일을 방문해 임업부·산림청 관계자들과 만났다. 향후 바람직한 한·독 산림 협력에 대해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독일의 임업부 크리스토프 나이첼 박사는 ‘한·독 공동 산림기술’ 개발을 제안했다. 유럽연합 및 독일에 관련 예산이 있고, 기후위기로 인한 그린 대전환과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디지털 대전환에 한·독 공동으로 산림 신기술을 개발해 기후위기 대응에 앞장설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도 겪고 있는 현상인 제대로 단풍이 들기도 전에 파란 나뭇잎이 떨어지는 병세를 막는 기술 개발이다. 또한 친환경에너지 목재 활용 등 다양한 부문에서 공동 연구개발을 진행할 수 있다. 둘째, 과거 우리가 일방적으로 독일에서 전문인력 및 기술을 지원받았다면, 이제 산림강국이 된 우리도 한·독 상호 간 산림인력을 교류하는 게 바람직하다. 우리 산림 전문가들도 실력을 갖추고 있다. 독일도 상호 교류를 원하고 있다. 이를 위해 우리 산림청 국장·과장급 10여 명을 선발해 독일 산림청 및 현장을 방문하고 산림 전문가들과 미팅 및 세미나를 개최하는 것이다. 셋째, 한·독 간 산림 관련 포럼 등 정기적인 산림 행사 개최와 상호 방문이다. 양국 최고지도자인 대통령, 산림청장, 산주,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국제 콘퍼런스 개최 등이다. 올해 한·독 산림 협력 50주년을 맞아 산림청이 행사를 준비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독 산림 협력 50주년을 기념해 대한민국이 독일을 뛰어넘는 산림최강국으로 도약하는 새로운 50년을 준비하는 원년이 되길 기대해 본다.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회장을 지낸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산림 대전환’을 강조한다. 기후위기로 잘 가꾸고 잘 관리해 최고 숲나무를 후세에게 물려주는 것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다.
필자 소개
국가비전전략가와 독일·4차 산업혁명 전문가로 활동. <넥스트 코리아> 등 넥스트 시리즈 8권 포함 20권 이상 집필한 작가다. 독일 본대학에서 언론학·정치학·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회·지자체·상공회의소·삼성전자 등 300회 이상 특강한 유명 강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