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환의 Next Korea] 초일류' 기업 만든 이건희 新경영 … '온고지신'에서 뉴삼성 비전 찾기
2023-12-11 06:00
“바꾸려면 철저히 바꿔봐, 농담이 아니야. 마누라와 자식 빼놓고 다 바꿔봐!”
올해가 대한민국 기업사를 바꾼 고(故) 이건희 회장 ‘신경영 선언’ 30주년이 되는 해다. 그는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최고급 캠핑스키호텔에서 신경영을 내걸고 삼성을 초일류기업으로 도약시켰다.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킨 그의 힘은 3 가지, 즉 비전을 갖춘 비장한 개혁의지, 현장 공부의 힘, 그리고 실적 내는 입체적 역량 등에서 나왔다. 먼저 삼성의 새 비전‘ 초일류기업’을 제시했다. 세계화라는 거센 파고가 닥쳐오는 전환기에 그는 “국제화하지 않고는 일류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외쳤다. 당시 삼성 수준은 ‘끓는 냄비 속 개구리’라고 진단하고 제2의 창업을 내걸었다. 영국 고급지 파이낸셜타임스는 이 회장을 ‘비전가’로 평가했다. 이는 독일 분단시절 ‘동방정책’ 데탕트로 통일의 씨앗을 뿌린 빌리 브란트 총리를 ‘비전의 정치인’으로 부르는 것과 견줄 수 있다.
이 회장은 당시 삼성 수준을 ‘이미 망한 회사’라고 진단하고 밀려오는 무한 국제경쟁시대에 세계 1위로 도약하기 위해 직접 삼성 말고삐를 잡았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보았지만 그는 비장한 개혁의지로 임직원들 정신·생활방식 개조에 착수했는데, 제조 최강국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시동을 걸었다. 독일은 이미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이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총리로부터 처음 산업화 종잣돈 상업차관을 확보한 나라고, 미래 국가 5대 프로젝트, 한일국교정상화, 고속도로건설, 중화학공업 육성, 새마을운동, 산림녹화를 구상한 곳이다. 이 회장 역시 독일에서 신경영 구상을 통해 삼성 개혁에 나섰다. 이병철 회장이 1986년 중앙일보에 기고한 신년특집 ‘부국론’에서 라인강 기적을 선도한 에르하르트 총리의 경제개혁을 높이 평가했고, 당시 이건희 회장이 중앙일보 이사였다. 독일은 7시 출근 4시에 퇴근하는 직장이 많았고, 복지국가답게 주 5일 근무제를 실시하고 있었다. 이 회장 역시 과감하게 독일처럼 ‘9-6’에서 ‘7-4’로 근무시간을 전환하면서 일하는 시간 변화를 통해 개혁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둘째, 살아있는 현장 공부의 힘이다. 이 회장은 1993년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동아·조선 등 4대일간지의 삼성 관련기사를 모조리 읽고, 경제잡지 7개와 경제지 2개, 그리고 일본 NHK 및 해외 수많은 다큐 등을 본다”면서 “하루 4시간만 잔다”고 말했다. 플라톤이 말한 ‘철인’의 경지다. 이 회장은 또 앨빈 토플러 등 국내외 수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할 뿐만 아니라 직접 외국 현장을 방문하고 임직원 현장으로 불러 공부하는 집념의 ‘통섭인’이었다.
2005년 중앙일보 전문기자였던 필자가 신년 특집으로 세상을 바꾸는 ‘미디어빅뱅’ 시리즈를 연재하고 3월에 책으로 발간했다. 이어 일본어·영어판으로 번역되어 ‘한류 선도자’가 되었다. 얼마 있지 않아 삼성에서 특강 요청이 왔고, 아침 7시에 시작하는 삼성사장단 앞에서 특강 하는 영광을 누렸다. 이 회장은 그만큼 새로운 현상과 트렌드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 회장은 현장 공부에 방점을 찍었는데, 독일 프랑크푸르트, 일본 후쿠오카와 오사카, 미국 샌프란시스코 등을 순회하면서 임직원을 불러 현장 공부를 시켰다. 중앙일보 일본특파원과 삼성언론재단 상임이사를 지낸 김두겸 소장은 “이 회장은 생각이 아주 깊고 기발하고 창의적인 분”이었다고 회고하면서 이 회장에 대한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이 회장이 중앙일보 간부들을 오사카에 불러 고베를 방문하고 느낀 것을 말하라는 숙제를 냈다. 그는 기대하는 수준의 답변이 없자 “귀국하지 말라”면서 “일본에는 3명의 선각자가 있고, 한국이 일본을 너무 모른다”고 질타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의 노림수는 고베 공항을 건설하는데 뒷산의 뒷부분 흙을 시민 모르게 지하 터널을 뚫어 운반해 공항공사를 성공시킨 비결을 각성시키기 위함이었다. 이 회장은 집요하게 일본을 뛰어넘는 ‘선각자’ 역할로 성공했다.
“입체적 사고가 습관이 되면 일석이조가 아니라 ‘일석오조’가 가능하다. 나무를 심을 때 나무 한 그루만 심으면 그 가치는 몇 십만에 지나지 않지만 숲을 이루면 목재로서 뿐만 아니라 홍수예방, 공해방지, 녹지제공 등 여러 효과를 거두게 되고 재산가치도 커진다. 나무를 심더라도 숲을 생각하는 것, 이것이 입체적 사고이자 일석오조인 것이다.”
이 회장이 취임 1년 후 1988년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미 기후위기로 인한 숲과 나무의 중요성과 이산화탄소 포집 가치를 예상하고 있었다. 산림최강국 독일의 숲과 나무를 보고 박 대통령이 산림녹화에 성공했듯이, 이 회장 역시 숲과 나무의 시사점을 통해 ‘1석 오조’ 신경영 모델을 성공시켰다. 1993년 8월 후쿠오카 신경영 간담회에 참석한 중앙일보 논설주간 출신 허남진 이사장(경기문화재단)은 “(이 회장이) 잘하는 사람 뒷다리 잡지 말고 못 따라 가겠으면 가만있어라. 그러면 함께 데려가겠다. 뒷다리 잡으면 모두 망한다”면서 “천재 1명이 1만명을 먹여 살린다”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또 북경에서 “한국 정치 4류, 관료 3류, 경제 2류”라고 비판했다. 정치가 기업 뒷다리를 잡기 때문이다. 물론 황제경영의 ‘컬트문화’라는 비판도 있지만 그의 기업철학과 실적은 한국 경제 새 역사를 썼다.
미래 삼성은 어디로 가야 하고, 이재용 회장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오늘날 한국 경제가 직면한 현실은 당시 이건희 회장 때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사상가 이건희> 책을 집필한 동아일보 허문명 국장은 “이 회장이 생존해 있다면 현재 한국이 풍요에 취해 절박감을 잃어가고 있는 면을 질타했을 것”이라며 “대전환기에 다시 위기의식과 혁신 집중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재용 회장이 가야 할 새 삼성의 길은 아버지가 제시한 ‘초일류기업’에서 새 비전 ‘초일류장수캠퍼스’ 도약이다. 유럽의 수많은 일류 장수기업처럼 삼성이 초일류로 장수하는 것이다. ‘캠퍼스’란 유럽 일류 장수기업인 지멘스와 노바티스 등이 사용하는 개념으로 기업을 넘어 세계 인재들이 몰려드는 새 ‘창작소’를 말한다. 이를 위해 3가지를 제안한다. 먼저 아버지 시대 삼성이 제품의 일류 세계화에 성공했다면, 이재용 회장의 삼성은 몸체가 초일류로 세계를 선도하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국제화는 화합, 동참, 인권”이라면서 현지 적응과 연대·공동번영을 말했다. 이재용 회장의 세계화는 삼성이 세계적인 기업창작 허브가 되는 ‘게임체인지’다. 강남 삼성 본사 건물 하나를 ‘글로벌 청년창업센타’로 활용하고, ‘국제창업올림픽’을 개최하는 것이다. 후자는 문국현 대표(뉴패러다임연구소)가 제안한 프로젝트다. 이어 ‘사법리스크’에서 벗어나 삼성 본사를 지역으로 이전해 세계적인 캠퍼스 명소로 만드는 프로젝트다. 역사관뿐만 아니라 최첨단기업의 모습을 세계에서 찾아오는 누구나에게 보여주는 위대한 삼성타운이다. 이를 위해 국가는 독일처럼 기업 상속세를 면제하는 것이다.
셋째, 이재용 회장은 이병철 회장 및 이건희 회장의 업적을 다시 한번 검토하는 ‘온고지신’에서 새 미래를 찾는 것이다. 독일 통일의 주역 헬무트 콜 총리는 ‘정치적 할아버지’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의 지혜를 원용해 새 역사를 썼다. 이병철 회장이 ‘삼성항공’을 창업했고, 이건희 회장이 민항기 미래를 밝게 보았지만 IMF 때 해체되었다. 최근 미래사업기획단을 신설했는데 프랑스·독일의 에어버스처럼 ‘한일민항기 합작회사’를 선도해볼 만하다. 이병철 회장 ‘사업보국’, 이건희 회장 ‘초일류기업’에서 이재용 회장은 세계적으로 ‘먼저’(first mover) 하는 초일류 장수캠퍼스로 도약하길 기원해 본다. 새 100년 비전을 제시하는 ‘평천하’(平天下)의 리더십이다.
필자 소개
김택환 작가(국가비전전략가와 독일·4차산업혁명 전문가로 활동. <넥스트 코리아> 등 넥스트 시리즈 8권 포함 20여권 이상 집필. 독일 본대학에서 언론학·정치학·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회·지자체·상공회의소·삼성전자 등 300회 이상 특강한 유명강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