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환의 Next Korea] 성장률 하락·비싼 에너지…獨 경제위기 남 일이 아니다

2023-10-04 06:00
위기 극복 위해 독일 총리 매일 기업총수들과 대화

[김택환 교수]


 


유럽의 경제기관차인 독일 경제가 위기에 봉착했다. 일각에서 독일 경제를 다시 ‘유럽병 환자’라고 조롱한다. 한국 언론들도 이에 장단을 맞추고 있지만 심층 분석은 없다.
독일 경제위기의 실태와 원인들은 무엇인가?
독일 고급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 경제지 한델스블라트(Handelsblatt), 스위스 고급지 노이에 취르허 차이퉁(NZZ)의 분석을 종합하면 6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경제성장률 하락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전망에 따르면 2023년 세계 경제 10대 강국 중 유일하게 독일만 마이너스 성장률(-0.3%)을 보이고 있다. 세계 경제성장률 2.8%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생산·소비 모두 나빠지고 있어 경제 추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둘째, 경제가 나빠지니 극우 포퓰리즘 정치세력이 준동한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악몽인 나치 후예에 가까운 독일대안당(AFD) 지지율이 사상 최대인 21%로 기민당(CDU 27%)에 육박할 정도다. 집권당인 사민당 17%, 녹색당 14%, 자민당 6%를 기록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정권 교체는 불가피하다. 게다가 흥미로운 대목은 미국의 괴짜 기업인 일론 머스크가 대안당 지원에 나섰다. 독일 정부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셋째, 비싼 에너지 비용이다. 그동안 값싼 러시아 에너지에 의존하다가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독일은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에너지 의존 탈러시아가 가장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독일 에너지 비용이 비싸지면서 개인의 소비지출 감소뿐만 아니라 기업들의 생산비용이 높아져 국제경쟁력이 약화되면서 경제 악순환에 들어섰다. 기업인들은 산업에너지 가격 인하를 주장하고 나섰다.
넷째, 독일 주력 산업인 자동차산업의 위기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석유·디젤 등 화석연료에 의존한 자동차 시대는 막을 내리고 전기차·자율주행차 시대에 진입했다. 그동안 독일 자동차업계는 성공에 취해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 미국 테슬라, 중국 비야드(BYD) 등 새 전기자동차 회사·브랜드가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머스크 테슬라 회장은 베를린 근처에 해마다 100만대를 생산하는 전기자동차 공장을 가장 큰 규모로 짓고 있다. 독일의 기존 브랜드인 벤츠, BMW, 아우디를 고사시키겠다는 전략이다. 또한 독일은 미래 주력 기술이자 산업 분야인 반도체·배터리·인공지능 등에 경쟁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산업 위기를 말하고 있다.
다섯째, 집값 상승과 주택 부족이다. ‘신호등 정부’(사민당+녹색당+자민당)는 집권 플랜으로 해마다 새 주택을 약 40만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계획대로 추진되지 않고 난민들이 증가하면서 주택 부족 현상이 나타나면서 집값·월세가 상승하고 있다. 피해는 청년 세대와 서민층에게 돌아오고 있다. 열심히 일해도 집을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이는 극우 민족주의 정당인 AFD 지지도가 상승하는 빌미를 주고 있다.
여섯째, 독일 국제 위상의 추락이다. 그동안 에너지는 러시아에 의존하고, 중국에 값싼 제품·수출을 의존하면서 경제적 부를 챙긴 독일에 대해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패권주의 야욕이 드러나면서 독일의 글로벌 이미지가 나빠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독일을 ‘경제적 동물’로 평가한다. 인권, 민주주의, 법치보다는 경제적 이익에만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2014년 푸틴이 우크라이나 크름반도를 침공해 합병했을 때 독일이 강력하게 경고하고 대처했어야 했다. 독일의 미온적 대처로 다시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만약 푸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승리하면 동유럽 침공은 불 보듯 빤하다고 유럽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또한 푸틴이 승리하면 도미노처럼 중국 시진핑이 대만 침공을 감행할 것으로 전망한다.
2022년 2월 푸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초기 독일 숄츠 정부가 겨우 헬맷 몇천 개 지원을 발표하자 즉각 독일 시민 100만명이 반전 시위에 나섰고 국제적으로 조롱거리가 되었다. 다급해진 숄츠 총리는 ‘시대전환(Zeitwende)'을 선언했고 국방비 1000억 유로(약 143조원) 책정과 더불어 해마다 GDP 2%를 국방비에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에도 나섰다. 지난 25년 동안 독일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부터 앙겔라 메르켈 총리까지 러시아 푸틴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면서 값싼 에너지 확보에만 관심이 있었다. 독일 돈이 러시아 군비 증강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아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최근 FAZ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배가 독일에 달려 있다'고 분석한다. 독일이 얼마나 의지를 갖고 적극 우크라이나에 무기·재정 지원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독일 숄츠 정부는 경제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려고 하는가?
먼저 최근 총리실은 대기업 총수 12명과 ‘대화(Dialog) 2.0’, 즉 신뢰를 바탕으로 해결 방안을 찾는 자리를 마련해 경제 미래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했다. 그동안 정치계와 기업계 사이가 소원해지자 인더스트리 4.0을 선도하는 롤란트 부슈 지멘스 회장이 간담회 주선에 나선 것이다. 주요 현안들은 이미 앞에서 지적한 산업전기료, 주택 문제, 극우세력 부상, 그리고 해외 독일 위상의 추락 등이다. 독일의 탈산업화와 더불어 국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과 기업인들 간 독일 경제 진단에 대해 온도 차가 있었다. 산업전기료 인하에 대해 집권당 정치인(사민당)들은 사회복지비용 삭감으로 받아들이고, 중심 지지 세력인 노조나 서민층에 불리하기 때문에 쉽게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정치권은 화석연료에 의존한 독일 자동차 산업계에 대해 비판한다. 기업이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미팅 이후 양쪽이 서로 실수를 인정하면서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다고 총리실은 발표했다. 정부 정책의 잘못과 동시에 산업계도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점을 인정한 것이다. 이후 숄츠 총리는 거의 매일 화학, 자동차 등 주요 산업 분야 기업인을 만나 경제 살리기에 올인하면서 지지율이 상승(긍정 평가 48%)하고 있다.
독일 정부와 산업계의 대안을 무엇인가?
독일 정부는 먼저 경제구조 문제 해결에 나섰다. 대표적인 사례로 반도체 자급자족을 위해 정부가 약 7조원을 투자했고, 42조원을 투자하는 미국 인텔을 유치했다. 이어 신재생에너지를 선도하겠다고 전략을 제시했다. 산업전기료 인하도 검토 중이다. 주택 문제 해결에도 적극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야당인 기민당은 아직 미흡하다고 비판한다. 대표적으로 원전 포기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일각에선 금기인 핵무장을 뜻하는 ‘핵아이큐(IQ)’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독일 경제 상황은 남의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 역시 경제위기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우리도 1%대 저성장을 보이고 있고, 아파트·주택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초저출산에다 세계 최고 자살률은 우리 미래를 더욱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 독일과 달리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권이 문제 해결 능력을 상실하고 있는 점이다. 비호감 정치가 극에 달하고, 강성 지지층 ‘빠시즘’에 기댄 정치문화가 나라를 나락으로 끌어가고 있다. 대화와 담론은 사라지고 증오와 대결 문화만 판친다. 서로 ‘못하기 대회’를 한다고 조롱한다.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의 대안은 무엇인가?
독일의 시사점은 먼저 우리 정치인들의 반성과 성찰이다. 또한 대통령은 대기업 총수들과 만나 어떤 위기가 오고 있고,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를 대화하고 해결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나아가 미래 주역 MZ세대와 대화하기 위해 대통령, 총리·장차관, 지자체장·기관장 모두가 나설 시기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경제위기를 해결할 제2 박정희 같은 새 리더는 누구인가!
 
김택환 필자 이력

국가비전전략가와 독일·4차 산업혁명 전문가로 활동. <넥스트 코리아> 등 넥스트 시리즈 8권을 포함해 20권 이상 집필한 작가다. 독일 본대학에서 언론학·정치학·사회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회·지자체·상공회의소·삼성전자 등에서 300회 이상 특강한 유명 강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