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기로에 선 한국 경제… 반전(反轉)의 계기 만들려면

2023-12-26 20:29
개인기로 버티는 것은 한계… 국가 시스템이 발현되어야

[김상철 동서울대 중국비지니스학과 교수]



 
연말연시가 되면 가는 해를 되돌아보고, 오는 해에 대해 희망을 품는다. 인지상정이고 그것마저 없다면 산다는 자체가 서글퍼진다. 다만 국가나 개인 잘 풀려나갈 때는 이런 감정이 밝아지고, 그 반대의 경우는 어두워진다. 그러나 되는 것보다 안 되는 것이 많아지면 국가는 위축되고 개인의 삶은 쪼그라들면서 공동체의 기력이 상실하고 새로운 동력이 생겨나지 않는다. 3년여 만에 코로나19가 종식되고 일상으로의 회복과 삶이 더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과는 이를 철저하게 외면했다. 코로나 때 풀린 유동성 회수를 위한 긴축과 금리 인상 도미노, 미·중 충돌 격화와 2개의 국지적 전쟁이 계속되면서 연말에도 지구촌의 위기는 고조되고, 더 나아질 것이라는 새해에 대한 믿음에 배신감을 던진다.
 
최근 한국에 대해 곱지 않은 외부의 평가가 적나라하게 국내에도 소개되면서 충격을 더한다. 위기에 대한 내부의 자각과 대처가 미온적이다 보니 오히려 나라 밖에서 우리에 대해 걱정하는 꼴이다. 뉴욕 타임스의 칼럼은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중세 시대 흑사병으로 인한 인구 감소 속도를 능가한다고 경고해 가히 충격적이다. 미국의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는 한국 경제 관련 소위 ‘개구리 보고서’ 2탄을 발표했다. 냄비 속 끓는 물에 갇힌 한국 경제가 수온이 점점 더 올라가고 있는 데도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는 쓴소리를 했다. 둘 다 기분 좋은 내용은 아니긴 하지만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차한 변명은커녕 부인할 방법이 없다.
 
이 밖에도 한국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객관적 새로운 평가가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온다. 급증하는 고령 인구에 더해 OECD 국가 중 노인빈곤율이 3년 연속 1위라는 불명예를 다시 끌어안았다. OECD 37개 국가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을 비교한 결과 한국은 꼴찌에서 다섯 번째로 우리보다 뒤에 있는 국가는 고작 그리스·칠레·멕시코·콜롬비아 정도다. 그런데도 노조는 밥그릇을 더 챙기지 못해 안달이다. 한편 네덜란드 보안 기업 서프샤크(Surfshark)’가 세계 110개국 대상 ‘디지털 삶의 지수(DQL)’에서 한국은 2021년 2위에서 올해에는 20위로 급강하했다. IT 강국이라고 우리가 뽐내던 인터넷 품질이 일본(25위)보다 못한 64위로 나타나 눈을 의심케 한다. 일본에 대해 아날로그라는 갈라파고스섬에서 갇혀 나오지 못한다고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이제 전세가 역전될 정도로 위상이 초라해지고 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뉴스도 있긴 하다.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올 한해 경제성적표에 한국을 그리스에 이에 선방한 국가로 인정하고 있는 점이다. 온갖 저평가가 도배질하고 있는 가운데 그나마 긍정적인 평가이긴 하지만 국민에 체감하고 있는 온도와는 거리가 멀다. 특히 생산 현장의 제조업이나 소비 현장의 자영업·유통업자들의 목소리는 사뭇 다르다. 그들은 내년도 경제 전망에 대해서도 낙관적이기보다 비관적인 쪽으로 기울어져 있기도 하다. 갈수록 격렬해지는 공급망 전쟁과 유럽과 중동의 화약고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글로벌 경제 지형의 불투명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여기에다 총선이 100일 정도로 가까워지면서 경제 보다 정치 논리가 이슈를 지배하면서 단추가 잘못 끼어질 공산이 크다.
 
함량 미달의 정치판을 바꾸기 위해서는 경제통이 대거 참여해야
 
글로벌 커뮤니티의 한국에 대한 평가가 인색해지는 것은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구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원인이다. 과거를 되돌아보더라도 변화에 민감할 때는 상승세를 탔지만 둔감할 때는 여지없이 하향곡선을 보였다. 이웃 경쟁국인 중국이나 일본에도 변화의 속도 측면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평가가 이제 그리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여전히 국가가 주도하고 민간은 마지못해서 하는 척하는 시늉을 한다. 경제가 중요하다는 말만 하지 시장과 자유에 역행하는 조치들이 남발된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기업을 중심으로 경제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자국 기업이 유탄을 맞거나 이로 인해 일자리가 없어지고 경제가 망가지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기업을 정치적 도구로만 이용하고 있는지 새삼 새겨볼 일이다. 대통령의 해외 순방이나 국가 이벤트 혹은 민심 수습의 수단으로 동원하고 있는 것 같은 감을 지울 수 없다. 험난한 글로벌 경제 전쟁의 정면에서 맞서고 있는 기업에 대한 지원이나 백업은 턱없이 부족하다. 나라를 쥐락펴락하는 여의도에 상주하거나 기웃거리는 무리를 보면 경제와는 거리가 먼 온통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물들이 대세다. 소위 말하는 경제통이 그리 눈에 뜨지 않는다. 기껏해야 실물 경제와는 동떨어진 관료 출신들이 고작이다. 나라 밖에서는 연일 총성 없는 경제 전쟁이 격화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판·검사, 운동권, 언론인, 정당인 무늬만 일색이다. 이러니 먹고사는 문제는 늘 뒷전이고 소모적인 정쟁만 일삼는다.
 
나라를 걱정하는 다수 경제·경영 전문가들이 내년도 경제 키워드로 ‘용문점액(龍門點額)’을 제시했다고 한다. 한국 경제가 도약하느냐, 아니면 고질적 저성장의 늪에 빠지느냐 하는 절박한 갈림길에 서 있다는 의미의 해석이다. 총선을 앞두고 보수든 진보든 간에 혁신 경쟁이 불붙고 있다. 그러나 또 구호만 요란하고 용두사미로 끝날지 모를 일이다.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새판을 짠다고 몰려드는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여전히 수준 이하이고 함량 미달이다. 나이나 성별, 다양한 이해집단의 목소리를 반영한다고 하지만 국가가 당면한 현안 해결과 중장기 성장 동력 확보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국민은 정치가 어떻게 변할지를 불꽃 같은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