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한국식 vs. 중국식 …경제성장 모델 과연 유효한가

2023-12-13 09:59

[김상철 동서울대 중국비지니스학과 교수]



절반의 성공과 실패


선진국을 제외한 국가에 대해 과거의 후진국 혹은 개발도상국보다 신흥국으로 부르는 것이 대세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자회사인 ‘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날지수(MCSI)’가 발표하는 주가지수로 평가한 국가 등급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르면 ‘선진 시장(DM : Developed Markets)’, 신흥 시장(EM : Emerging Markets)’, ‘프런티어 마켓(FM : Frontier Markets, 신흥국 시장에 포함하기 어려운 시장)’, ‘독립 시장(IM : Standalone Markets) 등으로 구분된다. 선진 시장에는 일본·싱가포르·호주 등 23개국이, 신흥 시장에는 한국을 포함하여 중국·인도 등 28개국이 속해 있다. IMF나 OECD가 한국을 ‘선진 경제권(Advanced Economies)’으로 분류하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한때는 개발도상국들이 경제성장 과정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한국식 모델’을 많이 인용하였다. 2차 대전과 동족상잔의 폐허 속에서 단기간에 경제 발전을 한 한국을 배워야 한다는 현상이 크게 띄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거대 경제 규모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급속한 경제적 성취를 만들어낸 ‘중국식 모델’이 새롭게 주목을 받는 추세다. 공통점은 국가 주도이고, 유사한 시장경제의 형태를 따르고 있지만,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경제 체제가 다른 점이다. 한국은 빠른 추격자 방식으로 수출주도형 경제를 추구했지만, 중국은 시장개방을 통한 외국 자본 흡수와 세계의 공장화를 통해 글로벌 공급망의 중심에 부상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비슷하면서도 전략과 전술적 측면에서 다소 간의 차이가 발견된다.
 
특히 중국은 거대 내수 시장을 배경으로 글로벌 기업, 자금을 끌어들이는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단순한 추격 방식이 아닌 세계 시장에서 확실한 선두가 없는 산업에 대해서는 우월적 선도자가 되기 위한 야심을 키웠다. 태양광부터 시작하여 고속철, 전기차에 이르기까지 일순간에 세계 1등의 되는 기염을 토해내고 있다. 이제는 원전까지 넘본다. 미국과 한국이 주춤하는 사이 4세대 원전으로 통하는 소형모듈원자로(SMR)의 일종인 고온가스 냉각로(HTGR) 원전까지 가동을 서두르고 있다. 신형 원전 강국을 넘어 절대강자가 되겠다는 꿈을 현실화해 나가는 중이다. 오히려 중국 국내 과잉 설비로 인해 관련 기업이 해외 시장으로 발을 뻗치면서 한국이나 일본 등 경쟁자들을 괴롭히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로 경제성장에 박차를 가하는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모델을 보면 한국식보다 중국식을 더 선호한다. 경제 규모나 정치 체제 등 국가적 여건에 따라 또 다른 성장 모델을 채택하기도 한다. 최근 부상하고 있는 인도나 베트남의 경우를 보더라도 중국식 모델에 더 근접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객관적인 평가다. 미국 등 서방의 일방적 독주 체제에 대한 불만 누적이 신흥국 처지를 대변하는 듯한 행세를 하는 중국 편에 서려는 의도도 있다. 한편으론 미국보다 구매력 측면에서 우위에 있는 중국 시장에 다가가려는 의도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본다면 실패한 부산 엑스포 유치 과정에서도 우리가 애써 강조한 ‘한강의 기적’은 이제 흘러간 레퍼토리이자 한물간 스토리텔링으로 시의적절치 않다.
 
한국 경제 뒷걸음질.. 맥킨지의 ‘개구리 한국 경제’보고서 새겨봐야
 
과연 한국식 혹은 중국식이 개발도상국에 적합한 경제 모델인가? 이에 대한 찬반을 비롯하여 다양한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절반은 맞을 수 있지만, 나머지 절반은 아닐 수도 있다는 평가에 도달한다. 한국 경제는 최소한 지난 10여 년간 혼돈 상태에 머물러 있기도 하다. 잠재 성장률이 정체되면서 성장 동력이 빠르게 고갈되는 중이다. 심지어 1980년대 아시아 신흥국으로 경쟁을 하던 대만 경제가 한동안 주춤하더니 근래 수년간은 한국을 능가하면서 1인당 국민소득마저 20년 만에 우리를 앞질렀다. 경제 열등생으로 전락한 일본에마저 성장률이 추월당하면서 더 내세울 게 없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우쭐할 것은 없고 고삐를 조여 할 시기인데도 결정적인 타이밍을 계속 놓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식 성장 모델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절정에서 내려오고 있다는 냉엄한 진단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시진핑 집권 11년 차를 맞이하면서 중국인의 미래에 대한 희망이 갈수록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시진핑 총서기에게 어디론가 향하는 흐름에 큰 힘을 얹어 속도를 내는 지도자라는 ‘총가속사(總加速師)’라는 별칭이 따라붙었다. 많은 사람이 하강하고 추락하며 퇴행하는 속력이 빨라졌다는 푸념을 한다. 몰락(沒落)이라고 단언하기에는 시기상조이지만 긍정보다 부정이 부쩍 많아졌다. 중국의 GDP 규모가 2020년 이후 최저치인 미국의 64.5%(2021년 77.3%)까지 떨어지면서 우려가 가시화되고 있다. 금세가 내에 중국이 미국 경제 규모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왔다.
 
다른 신흥국인 인도의 속도가 가파르다. 인도의 GDP 규모는 5위로 올라가고 2026년에는 일본(독일에 뒤져 4위로 추락)을 제치고 4위 혹은 3위를 훔쳐볼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10년 만에 때마침 연말에 나은 맥킨지의 ‘개구리 한국 경제’보고서는 충격적이라기보다 개탄스럽기까지 하다. 냄비 속 물이 더 끓어 지금 개구리를 꺼내지 않으면 퇴로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또한 뉴욕 타임스는 저출산에 따른 한국의 인구 감소 속도가 14세기 중세 유럽을 능가한다는 소름 끼치는 분석 칼럼까지 게재할 정도다. 중이 자기 머리를 깍지 못하니 남이 대신 깎아주는 격이다. 당장 직면한 현안이 어떤 것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모두가 공감한다. 그러나 아무도 하지 않으면서 안타까운 시간만 계속 흘러간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