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송영길의 '어린 놈'·조국의 '비법률적 명예회복' 발언에 담긴 그릇된 법의식
'법 앞에 평등' · 사법 제도 무시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어린놈’ ‘건방진 놈’이라고 해서 막말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막말을 한 건 맞는다. 그러나 그게 문제의 전부가 아니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법의식이 뒤틀리고 잘못됐다는 점이다. 법의식이란 간단히 말하면 법을 대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법 앞에 평등'을 무시하고 자기는 예외인 듯하거나 사법 체계의 기능을 부정하는 행동과 태도가 뒤틀리고 잘못된 법의식의 본보기다. 송 전 대표의 '어린놈' 발언에는 이런 뒤틀리고 잘못된 법의식이 드러난다. 송 전 대표뿐만 아니라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같은 야권 인사들도 그렇다.
송 전 대표는 “이 어린놈이 국회에 와서 (국회의원) 300명이 자기보다 인생 선배일 뿐만 아니라 한참 검찰 선배를 조롱하고 능멸하고”라며 “이런 놈을 그냥 놔둬야 되겠나”라고 했다. 한 장관이 국무위원으로서 국회에 와서 보인 행태를 문제 삼았다. 아무리 장관 행태가 잘못됐더라도 '이놈 저놈' 하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일이지만, 백보 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진짜 문제는 송 전 대표가 이 말에 이어 돈 봉투 사건에 대해 한 말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 때문에 지금 100명 넘는 사람들이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불려가서 조사를 받고 그러니까 사실 너무 괴롭고 힘들고 죄송스럽다”며 “이게 무슨 중대한 범죄라고 6개월 동안 이 XX을 하고 있는데 정말 미쳐버릴 것 같다. XX놈들 아닌가”라고 했다. 바로 이 말이 송 전 대표의 뒤틀리고 잘못된 법의식을 보여준다 .
돈봉투 사건은 2021년 민주당 대표 경선 때 송영길 대표 후보 캠프 관계자들이 민주당 의원 등에게 돈 봉투를 전달했다는 사건이다. 송 전 대표 보좌관 박모씨는 민주당을 탈당한 윤관석 무소속 의원에게 현금 6000만원을 전달한 혐의를 법정에서 인정했다. 지난 8월 구속 기소된 윤관석 의원도 그동안 모든 범행을 부인하다 재판이 시작되자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에게서 100만원씩 담겨 있는 돈 봉투 20개를 받았다고 법정에서 인정했다. 검찰은 돈 봉투 수수 정황이 있는 의원이 19명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대표를 뽑는 경선 때 돈 봉투를 뿌렸다면 결코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 이런 일은 50년 전 막걸리 선거, 고무신 선거가 벌어지던 후진국 시절에나 있던 일이다. 이제 선거 때 유권자들에게 돈 봉투를 뿌린다는 일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그런 구시대적 일이 불과 2년 전 민주당 대표 경선 때 벌어졌다면 어떻게 ‘중대한 범죄’가 아닌가. 불법의 중대성 여부를 자기한테 불리하냐 아니냐로 따지기 때문으로 볼 수밖에 없다. 송 전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더라도 ‘이게 무슨 중대한 범죄라고 이 XX을 하느냐’고 했을까? 남의 잘못은 중대하고 자기 잘못은 별것 아니라고 여기는 게 바로 '법 앞에 평등' 원칙에 어긋나는 행태다.
송 전 대표는 ‘어린놈’ 발언에 대해 방송 인터뷰에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는 “분노의 표시였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한 장관이 취하고 있는 모습은 거의 사적인 조직폭력이다. 지금 송영길, 이재명 몇 번이냐? 100번 넘게 압수수색하고 분노가 안 생길 수가 있겠냐”고 했다. 이 말 역시 뒤틀리고 잘못된 법의식을 보여준다.
검찰이 불법 행위를 수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수사하지 않는다면 직무유기다. 법과 절차에 따라 진행하는 검찰 수사를 ‘사적인 조직폭력’이라고 하는 것은 사법 체계의 기능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말이나 같다. 비리 의혹에 대해 합법적 수사를 하는 것에 분노를 느낀다는 말도 뒤틀린 법의식의 표출이다. 그게 어떻게 분노의 대상인가? 부끄러움의 대상이 아닌가? 검찰이 음습한 정치적 고려에서 별건 수사나 뒷조사를 통해 돈 봉투 사건을 만들어 냈다면 또 모른다. 그러나 이번 수사는 그런 게 아니다.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의 휴대전화 통화 녹취록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문제가 시작된 것이다.
송 전 대표는 ‘송영길, 이재명은 100번 넘게 압수수색을 했다’고 한다. 야당 인사가 관련된 수사에만 압수수색을 지나치게 많이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이원석 검찰총장이 지난 10월 국정감사 때 이렇게 반박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압수수색을 할 때, 삼성·롯데·SK그룹에 대해 압수수색할 때 (민주당 측에서) 압수수색이 많다는 말씀 한마디도 안 하셨지 않으냐.” 내가 잘못한 사건이든, 남이 잘못한 사건이든 수사의 엄정함에 차이가 있으면 안 된다. 그건 불공정이고 부정의이다. 남한테는 엄정함을 요구하면서 자기한테는 그러면 안 된다고 여긴다면 '법 앞에 평등'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다.
국회의원 당선되면 유죄가 무죄 되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뒤틀리고 잘못된 법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지금 재판을 받고 있는데 최대한 법률적으로 해명하고 소명하기 위해 노력을 할 것”이라며 “이것이 안 받아들여진다면 비법률적 방식으로 제 명예를 회복하는 길을 찾아야 하지 않냐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법체계 내에서 어떤 한 사람이 자신의 소명과 해명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못했을 때 그 사람은 비법률적 방식, 예를 들어 문화적·사회적·정치적 방식으로 자신을 소명하고 해명해야 될 본능이 있고 그러한 것이 시민의 권리”라고 주장했다.
조 전 장관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그의 말은 자신은 무죄인데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했으니 '법률적 해명과 소명'이 이뤄지지 않았고 그래서 '비법률적 방식으로 명예회복을 하겠다'는 뜻이다. 법치국가에서 해명과 소명을 법률적 방식과 비법률적 방식으로 나누는 것부터가 이해하기 어렵다.
조 전 장관은 비록 1심이지만 이미 유죄 판단을 받았다. 법치국가에서 유무죄 여부를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기관은 법원이다. 조 전 장관은 1심 유죄 판단이 2심이나 3심에서 바뀔 수도 있고 그대로 유지될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그의 유무죄 판단은 법원이 한다. 이게 민주주의 법치국가의 작동 원리다. 그런데도 그는 1심 유죄 판결이 났다고 해서 '법률적으로 해명과 소명을 호소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자기가 무죄임을 주장하고 증거를 냈는데도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그 주장과 증거의 신빙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는 신빙성을 더 갖춘 증거를 찾아서 무죄를 주장하면 된다. 그럼에도 끝내 유죄가 선고돼서 억울하다면 다른 증거를 찾아서 재심을 청구할 수도 있다. 이렇게 끝까지 법률적 방식으로 대응하는 게 사법 체계를 존중하고 법치주의를 따르는 방식이다.
조 전 장관 말대로 '법체계 내에서 소명과 해명이 받아들여지지 못했을 때 문화적·사회적·정치적 방식 같은 비법률적 방식으로 소명하고 해명해야 할' 때도 있을 수 있다. 과거 미국에서는 흑인들이 버스 뒷자리에 흑인 좌석을 따로 떼어 배치한다든지, 학교에서 흑인 학생만 따로 학급을 편성한다든지 하는 차별을 당했다. 흑인들은 소송을 냈지만 당시 법체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흑인들은 ‘인종 차별’을 없애라며 시위를 벌였다. 이런 게 '비법률적 소명과 해명'이자 '본능'이고 '권리'일 수 있다. 인종 차별은 이를 당연시하는 당시 시대 상황의 산물이다. 그때는 흑백 평등 같은 가치관이 자리 잡기 전이었다. 법체계에도 그런 가치관이 반영돼 있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법체계에서는 아무리 해명하고 소명해도 통할 수가 없었다. 이럴 때는 '비법률적 방식으로 명예회복에 나서는 게' 정당할 수 있다.
툭하면 '탄핵' 외치는 민주당도 법치 무시
그러나 조 전 장관이 받는 혐의는 그런 유(類)가 아니다. 업무방해,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사문서 위조,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 시대 상황과 무관한 것들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행위는 이미 그 자체로서 범죄라는 가치관이 자리 잡고 있다. 오직 유죄 증거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그럼에도 조 전 장관은 마치 자기 행위가 범죄가 아닌 정당한 행위인데 우리 법체계가 받아들이지 않는 듯이 '비법률적 명예회복'을 외친다. 사법 체계를 부정하고 사법 체계 밖에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겠다고 한다. 이런 게 뒤틀리고 잘못된 법의식이다.
그는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 ‘비법률적 방식의 해명과 소명 그리고 명예회복’이 이뤄졌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그가 당선된 뒤라도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아 피선거권을 잃게 되면 국회법에 따라 의원직도 자동적으로 잃게 된다. 진정한 해명이나 소명, 명예회복은 국회의원 당선 여부가 아니라 법원의 유무죄 판단에 달려 있다. 법치국가에서 비법률적 방식의 해명이나 명예회복이란 존재할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걸핏하면 탄핵을 들고 나온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현직 검사 2명, 방송위원장을 탄핵 소추 대상으로 꼽는다. 심지어 대통령 탄핵도 입에 올린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 당시 탄핵의 기본 원칙을 천명했다. ‘탄핵이 결정되면 공직에서 파면되기 때문에 탄핵에는 파면을 정당화할 만큼 중대한 위법 사유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이 탄핵 소추하겠다는 사람들이 과연 파면을 정당화할 만큼 중대한 위법을 저지르고 있는가? 민주당 스스로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툭하면 ‘탄핵’을 꺼낸다. 국회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으니 힘으로만 따지면 못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힘이 있다고 법과 상식을 무시하고 함부로 휘두르면 그 역시 법치를 무시하는 일이다. 이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게 비뚤어지고 잘못된 법의식이다.
국회의원이나 법무부 장관은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걸 업무의 본질로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직을 지낸 사람들은 누구보다 법을 존중하는 데 앞서야 한다. 그런데도 억지와 궤변을 늘어 놓으며 법을 부정하고 무시한다. 자기 이익 앞에 법은 안중에도 없다. 법은 내게 불리할 때도 존중하고 따라야 한다는 일반 시민들보다도 법의식이 뒤처져 있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