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정웅석 형소법학회장 "응보만이 형벌 목적될 수 없어…형소법 전면 개정할 때"

2023-11-09 06:00
"정교한 원인 진단 후 교화 목적 고려해야" 엄벌주의 반박
수사권 문제에 소신 발언…"학회장으로서 큰 보람 느껴"
"수사기관, 이제 통제받기보다 '국민 보호' 고민할 시점"

 
정웅석 형사소송법학회장(62·서경대 사회과학대학 학장)이 8일 서울 성북구 서경대학교 한림관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형사소송법은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는 헌법 이념을 구현하는 법체계로서 실체적 진실과 인권 보호 이념의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형사소송법은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는 헌법 이념을 구현하는 법체계로서 실체적 진실과 인권 보호의 이념의 조화를 이뤄야 한다."
 
최근 이른바 '묻지마 범죄', 이상동기 범죄가 반복되면서 형사 처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크다. 범죄 원인을 정확히 진단할 수 없는 이상동기 범죄는 누구든지, 언제, 어디에서 범죄 희생양이 될지 모른다는 국민적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이 불안감은 형사 처벌 강화에 대한 여론으로 이어졌다. 국회와 정부는 여론에 부응해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국회는 묻지마 범죄로 인해 피해자가 상해·사망에 이른 경우 일반 살인죄나 상해·폭행치사죄보다 강하게 처벌하는 법안을 발의했으며 법무부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 '한국형 제시카법' 등을 내놨다. 이 같은 엄벌주의 경향에 정웅석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62·서경대 사회과학대학 학장)은 교화와 엄벌이라는 형벌의 취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놨다. 학자의 소신이었다. 

정웅석 회장은 2020년 7대 회장으로 취임한 데 이어 지난해부터는 8대 회장을 맡고 있다. 임기 동안 문재인 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 즉 '검수완박'부터 현 정부의 '검수원복'까지 학문적 양심에 따라 주장을 폈다. 형소법학회는 문재인 정부 당시 검·경 수사권에 대해 학회 차원의 성명서를 냈던 몇 안 되는 법학회다. 국회·대검찰청·대한변호사협회 등과 공청회를 하며 문제점을 조목조목 반박했고 그때마다 조문이 조금씩 바뀌었다. 학자로서 문제를 제기하고 정책 방향에 조금이나마 반영된 점이 그가 학회장으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부분이었다. 정 회장은 "수사지휘권을 폐지할 때도 내가 주도 성명서를 발표했다"며 구체적인 사례를 꼽았다.

2020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당시 채널A 사건의 피의자로서 휴대전화의 비밀번호 제출을 거부하자 정부는 '휴대전화 비밀번호 강제해제법'을 꺼내 들었다. 이때도 정 회장은 "'현대판 알몸 수색'이나 다를 바 없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한동훈 장관을 떠나 국민의 기본권이 달려있다"며 "지금 모든 개인의 사적인 정보가 다 휴대폰에 있는데 이걸 특정 범죄를 구실로 뺏어가서 다 뒤져버릴 수 있다"고 회고했다.

이 같은 그의 행동은 형사소송법에 대한 뚜렷한 주관을 근간으로 했다. 그는 형사소송법이 국민을 범죄로부터 지키기 위해 실체를 파헤치면서도 인권 침해의 선은 지키도록 작동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검찰의 사법통제권 강화와 직접수사 축소라는 두 축을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그가 보기에 국민을 위해 형사소송 절차에서 손봐야 할 곳은 비단 검·경 수사권뿐만이 아니다. 그가 1954년 만들어진 형사소송법에 대한 광범위한 개정 작업을 준비하는 이유다. 임기를 1년여 앞두고 내년 형사소송법 제정 70주년을 맞아 학회 차원에서 마련하고 있다.

정 회장은 일관된 관점 아래에서 최근 강력범죄에 대한 엄벌주의 경향부터 이달 1일부터 시행된 수사준칙 시행령과 검·경 개혁 방향까지 조목조목 견해를 내놨다.  

-이상동기 범죄가 이어지면서 형사 처벌 강화에 대한 여론이 거세다.
"아직 이상동기 범죄, 묻지마 범죄에 대한 정의가 애매하다. 만약 별다른 동기를 확인할 수 없는 범죄로 정의한다면 교정 당국의 입장에서 교화 가능성은 작다. 국가는 일반인에 대한 사회 안전, 또 범죄자에 대한 교화를 고려해서 형벌을 가한다. 다만 현재 이상동기 범죄가 몇 건인지 국가적 차원의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엄벌주의 방향도 의미가 있지만 범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인 데이터를 만들고 정교하게 원인을 진단한 후에 이에 대한 대책이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단순히 몇 건의 강력 범죄를 통해서 자꾸 처벌을 높이다 보면 결국 개별 형벌에 대한 상향만 이뤄질 뿐이다. 범죄 예방적 차원에서 바람직한 방향인지는 고민스러운 부분이다."

-국회·정부도 엄벌주의 여론에 발맞춰 정책을 내고 있다. 적절한 처방전인가?
"과연 처벌과 범죄 간의 균형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점은 항상 있다. 통상 범죄에 대해 처벌하는 이유는 오로지 응보만이 아니라 그 사람을 개선하고 교화해 사회에 복귀시키는 시스템적인 차원이 있다. 그게 바로 형벌의 정당성이다. 오로지 응보만이 형벌의 목적이라고 한다면 범죄자와 국가가 아무런 차이가 없다.

제시카법과 관련해 한국은 미국보다 인구 밀도가 매우 높고 특정 도시 지역에 거주지가 밀집돼 있어서 거주지 제한 정책을 시행하면 거주 이전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할 소지가 높다는 점이 우려된다. 반면 거주지 제한 정책의 비효율성을 근거로 시행하지 않는다면 밀집성과 도시성으로 인해 범죄 예방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역시 성범죄자에 대한 정확한 통계와 재범의 위험성 등을 고려해서 많은 전문가가 논의해서 결정할 문제로 보인다."
 
정웅석 형사소송법학회장(62·서경대 사회과학대학 학장)이 8일 서울 성북구 서경대학교 한림관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검찰의 사법통제권 강화와 직접수사 축소라는 두 축을 검·경 개혁 방향으로 제시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지난 1일부터 개정 수사준칙이 시행됐다.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확대하는 내용 등이 골자로 시행령이 법률 취지에 반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사건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신속한 수사가 이뤄지도록 단계별로 검·경이 지켜야 할 수사 기간의 기준을 마련한 것에 불과하다. 다만 이를 통해 현재 재판이 신속히 이뤄질 수 있느냐에 대해선 상당히 회의적이다. 경찰이 수사 중 기간을 지키지 않았을 때 실질적인 검사가 할 수 있는 권한이 전무하다. 과연 이 수사 준칙 개정만으로 신속한 재판이 진행될 것인가 의문이 있다.

검찰 인사가 1년임을 감안하면 굳이 본인이 임기 동안 보완수사를 할 이유가 없다. 보완수사 요구를 할 가능성이 높다. 또 경찰 입장에서 예를 들어 새로운 사건 10건에 대해서 조사하다가 갑자기 보완수사 요구 사건이 생기면 이 사건을 또 해야 한다. 불송치 결정했던 사건이니 아무래도 흥미가 떨어진다."
 
-수사 지연으로 인한 국민 피해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기존에 있던 사건이 검찰과 경찰 사이에 붕붕 떠다니는 이상한 구조가 됐다. 경찰이나 검찰이 수사 '주재자성'을 명확히 해야 한다. 사건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 누가 질 것인가에 대한 주재자성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수사는 공소를 제기하기 위한 준비 단계에 불과하다. 기소 여부에 따라 유무죄에 대한 일차적 판단을 검사가 하기 때문에 결국 수사 주체에서는 검사가 가지고 판단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보완수사권은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검찰의 수사지휘권, 즉 경찰에 대한 사법적 통제를 하도록 해야 한다.

다만 검사가 경찰에 대한 사법통제가 아닌 직접수사를 하는 건 문제다. 직접 수사하면 확증편향을 갖게 된다. 검사는 수사 지휘를 통해서 사법적 통제에만 관심을 두고 직접 수사하면 안 된다. 결국 경찰에 대한 검사의 수사지휘권 복원과 직접수사 축소가 바람직한 검·경 개혁 방향이라고 본다. 수사지휘란 지배-복종 관계가 아닌, 사건에 대한 검·경 판단이 다를 때 최종적인 종결을 검사에 맡기자는 것이다. 다만 검사는 본인이 직접 수사하는 사건이 많아질수록 똑같은 확증편향이 생기니 이를 통제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검·경 등 수사기관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나.
"이제는 '국가 권력으로부터 국민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보다 '국가가 국민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보다 큰 가치를 두고 논의할 시점이다. 아직 피고인의 인권에 주목하면 개혁적·진보적, 피해자의 한을 풀기 위해 국가 역할에 주목하면 수구적이라고 몰리고 있다. 그동안 학자들이 피의자·피고인의 인권 보장에 집중하면서 현실성과 유리된 이론의 틀 속에 갇혀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과연 범죄로부터 고통 받는 주변 세계에 눈을 감아버리는 건 아닌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될 것 같다. 결국 범죄에 대적하는 건 수사기관인데 수사기관에 대한 통제보다 어떻게 수사를 더 잘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제도가 필요하다고 보나.
"실제 현실은 범죄로부터 고통받는 피해자에 공감하고 처벌의 강력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처벌을 하는 수사기관의 손발을 묶어놓고 범인을 잘 잡아서 처벌을 해달라는 건 모순이다. 그동안 수사기관이 국민 인권을 침해한 불행한 역사가 있는 건 맞다. 그것에 대한 통제적 장치는 필요하다. 경찰에 대한 통제는 검사의 수사지휘로, 검사에 대해서는 직접수사를 줄이고 수사하더라도 수사심의위원회 등 통제 장치를 두는 것이다. 이와 별도로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법방해죄, 허위진술죄 또는 플리바게닝을 통한 자백 감면 제도 등이다. 학계에서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전혀 아직 도입할 때가 아니라는 부분이 있다."
 
-형사소송법과 관련해 학회 차원에서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나.
"형사소송법이 1954년 제정된 이래 내년에 70주년을 맞는다. 그런데 수사권 부분을 제외하고 실제 재판 과정에서 국민에게 필요한 법 규정은 전혀 개정되지 않았다. 개정 형사소송법 안에서 지금 화두가 되는 건 고소·고발이 제대로 안 된다, 또 경찰의 불송치한 사유를 전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건 종결까지 너무 시간이 지연된다는 것이다. 결국 수사와 공판이 연결된 부분인데 본질적으로 공판에서 유·무죄가 갈리기 때문에 공판 절차의 신속한 진행이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형사소송 개정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수사·공판·기타 특별 절차로 나눠서 분과 위원장을 요청한 다음 위원들을 섭외해서 현재 부분별로 세부 자문을 만들고 있다."
<정웅석 형소법학회장 약력>
 
  • △ 연세대학교 법학연구소 간사 및 전문연구원
  • △ 수사권조정자문위원회 위원
  • △ 대한의료법학회 상임이사
  • △ 한국비교형사법학회 이사
  • △ 한국형사정책학회 이사
  • △ 법무부 형사사법통합정보체계추진단 자문위원
  • △ 대검찰청 영미법 아카데미 회장
  • △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소심의위원
  • △ 사법고시, 행정고시, 입법고시 출제위원, 서경대학교 법학과 교수
  • △한국형사소송법학회 7~8대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