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기회마저 잃어"…두 아이 엄마가 '오탈자' 헌소 낸 배경은

2023-11-03 06:00

변호사시험법 제7조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김누리씨가 지난달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김누리씨]
지난 2016년 7월 첫째 자녀를 임신하고 2018년 12월 둘째 자녀를 출산하기까지 김누리씨는 변호사가 될 기회를 세 번이나 포기해야 했다. 혹자는 임신·육아와 수험생활을 병행할 수 없었냐고 물었지만 김씨는 "첫째와 둘째를 낳아 기르면서 임신과 출산은 계획한 대로 실행되는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어통번역학과를 졸업한 김씨는 중국 전문 국제적 법조인을 꿈꾸며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진학했다. 그러나 계획에 없던 두 번의 출산을 겪으면서 변호사가 될 기회는 허무하게 날아갔다. 김씨는 첫째를 출산하자마자 찾아온 두 번째 임신 소식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둘째 임신 축하한다'는 소식에 하늘 무너지는 줄"
로스쿨 재학 중 결혼한 김씨는 졸업한 지 얼마되지 않아 첫째를 가졌다. 변호사 시험 공부에 전념하려던 김씨에게 임신은 계획에 없었다. 2017년 1월 두 번째 변호사 시험 기회를 앞두고서 임신 6개월이 됐다. 임신 초기 심한 입덧으로 고생하던 김씨는 안정기에 들어서도 임신성 당뇨로 스트레스를 피해야 한다는 의사 권고를 받았다. 김씨는 오랫동안 책상에 앉아 공부할 엄두도 못냈다. 또 당시 제주도에는 변호사 시험장이 없어 비행기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김씨가 수험생활에 집중할 수 없었던 상황에 다른 변호사들도 공감했다. 최근 아이를 출산한 새로운미래를위한청년변호사모임(새변)의 김지연 변호사는 "원래 오전 9시에 앉아서 자정까지도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데 임신하고 나서는 그렇게 업무를 하기가 진짜 힘들었다"며 "변호사 시험 과목 중에 3시간 반 동안 앉아서 써야 하는 과목도 있는데 임신 10개월 중 5개월은 진짜 힘든 일을 할 수가 없는 상태"라고 토로했다.

같은 해 4월 첫째 자녀를 무사히 출산한 김씨는 이제 수험생활에만 신경쓸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김씨를 기다리는 건 독박육아였다. 첫째 아이가 아플 때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데려가는 건 오로지 김씨의 몫이었다. 갓 변호사가 된 남편과 양가 부모님들은 김씨를 도와줄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게 첫째가 생후 8개월이 된 무렵인 2018년 1월 세 번째 시험 기회도 흘러갔다.

첫째를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을 때까지 자라자 김씨는 본격적으로 수험생활에 돌입했다. 남은 두 번의 기회만큼은 반드시 활용하고 싶었다. 김씨는 "첫째 아이를 어느 정도 양육한 뒤 다시 수험에 전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계획에 없던 둘째 자녀가 생겼다. 홀로 첫째 육아를 전담하는 중에 둘째까지 임신하게 된 것이다. 김씨는 산부인과 의사의 "축하한다"는 말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고 회고했다. 출산 예정 시점은 네 번째 변호사 시험을 약 한 달 앞둔 2018년 12월이었다. 산후병이 발병하기 쉬워 회복에 전념해야 하는 '산욕기'에 해당하는 기간이었다. 게다가 변호사시험은 휴일 포함 4박5일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치러지는 상황이었다.
 
김씨의 헌법소원 청구서 중 변호사 응시 과정 [사진=김누리씨 대리인 박은선 법률사무소 이유 변호사]
 
변호사시험법 '5년 내 5회' 제한…"임신·출산 말라는 것"

2019년 1월 네 번째 변호사 시험도 날리게 된 김씨는 허무함과 무력감에 밤잠을 설쳤다. 그래도 그는 출산한 지 2개월 만에 책을 폈다. 갓난쟁이인 둘째와 이제 막 유아기에 접어든 첫째를 돌보면서다. 그렇게 치른 마지막 변호사시험. 그는 868.94점을 받았다. 로스쿨 시절 치렀던 첫 시험에서 110점가량 상승했지만 합격커트라인에서 불과 31.35점이 모자란 점수였다. 

김씨는 "이번 생애 동안은 대한민국에서 변호사가 될 수 없다는 박탈감과 마지막 수험을 위해서 고생한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너무도 괴로웠다"고 전했다. 이어 "경력 단절 여성이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이 사회에서 경력을 갖출 수 있는 기회마저 잃었다"고도 했다. 

변호사가 될 수 없다는 박탈감과 무력감과 싸우기보다 응시 기회를 '5년 내 5회'로 제한한 변호사시험법과 다투기로 했다. 이 응시 기회를 놓친 이들은 소위 '오탈자(五脫者)'로 불리며 변호사가 될 기회를 영영 잃어 버린다. 김씨는 "지금의 변호사시험법은 여성에게 사실상 변호사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임신과 출산을 하지 말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지난 9월 변호사시험법 7조에 헌법소원을 제기한 배경이다.

오탈자 제도가 직업선택의 자유, 평등권 등을 침해하는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김씨는 헌재에 청구서를 제출하며 "국가에게 저의 꿈을 실현시켜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닌 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의 평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며 강조했다.

김씨의 대리인인 박은선 법률사무소 이유 변호사는 "이번 헌법소원에서는 변호사단체들과 시민단체들의 의견서를 제출하는 것과 함께 공개변론청구를 할 예정"이라며 "헌법재판소는 공개재판으로 오탈자 제도에 대한 법무부와의 정면승부 기회를 허락해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