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그룹 지배구조보고서] 재계 '집중투표제' 기피···포스코·SKT·SK스퀘어 단 3곳만 도입한 이유는?

2023-09-26 05:00
대주주 경영권 방어 불리···채택 꺼려
포스코홀딩스, 국민연금이 최대주주
SK 두 곳은 소액주주 지분율 더 높아

정부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집중투표제 도입을 권장하고 있으나 재계에서는 기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10대 그룹 상장 계열사 중에서도 SK텔레콤과 SK스퀘어, 포스코홀딩스 등 단 3곳만 도입하는 데 그쳤을 정도다.

재계에서는 이들 3개 기업이 과감히 집중투표제를 채택할 수 있었던 것은 대주주가 혁신 의지를 가진 것은 물론이나 대주주의 지분율이 낮아 불리한 면이 없고 우호 지분이 많았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다른 기업들도 집중투표제를 도입하기가 한동안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5일 재계와 관련 당국에 따르면 10대 그룹 계열사 중 최근 2년간 기업지배구조를 공개한 76개 상장사의 핵심지표 준수 여부를 분석한 결과 가장 준수율이 낮은 지표로 집중투표제 채택(8번 지표)이 꼽혔다.

76개 상장사 중에 단 3곳만이 도입했을 뿐 나머지는 모두 채택하지 않았다고 답해 지표의 준수율이 3.95%에 그쳤다. 준수율이 한 자릿수를 기록한 핵심지표는 집중투표제가 유일했다. 그 다음으로는 대표와 이사회 의장의 분리(7번 지표)로 26.32%로 나타났다. 이외 핵심지표들은 낮더라도 50%가량의 준수율을 기록했음을 감안하면, 대기업 그룹에서도 집중투표제 채택을 극도로 기피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집중투표제가 경영권 방어 측면에서 대주주에 불리한 점이 많은 탓이다. 집중투표제는 기업이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3% 이상 지분을 보유한 주주가 요청하면 주주총회에서 투표를 실시해 표를 많이 얻은 순서대로 이사를 선출하는 제도다.

이에 소수의 지분을 가진 주주도 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면 변수를 만들 수 있다. 이사회 구성에 변수를 만들고 싶지 않은 대주주 입장에서는 채택하기 어려운 방식이다. 실제로 영국계 헤지펀드 칼 아이칸 연합이 2006년 집중투표제를 통해 KT&G 이사회 이사 1인을 교체하고 경영권에 간섭한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때문에 정부에서 기업지배구조보고서의 핵심지표로 설정하는 등 권장하고 있음에도 집중투표제를 채택한 기업이 많지 않다. 실제 집중투표제를 채택한 기업 11곳을 살펴보더라도 강원랜드,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 지역난방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전력공사, KT&G, KT 등 정부의 입김이 강한 기업이 대부분으로 파악된다.

10대 그룹 중에서 국민연금(지분율 9.11%)이 최대주주인 포스코홀딩스가 집중투표제를 채택한 것도 이와 유사한 흐름으로 분석된다.

이외에 SK그룹의 SK텔레콤과 SK스퀘어는 정부 이외에 최대주주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집중투표제를 채택해 눈길을 끌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들의 사업이 안정적인 면이 있고. 지배구조도 집중투표제에 불리하지 않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이동통신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기간산업과 유사한 면이 있어 사업적 부침이 크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SK스퀘어는 그룹의 핵심 사업과는 다소 거리가 먼 11번가 등 전자상거래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또 애초에 대주주 지분율이 낮아 집중투표제가 불리하지 않다는 특이점이 있다. SK㈜의 SK텔레콤과 SK스퀘어 보유 지분율은 각각 30.01%와 30.06%에 불과하다. 이는 양사의 소액주주 지분율 합계인 50.6%와 35.5%보다 낮은 수준이다.

SK㈜가 보유한 SK텔레콤·스퀘어의 지분율은 적은 편이지만 우호세력인 국민연금과 노르웨이 중앙은행 등이 각각 회사의 지분율을 13~17%가량 보유해 경영에 안정성을 더해주는 구도다. 대주주가 40% 이상의 지분율을 보유하고 독자 경영을 하는 국내 다른 대기업과 다소 차이가 있다.

재계 관계자는 "오너 리스크가 있는 기업의 경우 집중투표제 채택을 원하는 소액주주가 많지만 대주주 입장에서 경영권 방어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아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SK스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