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덩 시대 회귀?...경제 악화 속 궁지에 몰리는 中 청년층
대학원 입학이 답?...취업난 궁여지책에 '덩샤오핑 시대' 유학열풍
비명문대 취업 지원 등 청년 위한 실질적 해결책 내놔야
마오쩌둥(毛澤東)과 덩샤오핑(鄧小平). 최근 중국 경제 상황을 놓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만큼이나 많이 언급되는 인물들이다. 마오와 덩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래 중국을 이끈 1·2세대 지도자들로, 이들이 언급되는 건 그만큼 중국 경제가 건국 이래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블룸버그는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중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4%대로 하향하자 “중국이 지난해 3%대 부진한 성장을 기록한 이후 올해와 내년에도 4%대 성장에 그친다면 마오쩌둥 시대 이후 처음으로 3년 연속 5% 미만 성장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978년 중국 최고지도자 덩샤오핑이 개혁과 개방을 표방하며 중국 경제는 눈부신 성장을 이룩해 왔지만 중국의 40년 호황은 이제 끝났다”고 평했다.
팬데믹 이후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에 힘입어 회복하는가 싶던 올해 중국 경제는 2분기부터 소비 및 수출 부진, 부동산 침체 등 각종 문제들이 연일 터져 나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부각되는 문제 중 하나는 바로 청년실업이다. 그러나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 당국이 내놓은 방안을 보면 마오와 덩 시대로의 회귀를 상기시킬 만큼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청년실업이라는 난제를 극복하기 위해 시 주석이 우선적으로 내놓은 대책은 다름 아닌 '귀농'이다. 시 주석은 지난해 12월 열린 중앙농촌공작회의에서 “강한 농업과 농촌 없이는 진정한 강국이 될 수 없다”면서 “지방 정부들은 대졸자뿐만 아니라 기업가와 도시로 떠난 농민공들도 다시 농촌으로 불러들여 그들이 현지에서 경력을 쌓을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마오쩌둥이 문화혁명(1966∼1976년) 시기 노동을 통해 민중의 삶을 배우라는 명목하에 지식인과 대학생을 농촌으로 내려보낸 하방 운동을 연상케 해 시진핑식 ‘신(新)하방 운동’이라고도 불린다.
시 주석의 신하방 운동에 맞춰 광둥성은 2025년 말까지 대졸자 30만명을 농촌으로 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고, 장쑤성도 올해부터 매년 최소 2000명의 대졸자를 농촌으로 보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지방정부들 역시 매년 농촌에 수만명의 대졸자를 보내는 방안을 마련해 청년들의 '농촌행'을 적극 독려하고 있다.
이 와중에 중국 16~24세 청년실업률이 3개월 연속 20%를 웃돌며 최고치를 경신하자 국가통계국은 이달부터 “고용 상황을 더욱 정확하게 반영하기 위함”이라며 관련 통계 발표를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눈 가리고 아웅한다’는 식의 조치지만 일단 청년들의 분노가 표출되는 것을 막고 보자는 의도가 짙어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청년 실업률은 중국 공산당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통계 지표"라며 "그들(공산당)은 미취업 청년들이 자신들의 통치를 위협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정치공학적 측면에서 보자면 시 주석으로서는 신하방 운동을 통해 청년들을 시골로 내려보냄으로써 사회 불안 요소의 제거라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내수 부진과 미국과의 패권 전쟁으로 인해 농촌 경제 활성화·식량 자급자족이 중국의 급선무가 된 상황에서 청년들이 대거 농촌으로 내려가면 이 두 가지 과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그러나 정작 실상은 다르게 흘러가는 모습이다. 농촌행을 택했던 청년들은 “당국이 바라던 대로 실제로 농촌에 정착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졸업 후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잠시 농촌으로 내려간 것일 뿐, 정식으로 취업하면 바로 다시 도시로 돌아갈 계획이라는 것이다.
광저우의 한 대학교에 재학 중인 황씨는 “농촌에서는 직업에 대한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정부의 농촌행 프로젝트에 전혀 관심이 없다”며 “대규모 인프라나 스마트 농업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수 있지만 이는 일반 학생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청년실업의 또 다른 해결책으로 내놓은 것은 대학원 진학이다. 취업이 마땅치 않을 경우, 대학원으로 진학해 고용 시장 진입을 늦추는 동시에 역량을 키워 경쟁력을 제고하라는 것이다.
중국 내에서 ‘가장 성공한 유학생’으로 평가받는 덩샤오핑은 외국과의 학문 교류 확대를 강조하며 1978년부터 적극적인 해외 유학 정책을 추진했다. 이에 지난 2021년까지 중국에서는 약 800만명의 학생들이 해외 유학길에 올랐다.
시 주석의 취업난 해결을 위한 궁여지책은 덩 시대의 유학 열풍에 불을 지피고 있다. 시 주석이 취업난 해결책으로 대학원 입학을 제시하면서 각 대학들이 대학원 입학정원을 크게 늘리고 있지만, 중국 고등교육 시스템에 대한 불만족과 불신으로 유학을 택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는 것.
중국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 유학을 선택한 졸업생은 전년 대비 23.4% 증가했다. 반면 올해 중국 대학원 입학시험 응시생은 전년 대비 3.7% 증가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증가율이 21%에 달했던 것을 감안하면 현저히 둔화한 수준이다.
대학원 입학 정원이 확대되면서 2015년 177만명이었던 대학원 입시 응시생 수는 지난해 474만명까지 증가, 일부 대학교에서는 석사 졸업생 수가 학부 졸업생 수를 뛰어넘기도 했다. 하지만 불과 1년 새 중국 내 대학원 진학률이 크게 꺾인 것이다.
중국 유학 전문 기구인 치더(啓德)교육집단에 따르면 유학길에 오르는 중국 학생 중 81.2%가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중국 내 교육 시스템에 대한 불신, 대학원 입시에 대한 거부감 등으로 해외 유학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미국 워싱턴 조지타운대에서 생물 정보학을 공부하기로 결정한 잔씨는 중국 대학에 입학하면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사상·정치 관련 수업과 관련 토론을 거론하며 “내 시간이 존중 받지 못한다고 느낀다”면서 “(중국) 국내 교육의 획일화와 형식주의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학교의 한 과정에만 지원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중국의 대학원 입시 체계 역시 문제다. 시험 합격률도 낮은 데다가 한 번 떨어지면 1년을 기다려 재수해야 하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미래 계획을 세워야 하는 졸업생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다.
중국 구인·구직 플랫폼 쯔롄자오핀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유학생 3명 중 1명은 유학 선택의 이유로 ‘중국 내에서의 치열한 경쟁’을 꼽았다. 유학 준비 과정은 상대적으로 여유롭고 입학 가능성이 높은 것에 비해 중국 내 대학원은 오히려 해외 대학원보다 경쟁이 치열해 1년을 투자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시 주석이 청년들의 ‘농촌행’과 ‘대학원행’을 밀어붙이는 건 결국 ‘실업’을 약점 삼아 청년들을 국가 경제를 살리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려는 것이라는 비난을 사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중국 정부가 농사를 짓고 음식 배달 등을 하면서 살아가는 청년들의 삶을 인위적으로 선전 및 홍보하는 것은 정부의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돌리려는 일종의 가스라이팅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볼 때 취업난 해결을 위한 열쇠는 당연히 경제 상황 개선에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비명문대 졸업생들에 대한 취업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오 중국취업연구소(CIER) 부연구원은 “명문 대학은 동문 자원 활용과 진로 지도 서비스 및 고용 정보 제공 측면에서 확실히 유리하다”며 “가장 분명한 문제는 명문대 졸업생은 여러 곳에서 취업 제안을 받지만, 이외 대학 졸업생들은 아예 취업을 제안 받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취업 정보를 통합해 학생들이 정확한 시장 데이터를 바탕으로 취업의 문을 두드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중국의 주요 명문대는 모두 공립대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정부로부터 충분한 재정적 지원을 받지만, 사립대의 경우는 정부의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게다가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비명문대 졸업생에 대한 실질적 지원은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허난성의 한 사립대학을 졸업한 구씨는 “졸업 학기에 학교에서 한 차례 취업 박람회를 개최했지만, 그마저도 도움은 전혀 되지 않았다”며 “취업증명서를 제출하라고 촉구하는 모임처럼 보였다”고 불만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