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정치를 '죽이는' 윤석열·이재명의 말

2023-07-10 12:29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사진=연합뉴스)

정치는 말(言語)로 한다고 했다. 말로 따지고 협의하고 토론해 갈등을 해결하고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을 정한다는 뜻이다. 정치에서는 그만큼  말이 중요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나 윤석열 대통령의 말은 소통과 토론의 정치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가 이 대표의 ‘핵 폐수’와 윤 대통령의 ‘킬러 문항 배제’ 발언이다. ‘핵 폐수’는  상황을 극단으로 몰고가는 말이다. ‘킬러 문항 배제’는  핵심이 정확히 드러나지 않는 모호한 말이다. 지금 한국에서 정치다운 정치가 행해지지 않거나 국정에서 혼란이 벌어지는 데는 이 대표나 윤 대통령의 적합하지 못한 말들에도 그 큰 원인이 있을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 6월 17일 인천 부평역 인근에서 열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 반대 규탄대회’에서 “사실 오염수도 순화된 표현”이라며 “(국민의힘이) ‘핵 오염수’라고 (말한 민주당 인사를) 고발한다니 앞으로는 아예 ‘핵 폐수’라 불러야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날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 회의에서는 "원전 오염수 투기는 최악의 방사능 투기 테러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고 했다. 


이재명 '핵 폐수', 오염수 문제 정치 논의 여지 차단 


‘핵 폐수’는 어떤 경우에도 사람 몸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 ‘방사능 테러’도 사람에게 절대로 행해져선 안 된다. 둘 다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핵 폐수나 방사능 테러라고 하는 순간 오염수 처리 문제는 더 이상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사람 목숨을 앗아갈 문제인데  오염수를 어떻게 처리하고 어떻게 방류하느냐를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무조건 방류를 못하게 하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 

 

논의 자체가 무의미하다면  오염수 처리 문제는 정치적 토론 테이블 위에 올려질 수가 없다. 정치에서 배제하고 차단할 수밖에 없다. 정치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오염수 방류가 우리 해양과 수산물에 미칠 영향을 최대한 막으려면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지, 일본은 물론이고 국제사회에는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를 두고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게 정치다. 그러자면 오염수 처리 문제가 협상과 타협,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대표 말대로 ‘핵 폐수’이고 ‘방사능 테러’라면 협상과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정치의 주제가 될 수 없다. 이 대표는 오염수 처리 문제에 관한 한 정치의 문을 굳게 닫아 잠근 셈이다. 

 

실제로 민주당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오염수 방류 계획이 국제 안전기준에 부합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하자 그 신뢰성을  부정하고 나섰다. ‘일본 맞춤형 보고서’ ‘일본 용역 보고서’라고 깎아내렸다. 국회의사당 본관에서 ‘오염수 방류 반대’를 주장하는 1박2일 농성도 벌였다. 우리 정부에도 비난을 퍼부었다. 이재명 대표는 IAEA 보고서를 ‘겸허히 수용한다’는 대통령실 발표를 두고 “혹세무민”이라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위협을 방치하는 정권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오염수 투기 방조하는 윤석열 정부 규탄한다” “윤석열 정부는 일본 대변인 그만하고 당당하게 반대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오염수 처리 문제에 관한 한 ‘윤석열 정권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하는 판이니 민주당이 정부 여당과 머리를 맞대고 오염수 처리 문제를 논의할 여지는 없다. 정치로 풀 가능성은 없다. 이런 정치 배제 또는 차단 상황은 이 대표가  ‘핵 폐수’ ‘방사능 테러’라고 하는 순간 이미 굳어진 것이다. 정부는 이 대표의 ‘핵 폐수’ 발언에 대해 “이러한 단어 선택은 우리 국민들께 과도하고 불필요한 걱정과 우려를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했다. 걱정과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여야 간 또는 오염수 처리 문제에 대해 의견을 달리하는 모든 사람이나 단체들 사이에 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와 토론이라는 정치의 문을 잠가 버린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윤석열 '킬러 문장 배제', 핵심 빗나가 혼란 초래


윤 대통령의 ‘킬러 문항 배제’ 발언은 국정 혼란을 부른 대표적 사례다. 윤 대통령은 지난 6월 15일 이주호 사회부총리겸 교육부장관에게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대입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과도한 배경 지식을 요구하거나 대학 전공 수준의 문항 등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는 부분의 문제를 수능에서 출제하면 이런 것은 무조건 사교육에 의존하라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고 대통령실이 말했다.


이주호 장관도 윤 대통령이 “공교육 교과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 발언은 국어·수학·과학 등 여러 과목을 망라한 통합형 문제나 지나치게 어려운 ‘킬러 문항’을 내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됐다. 올해 수능은 ‘쉬운’ 수능이 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쉬운 물수능’ ‘어려운 불수능’ 논란으로 이어졌다. 


그러자 다음날인 16일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서면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은 어제 이주호 교육부 장관에게 ‘쉬운 수능’ ‘어려운 수능’을 얘기한 것이 아니다”라고 다시 설명했다. “공정한 변별력은 모든 시험의 본질이므로 변별력은 갖추되 공교육 교과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는 수능에서 배제하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쉬운’ 수능이 아니라 공교육 과정 내에서 출제하는 ‘공정한’ 수능을 강조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쉬운’ 수능이 아니라 ‘공정한’ 수능을 말한 것이라고 명확하게 설명해야 했다. 윤 대통령이 ‘과도한 배경 지식을 요구하거나 대학 전공 수준의 문항 등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는 부분의 문제’를 지적한 것은 지나치게 어려운 수능이 아닌 ‘쉬운’ 수능이 돼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봐도 무리가 없다. ‘쉬운’ 수능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래 놓고는 쉬운 수능을 말한 게 아니라고 한다. 처음부터 명확하게 핵심을 말하지 않고 나중에 문제가 되면 ‘그게 아니라 이런 뜻’이라고 하는 게 문제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6월 19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공정 수능을 강조한 것인데 민주당이 발언의 본질은 보지 않고 ‘물수능, 불수능’ 운운하며 국민 갈라치기와 불안감 조장에 나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리 있는 말이다. 사안의 핵심을 외면한 채 지엽말단을 갖고 정쟁을 벌이는 것은 국정을 논하는 합리적 자세가 아니다. 그러나 불명확한 발언으로 정쟁 빌미를 준 것도 잘못이다. 수능 개선을 통한 교육 개혁이라는 본질은 흐려지게 하고 엉뚱한 논란만 일으키지 않았는가.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공정한 수능에 대한 의지를 담은 지극히 타당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교육부가 국민들에게 잘못 전달하면서 혼란을 자초한 것에 대해 엄중히 경고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 말대로 교육부가 국민들에게 잘못 전달했다면 애초 교육부에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한 대통령실에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말은 정치의 기본' 아리스토텔레스 지적 새겨야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이라는 저서에서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은 인간만이 ‘언어’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른 짐승들은 고통이나 쾌락을 나타내는 ‘소리’만 낼 수 있지 언어 능력은 없다고 했다. 언어 능력이 없으니 소통과 토론이 불가능하고 힘과 힘으로 싸우는 약육강식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은 언어 능력이 있기에 무엇이 이롭고 해로운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표현하고 토론하고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짐승에게는 정치가 불가능하지만 인간에게는 정치가 가능하다고 했다. 


말을 통해 무엇이 이롭고 해로운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논의하고 토론하고 판단하는 것이 정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언어를 통해 소통하고 협의하는 능력을 정치의 기본이라고 한 것이다. 언어를 통한 소통과 협의의 정치가 가능하려면 언어가 그 본래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말을 신중하고 명확히 하는 것도 그 하나다. 쟁점 사안을 정치적 논의의 테이블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한다든지, 핵심을 빗겨나가 혼란만 불러일으킨다든지 하면 정치다운 정치가 이뤄질  수 없다. 이 대표에게는 ‘신중함’, 윤 대통령에게는 ‘명확함’이 요구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