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비가오나 폭염이나 명동은 '개문냉방'..."나만 닫을 수 없어"

2023-06-25 09:39
단속은 유명무실

지난 22일 명동거리에 있는 상가 대부분이 문을 연 채 에어컨을 가동하는 '개문냉방' 상태로 영업을 하고 있다. [사진=백소희 기자]


지난 22일 오후 4시께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화장품·옷·액세서리 가게가 즐비한 명동거리에서는 길거리 음식을 파는 노점상이 내뿜는 화구 열기와 관광객들이 붐비는 틈새로 시원한 에어컨 냉기가 느껴졌다. 호객 행위에 한창인 종업원들 등 뒤로 활짝 열린 가게에서 세찬 에어컨 바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문을 열고 에어컨을 틀면 냉방비가 걱정되지 않냐”는 질문에 “여기서는 원래 다들 문을 열고 영업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날 정오 무렵 기자가 찾은 명동역 7번 출구에서 명동 국립예술극장까지 약 300m에 이르는 거리에 있는 1층 상가 50여 개 중 문을 닫고 영업하는 곳은 단 2곳에 불과했다.
 
이날 오전 10시께 명동거리 상가들은 문을 닫은 채 제품을 옮기거나 문을 열고 청소를 하는 등 영업 준비에 한창이었다. 30분이 지나자 가게 절반가량이 문을 열고 영업을 시작하더니 11시 무렵이 되자 거의 모든 상가가 에어컨을 튼 채 문을 열고 영업에 임했다.
 
전날 내린 비 영향으로 폭염은 한풀 꺾였지만 날씨와 상관없이 ‘개문냉방’은 명동거리에 ‘관성’으로 자리 잡은 모습이었다. 이날 한낮 최고기온은 26도로 비교적 선선한 날씨가 지속됐지만 문을 열어둔 채로 냉방을 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영업시간 중 문을 닫아 둔 곳은 스위스 시계 전문점과 이중문이 있는 잡화점 단 2곳에 불과했다.
 
종업원들은 '고객이 들어오기 힘들다'는 이유로 대부분 문을 열어 놓고 있었다. 액세서리 가게 종업원 김모씨(40)는 “문을 닫아 놓으면 고객이 들어오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 다른 화장품 가게에서 일하는 박모씨(32)는 “고객들이 더 잘 들어오도록 문을 열어 놓으라고 본사에서 지침이 있었다”며 "이곳에선 다 열어 놓는데 우리만 닫기 힘들다"고 했다. 양손에 마스크팩을 들고 호객에 한창이던 A씨는 "이곳에서 일한 지 2개월 됐는데 항상 문을 열어 놨다"고 전했다. 

시민 김모씨(27)는 "걸어다닐 땐 시원한 냉기가 느껴져서 좋긴 하지만 과도하게 냉방하는 것 같아 찜찜하기도 하다"며 "지구온난화도 심해진다는데 정부는 규제를 안 하는지도 궁금하다"고 우려했다. 
 
유명무실한 '개문냉방' 단속···코로나 때문에 중단·길어봤자 2주

서울시는 중구청·산업통상자원부·한국전력공사 등과 지난 20일 명동 국립예술극장 앞에서 여름철 에너지 절약 합동 캠페인을 벌이고 개문냉방 영업 자제를 권고했다. 하지만 명동거리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중구청 관계자는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관련 고시가 내려오지 않는 이상 단속이 아닌 캠페인 형식인 '권고'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에너지 사용 제한에 관한 공고'를 하면 지방자치단체는 이를 법적 근거로 삼아 개문냉방을 단속할 수 있다. 정부는 2011년 대규모 정전(블랙아웃) 사태를 겪은 후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매년 개문냉방 단속을 해왔지만 최근 코로나19로 환기가 중요해지면서 단속이 중단됐다.

이 같은 이유로 개문냉방 단속은 단기로 일하는 외국인 종업원들이 많은 명동거리에선 '금시초문'이 됐다. 중구청 관계자는 "코로나 이전에는 보통 8월에 임박해서 고시가 내려왔다"며 "그마저도 과태료 처분을 할 수 있는 단속기간은 1~2주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