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향방]"공교육 안에서 출제" 대통령 지시...전문가들 "사교육과 전쟁 필요"

2023-06-20 15:37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대비 모의고사인 6월 전국연합학력평가가 실시된 지난 1일 오전 대전 유성구 노은고등학교에서 고3 학생들이 시험을 치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주문에 따라 당정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초고난도 문제를 일컫는 '킬러 문항'을 출제하지 않기로 하자 교육계에선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오는 27일 발표하는 사교육비 경감을 위한 대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교육 대책에서 정부가 명확한 신호를 주는 게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윤 대통령이 '정부와 사교육계 카르텔'을 언급한 만큼 보다 강력한 방침을 밝혀야 혼란이 수그러들 수 있다는 것이다. 
 
"킬러 문항 존재 바람직하지 않아"
20일 아주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고3 학생을 둔 학부모들 상당수는 "수능이 5개월도 남지 않았는데 갑자기 (정책을) 바꾼다는 게 말이 되나. 변별력 높이려고 지금까지 어려운 문제 위주로 공부했던 학생들은 뭐가 되나"며 불만을 털어놨다. 

하지만 교육 전문가들 대부분은 수능 개편과 관련한 정부 취지는 '옳은 방향'이라고 입을 모았다. 변별력을 가르던 킬러 문항을 배제하고도 난이도 조절에 성공할 수 있는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일각에선 이번 수능 출제위원을 다들 기피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수능에 있어서 '킬러 문항' 존재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킬러 문항을 출제하지 않고도 난이도 조절에 성공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킬러 문항을 없앴는데 수능 고득점자가 다수 나오고 한 문제 실수해서 등급이 바뀌거나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상당한 원성을 들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주호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도 "평가 영역인 시험이 갖춰야 할 기본이 '변별력'인데 이를 고등학교 교육을 망치면서까지 갖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공교육이 다루는 범위 내에서 시험을 내겠다고 하는 정부 측 취지는 옳다"고 평가했다. 다만 "대입을 정부가 관여하는 게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건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 나오는 '물수능' 우려는 이르다는 의견도 적잖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입시연구소장은 "'킬러 문항'과 변별력은 크게 상관이 없다"며 "한 과목 시험이 아니고 가산점·가중치도 다르니 변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9월 모의고사 결과가 이번 수능을 가늠할 수 있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수능 출제 기조 변화에서 '사교육 문제 해결'
이 같은 정부 기조는 공교육을 위협하는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며 "이게 사교육 대책을 위한 출발점이자 기본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교육부와 사교육이 한편(카르텔)이라는 말인가"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 [표=통계청]

초·중·고등학생 사교육비 지출액은 매년 늘고 있다. 최근 2년 연속 최대치를 기록할 정도다. 통계청이 지난 3월 발표한 '2022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약 26조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약 23조4000억원과 비교할 때 2조5000억원이나 증가한 액수다. 

학교 교육 외에 학원에 가는 이유로는 일반 교과 수업을 보충하기 위한 목적이 50%로 가장 많았고 선행 학습이 24.1%, 진학 준비가 14.2%를 차지했다. 예·체능 관련 교과에 대해 사교육을 받는 이유로는 '취미·교양·재능계발' 비중이 63.4%로 가장 높았다. 

당정이 전날 '공교육 경쟁력 강화‧사교육비 경감'을 위해 킬러 문항을 수능 출제에서 배제하기로 하자 주요 인터넷 강의(인강) 강사들이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카르텔을 인정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거세다. 
 
교육계 "사교육과 전면전 등 '명확한' 시그널 필요"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비정상적으로 커지는 사교육 시장을 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교육 정책에 있어 정부의 명확한 메시지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교육부는 21일 학교 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을, 27일에는 사교육 경감 대책을 각각 발표할 예정이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사교육 대책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일관성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며 "(대통령이) 사교육과 정부 간 카르텔을 지적한 만큼 사교육에 대해 전쟁을 선포해도 무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양 교수는 "지금까지 나온 사교육비 경감 대책 중에 효과가 있는 것을 선별하는 게 중요하다"며 "EBS 연계율을 높이는 방안으로 학교가 어느 정도 준비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공저 등으로 활용될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당정은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EBS 활용을 대폭 늘리겠다고 했다. 이를 두고 EBS 교재에 대해 수능 연계율을 높이겠다는 얘기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앞서 교육부는 지난 3월 "EBS와 수능 연계율 50% 수준을 유지하고 연계 체감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출제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실제로 EBS와 수능 연계율이 높아질수록 사교육비가 줄어드는 결과가 나온 바 있다. 2010년 교육부는 2011학년도 수능부터 EBS 연계율을 70%로 높이겠다고 예고했다. 그 결과 2010년 초·중·고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4만원으로 전년 대비 0.8% 줄었다. 하지만 2013년부터 1.3%로 늘어 사교육비 증가세로 돌아섰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입시연구소장도 "장기적으로 취지가 좋은 정책"이라면서도 "성급한 부분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킬러 문항 배제'로 단기적으로는 사교육 시장이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도 "정부가 수험생 혼란을 줄이려면 6월 모평에 대한 브리핑이 먼저라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