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제사 주재자, 나이순으로"…'장남 우선' 종전 판례 뒤집어

2023-05-11 16:30

[사진=연합뉴스]


민법상 '제사 주재자'는 유족 간 합의가 없으면 성별에 관계 없이 가장 가까운 직계비속 중 최연장자가 맡는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이 나왔다. 장남에게 우선권을 줬던 기존 대법원 판례가 15년 만에 변경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11일 망인의 본처 A씨와 두 딸이 내연녀 B씨와 추모공원을 운영하는 재단법인을 상대로 낸 유해인도 청구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와 1993년 혼인해 슬하에 두 딸을 두고 있던 망인은 내연녀 B씨 사이에서 아들까지 낳았다. 망인 사망 후 내연녀 아들은 망인의 유해를 추모공원이 내 봉안당에 봉안했다. 이에 A씨와 두 딸은 유해인도 소송을 냈다.

1·2심은 모두 "민법상 제사주재자를 정하는 규정이 없어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에는 일정한 기준에 의해 공동상속자 중에서 제사주재자를 정할 수밖에 없다"며 B씨의 손을 들어줬다. 고인의 유해와 분묘 등 제사용 재산의 소유권을 갖는 제사 주재자의 지위는 장남에게 우선한다는 종전 판례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종전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리는 더 이상 조리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려워 유지될 수 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장손 등 남성 상속인을 제사주재자로 우선하는 것은 성별에 의한 차별을 금지한 헌법 제11조 1항,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에 기초한 혼인과 가족생활을 보장하는 헌법 제36조 1항의 정신에 합치하지 않는다"며 "제사용 재산의 승계에서 남성 상속인과 여성 상속인을 차별하는 것은 이를 정당화 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사와 제사용 재산의 승계제도는 조상숭배라는 전통에 근거하면서도 헌법상 이념과 조화돼야 하는데, 제자주재자를 정할 때 여성 상속인을 열위에 두는 것은 현대적 의미의 전통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인정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중 성별을 불문하고 최근친의 연장자가 우선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원심은 최근친의 연장자를 제사주재자로 우선하되 다만 그 사람이 제사주재자가 되는 것인 현저히 부당하다고 볼 사유가 있는지를 심리해 판단했어야 했다"며 "원심의 판단에는 제사주재자 결정방법에 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판례 변경으로) 종래 남성 중심의 가계 계승을 중시한 적장자 우선의 관념에서 벗어나 헌법상 개인의 존엄 및 양성평등의 이념과 현대사회의 변화된 보편적 법의식에 합치하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