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단 향하는 車시장] 국내 시장서 기 못펴는 픽업트럭·쿠페·왜건

2023-05-03 08:30
실용성·가격·디자인 측면 비선호···SUV 판매량 36분의 1 수준 그쳐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세단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반면 픽업트럭·쿠페·왜건은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좀처럼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픽업트럭·쿠페·왜건은 실용성과 가격, 모델 다양성 측면에서 낮은 평가를 받으며 1대의 SUV 판매량에도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고 있다. 특히 최근 출시되는 SUV와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이 세단의 승차감과 넓은 적재 공간에 초점이 맞춰지는 동시에 가격 경쟁력까지 겸비해 세 차종의 대체재로 부상하고 있다는 평가다. 

3일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승용 자동차 판매량은 38만2842대로 전년 동기 대비 14% 증가했다. 

외형별로 보면 SUV가 22만4253대로 가장 많이 팔렸고 세단이 13만8896대로 뒤를 이었다. SUV의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 세단은 17% 늘었다. SUV가 전체 판매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9%다. 세단은 36%의 비중을 차지했다. 

반면 왜건과 쿠페, 픽업트럭은 국내 시장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픽업트럭은 전년 동기보다 54% 감소한 4656대, 쿠페는 7% 줄어든 707대 팔렸다. 왜건 판매량은 812대로 70.2% 증가했으나 전체 판매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2%에 그친다. 왜건과 쿠페, 픽업트럭의 판매량을 다 합쳐도 SUV 판매량의 36분의 1 수준이다. 이들 차량의 판매량은 매년 감소 추세다. 픽업트럭은 2018년 4만1466대에서 지난해 2만9685대로 줄었다. 쿠페는 4352대에서 지난해 3370대로 감소했다. 

이들 차량은 한정된 모델과 낮은 실용성으로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대차는 11년 만에 트렁크 공간을 세단보다 40% 넓힌 G70 슈팅브레이크를 출시했지만 지난해 7월 판매 개시 이후 지금까지 946대의 판매량을 거두는 등 신차 효과를 내지 못했다. 이는 세단 G70의 올 1분기 판매량(1238대)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왜건은 유럽과 일본 등에서 인기가 높지만 국내 소비자들로부터는 디자인 측면에서 '짐차' 등의 혹평을 받으며 외면받았다. 왜건은 뒷좌석과 트렁크가 합쳐진 형태여서 짐을 세단보다 많이 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SUV의 적재 능력과 세단의 승차감이 더해진 CUV 출시가 잇따르며 왜건이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는 평가다. 

판매가 부진하니 업체들은 새 모델을 개발하지 않아 더욱 안 팔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국내 생산 왜건은 현대차의 슈팅브레이크가 유일하며 이 외에 6종의 왜건만이 팔리고 있다. 쿠페의 경우 문이 두 개밖에 없어 사람을 많이 태울 수 없고 그만큼 적재공간도 부족하다. 빠른 주행에 목적을 둔 고성능 쿠페가 많아 출고가도 대체로 높다. 문 개수로 세금을 매기는 국내 시장에서는 더욱 불리하다. 

현대차그룹에서는 제네시스 쿱, 아반떼·포르테, K3 쿱 등을 제외하고는 쿠페 신차가 출시된 적이 없다. 벤츠도 C클래스, E클래스, S클래스 쿠페를 순차적으로 단종시키는 등 글로벌 완성차업계는 비인기 차종인 쿠페 대신 SUV를 중심으로 판매 전략을 짜고 있는 추세다. 

픽업트럭은 왜건, 쿠페보다 많이 팔렸지만 SUV, 세단 인기 차급에 비해 열세인 것은 마찬가지다. 올 1분기 픽업트럭 전체 판매량을 합쳐도 그랜저(3만2750대), 카니발(2만1419대), 스포티지(1만7887대), 쏘렌토(1만6998대)보다 적다. 고급 픽업트럭은 가격이 1억원에 육박하고 주유비가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판매량 하락을 야기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출시되는 픽업트럭은 전장이 5000~5600mm, 전폭 1850mm 정도로 차체의 대형화가 이뤄지고 있다. 좁은 도로 폭과 오래된 건물의 주차장으로 주행과 주차에 어려움을 겪는 점도 걸림돌로 지목된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세 차종은 일반 소비자보다 마니아층 구매가 많은 차종"이라며 "유럽, 미국에서는 실험적 모델이 인기를 얻지만 국내에서는 실용성을 중시한 차량의 판매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비인기 차종은 실용성·희귀성 측면에서 소비자들의 눈에 띌 때 판매량이 늘어난다"며 "소비자 눈높이에 맞춘 섬세한 제품 구성과 차별화, 성능 등에 초점을 맞춰 상품성을 개발해야 한국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G70 슈팅브레이크 [사진=현대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