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 中 전기차 배터리 '거품론' 속 활로 찾는 기업들

2023-04-19 09:28
'공급과잉' 부메랑···쌓여가는 배터리 재고
해외 진출·ESS 사업 확대···활로 모색

중국 장쑤성 창저우에 소재한 중국 3대 전기차 배터리기업인 중촹신항(中创新航, CALB). 지난해 말부터 감산에 돌입하며 직원들의 작업량을 줄이고 연봉을 삭감하는가 하면, 일부 근로자들도 내보냈다. CALB의 한 직원은 전기차 배터리 경기가 이렇게 식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최근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에 토로했다. 

창저우는 중국 전기차 배터리 기지로, 중국 전체 연간 전기차 배터리 주문량의 3분의 1을 생산한다. CALB를 비롯해 비야디(比亞迪, BYD), 펑차오넝위안(蜂巢能源, SVOLT) 등 다른 중국 배터리 기업 공장도 이곳에 포진해 있다. 하지만 최근 창저우의 다른 배터리 공장도 힘든 상황이긴 마찬가지다. 

한때 투자 광풍이 불었던 중국 전기차 배터리 경기가 신에너지차 판매 위축으로 공급 과잉에 시달리고 있다. 배터리 기업들은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업을 확장하고, 해외 진출에 속도를 내는 등 활로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중국 배터리 생산공장에서 근로자가 제품을 검수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공급과잉' 부메랑···쌓여가는 배터리 재고
중국내 전기차 판매량이 둔화하고 있는 게 배터리 공급 과잉을 야기한 주요 원인이다. 

11일 중국 승용차시장정보연석회의(CPCA) 집계에 따르면 3월 중국 신에너지차 판매량은 54만3000대로, 전년 동기, 전월 대비 각각 21.9%, 23.6% 늘었다. 이로써 올해 1분기 누적 신에너지차 판매량은 131만3000대로, 전년 동기 대비 22.4% 증가했다. 하지만 지난해와 재작년 같은 기간 각각 100%, 300% 이상씩 증가세를 보였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둔화한 것이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전기차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배터리 공급량은 부족했다. 중국 전기차산업기술혁신전략연맹(CAEV)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중국 전기차 배터리 생산 대비 판매 비율은 132.7%까지 급증해 공급이 달리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4분기 이 비율은 56.4%까지 하락했다. 이 기간 배터리 생산량은 전달 대비 4.8%씩 증가한 반면, 판매량은 40%씩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중국 전기차산업기술혁신전략연맹(CAEV)]

그동안 전기차 산업 호황에 힘입어 배터리 기업들은 고용과 생산을 대대적으로 확장하며 투자 광풍이 불었다. 창저우는 물론, 다른 지방도시들도 잇달아 배터리 산업 육성 계획을 내놓고 보조금을 비롯한 우대 혜택을 쏟아내며 배터리 사업 투자를 유치하는데 안간힘을 쏟았다. 2월 중국 공업정보화부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40개 넘는 배터리 사업 프로젝트 계획이 발표됐는데, 전체 배터리 생산력만 1200기가와트시(GWh) 이상, 투자 예상액만 4300억 위안(약 82조원)에 달했다. 

배터리 수요가 급증하면서 배터리 핵심 소재인 리튬 가격도 덩달아 뛰었다. 지난해 11월엔 탄산리튬 가격이 톤당 60만 위안까지 치솟았다. 2년 전까지만 해도 톤당 10만 위안에 불과했다. 

하지만 중국 전기차 보조금 정책이 지난해 말 만료된 데다가 소비 회복세도 부진하면서 전기차 판매세도 둔화했다. 과거 배터리 업계의 대대적인 투자는 공급 과잉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고, 기업마다 전기차 배터리 재고가 쌓여갔다.

에너지 컨설팅기업 리스태드 에너지에 따르면 현재 중국 배터리 기업과 전기차 기업에 쌓인 배터리 재고량은 각각 80GWh, 103GWh에 달한다. 둘을 합친 재고량은 전년도 갑절 수준이다.  현재 중국 전기차 배터리 전체 탑재량 295GWh의 62%에 달하는 수준이다.

공급 과잉은 배터리 가격 인하로 이어졌다. 중국 배터리왕 CATL도 치열한 경쟁 속 주문을 수주하기 위해 지난 2월부터 완성차 업체에 할인된 가격에 배터리를 제공할 정도다. 재고 압박을 줄이기 위해 감산 조치도 취했다. 한 전기차 업계 애널리스트는 1~2월 중국 양대 배터리 기업인 비야디와 CATL만 생산라인 절반 이상을 가동했고, 나머지는 생산라인 절반 이상이 멈춰섰다고 전했다. 

배터리 가격 인하 전쟁 속 리튬 가격도 곤두박질쳤다. 최근 수개월간 탄산리튬 가격은 거의 하루에 10% 속도로 하락하면서 현재 톤당 20만 위안 아래로 추락했다. 상하이철강연합에 따르면 13일 탄산리튬 가격은 톤당 19만5000위안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최고점과 비교해 이미 3분의1 토막 났다. 
 
해외 진출·ESS 사업 확대···활로 모색
배터리 제조사들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우선 리튬 가격이 급락하는 가운데서도 남미·호주 등지에서 리튬 채굴권을 쥐기 위해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최근 미국 등과의 경제 패권 다툼 차원의 투자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1월 CATL 주도의 컨소시엄이 1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볼리비아 정부로부터 리튬 광산 개발권을 확보한 게 대표적인 예다. 

실탄 확보에도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 리튬 배터리 기업들은 스위스 거래소에서 해외주식예탁증서(GDR)를 발행하며 기업공개(IPO)를 진행한 것. 궈쉬안가오커(國軒高科)와 신왕다(欣旺達·Sunwoda)가 각각 6억8500만, 4억4000만 달러 규모의 IPO를 진행했다. CATL도 이르면 내달 스위스에서 50억 달러(약 6조6000억원) 규모의 IPO를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당국의 우려로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고 앞서 로이터는 보도했다. 

국내 치열한 경쟁을 피해 해외 진출에도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CATL, SVOLT, 이브에너지 등이 지난해 줄줄이 해외 사업 진출 계획을 발표했다. 

앞서 2월엔 미·중 지정학적 갈등 속에서도 CATL이 미국 완성차기업 포드와 미국 미시간주에 배터리 공장을 짓는다는 계획을 발표해 화제가 됐다. 

유럽은 중국 배터리 기업에 미국보다 그나마 더 쉬운 행선지다. CATL, SVOLT, 이브에너지, 궈쉬안가오커가 독일에 각각 건설할 예정인 공장의 생산력을 합치면 총 74GWh에 달한다. CATL은 헝가리에도 73억 유로를 투자해 100GWh급 생산라인을 건설할 계획이다. 

전기에너지를 저장하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업에도 적극 뛰어들고 있다.  ESS는 전기에너지를 저장 장치에 담아뒀다가 필요할 때 공급해 전력 사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시스템이다. 친환경·저탄소 정책을 펼치는 중국 정부 지원에 힘입어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앞세운 중국 기업들은 ESS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ESS 배터리 점유율은 CATL이 43.4%로 1위, 비야디가 11.5%로 2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