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선의 시시비비] 망언으로 망한 자

2023-04-02 04:02

김재원 국민의힘 수석최고위원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지난달 12일 극우 성향인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 왈, “5·18 정신을 헌법에 넣겠다고 하는데 그런다고 전라도 표가 나올 줄 아느냐. 전라도는 영원히 10%다”.
 
“그건 불가능하다. 저도 반대한다”고 답한 그.
 
며칠 뒤인 25일(현지시간)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한인단체 행사에선 아예 “전 목사가 우파 진영을 전부 천하통일했다”고 말한 그.
 
그는 바로 대한민국 집권여당의 지도부,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의 핵심인 김재원 수석최고위원이다.
 
김 최고위원의 잇단 발언은 설화(舌禍)의 수준을 넘어 ‘망언(妄言)’이 아닐 수 없다.
 
여론이 악화하자 당 지도부도 마지못해 ‘경고장’을 날렸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달 28일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당이 겨우 새 출발을 하는 단계인데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매사에 자중자애하고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했다.
 
위기감을 느낀 김 최고위원은 공개사과했다. 지난달 30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근 저의 발언으로 국민 여러분께 많은 심려를 끼치고 당에도 큰 부담을 안겨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며 “앞으로 더 이상 이런 일이 없도록 자중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전광훈의 ‘전’ 자도 꺼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김 최고위원이 과연 ‘전광훈 카드’를 꺼내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망언의 습관이 반복될 가능성도 크다. 김 최고위원은 전 목사의 극우 세력 동원력이 지난 3·8 전당대회 경선에서 제법 영향력을 끼쳐, 자신의 당선을 이끌었다고 보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 TK 지역에 출마할 예정인 그로선 5·18처럼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소재에 또다시 구미가 당길 것이다.
 
김 최고위원의 망언도 문제지만, 계속된 그의 망언을 당 지도부가 사실상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김 대표는 김 최고위원의 사과 직후 “차후 또다시 이런 행태가 반복되면 그에 대한 또 다른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만 했다. 본인이 공개사과를 했으니 일단은 징계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유승민 전 의원과 홍준표 대구시장, 이준석 전 대표 등이 잇달아 “맨날 실언만 하는 사람은 그냥 제명하라”고 촉구했지만, 귀담아듣지 않고 있다.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인데, 그런 ‘말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 망언을 계속했던 자들의 말로를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정동영 전 의원이다.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일명 ‘노인 폄하’ 발언을 하고 만다. 이는 그의 정치인생에 중대 오점이 됐다. 그는 한 대학생 인턴기자단과의 인터뷰에서 “60대 이상 70대는 투표를 안 해도 괜찮다. 그분들은 (투표일에) 집에 쉬셔도 되고...”라고 말하면서 파장을 일으킨다.
 
정 의장은 노인정을 찾아 무릎을 꿇고 사과하고 급기야 ‘대국민 사과’까지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선거대책위원장과 당선이 확실한 순번 22번의 비례대표까지 반납하는 초강수도 통하지 않았다. 당시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차떼기 정당’으로 낙인 찍힌 한나라당에 압승이 유력했는데, 그의 노인 폄하 발언으로 겨우 과반 의석을 달성하는 데 그쳤다. 이로 인해 정 의장은 막대한 정치적 타격을 입었고, 사실상 정계의 뒤안길로 물러나게 됐다.
 
고질적 망국병인 ‘지역주의’를 조장하는 망언도 단골 메뉴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도 ‘대구 민란’ 발언으로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특히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이른바 ‘이부망천’ 발언은 파장이 상당했다. 당시 자유한국당 대변이이던 정태옥 의원이 한 방송에 출연해 “서울에서 살던 사람들이 이혼을 한 번 하거나 하면 부천에 가고, 부천에 갔다가 살기 어려워지면 인천 중구나 남구 이런 쪽으로 간다”는 근거 없는 발언을 했고, 이는 즉각 인천·부천에 대한 ‘지역비하’ 논란을 일으켰다.
 
같은 당이던 유정복 인천시장 후보와 인천 지역구 의원들이 정 의원의 비하 발언에 머리 숙여 사과했지만 민심은 싸늘했다. 당내에서 “의원직을 사퇴하고 정계를 떠나길 강력하게 촉구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결국 정 의원은 탈당하며 사죄했지만,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미래통합당에 복당하고도 끝내 공천을 받지 못해 국회를 떠나야 했다.
 
정치인은 매일 많은 말을 쏟아내지만, 범인(凡人)의 말과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언론이 그들의 입을 주목한다. 정치인 한 사람의 살아온 인생의 궤적과 소신, 깊은 철학과 강한 비전이 말 한마디 한마디에 담겨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더 크게는 우리나라를 사회·경제·문화적으로 부강하게 만들 ‘미래 비전’도 담겨 있다고 본다.
 
한마디로 위대한 정치인의 말은,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이 되는 것이다. 이에 부합하지 못하는 말을 쏟아낼 때 국민에게서 외면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미 망언으로 망한 자들이 그것을 몸소 증명했다.
 

[사진=아주경제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