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 판 흔드는 행동주의] 금융권 떨게한 기세 어디갔나, 산업권선 잇따라 좌절

2023-03-30 16:57
금융지주 주주환원 4~7% 올린 행동주의
BYC, KISCO홀딩스, KT&G 등 주총서 참패
업권따라 평가 갈리고 우호지분 확보 난항
태광산업, 남양유업 주총 표대결도 회의적
한계 분명하지만 'SM사태급' 파급력도 갖춰

[자료=각 사]


정기주주총회 시즌이 마무리돼가는 가운데 행동주의 펀드가 거둔 성과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올해는 업권에 따라 명암이 갈린 모습이다. 금융지주 등 금융권에서는 소기의 성과를 얻었지만 BYC, KISCO홀딩스, KT&G 등에서는 참패했기 때문이다.
 
3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태광산업, 남양유업 등은 31일 정기주총을 앞두고 있다. 태광산업은 트러스톤자산운용(이하 트러스톤), 남양유업은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이하 차파트너스)와의 표대결을 펼칠 예정이다.
 
트러스톤은 태광산업에 △배당확대 △자사주소각 △사외이사 선임 등을, 차파트너스는 남양유업에 △일반주주 지분의 50% 주당 82만원 공개매수(자기주식 취득안) △5분의 1 액면분할 정관 일부 변경 △보통주 1주당 2만원 배당 △감사선임 등을 주주 제안한 상태다.
 
남양유업은 지난 14일 차파트너스 공세에 맞서 발표한 의견표명서를 통해 “주주제안자(차파트너스)는 당사의 현재 경영상황을 전혀 고려치 않고 눈앞에 단기적 이익에만 치중하는 듯하다”며 “많은 행동주의 펀드들이 주가가 오르자마자 팔고 떠나는 일명 ‘먹튀’ 행보를 보여 자주 도마에 오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서는 다소 엇갈린 반응이다. 아직까지 국내 자본시장 환경을 감안했을 때 행동주의 펀드들의 ‘먹튀’보다는 경영진을 위한 사측 중심의 이사회 구성과 주주환원 정책이 미비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본시장 관계자들은 태광산업과 남양유업 정기주총에서 행동주의 펀드의 요구가 관철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이다. 그간 진행된 기업들의 정기주총에서 행동주의 펀드 제안들이 국민연금, 의결자문사 반대와 함께 소액주주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평가 때문이다.
 
또한 행동주의 펀드가 사측과의 표대결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지분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대다수 국내 행동주의 펀드의 기업 지분율은 5% 미만인 경우가 많아 소액주주 등 우군을 확보하지 못하면 제안이 묵살될 가능성이 높다.
 
태광산업은 트러스톤이 제안한 주식분할, 자사주 취득 등의 제안을 수용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호진 전 회장 등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이 54.53%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트러스톤 주주제안이 고스란히 반영되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태광산업은 소수점 매매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주식분할 실익이 크지 않고, 10년간 대규모 투자를 앞두고 현금성 자금 등 투자자금 확보가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앞서 지난 28일 KT&G 정기주총에서도 최대주주인 국민연금(8.03%)은 주요 안건에서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안다자산운용, 플래시라이트캐피털(FCP) 등이 제안한 △현금배당 최대 1만원 △자사주 소각 △분기배당 신설 △사외이사 확대 등의 안건은 부결됐다.
 
반면 금융지주 정기주총에서는 행동주의 펀드 제안이 받아들여진 경우가 많았다. 얼라인파트너스(이하 얼라인)는 지난 1월 국내 7개 금융지주사에 공개 주주서한을 보내 은행주 저평가 해소를 위한 주주환원율 제고를 제안했다. 이에 KB금융, 신한금융, 하나금융, 우리금융, DB금융 등은 정기주총을 통해 주주환원율을 4%포인트에서 7%포인트까지 상향시켰다.
 
이전에 얼라인은 뜨거운 감자였던 ‘에스엠(SM) 경영권 분쟁’에서 트리거 역할을 했다. 얼라인은 이수만 전 에스엠 총괄프로듀서가 라이크기획이라는 별도법인을 통해 수수료를 편취했을 때 행동주의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후 라이크기획이 청산됐고 카카오와 하이브의 에스엠 경영권 분쟁구도로 진화했다. 이때 카카오와 하이브가 공개매수를 추진하면서 입장이 바뀐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얼라인은 카카오의 경영권 확보결정 이후에도 우호주주로 남아 ‘SM 3.0 전략’ 실행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행동주의 펀드의 정기주총 성적표는 참담하지만 주총에 대한 개인투자자 관심을 환기시켰다는 건 유의미한 일”이라며 “행동주의 펀드가 주식을 장기보유하고 주주환원, 기업가치 제고 중심의 주주제안을 이어간다면 그간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