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재난·재해의 숨은 힌트 '지진 관측 데이터'

2023-03-22 08:58

유희동 기상청장


우리는 빅데이터 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빅데이터가 생산되며, 우리는 빅데이터들을 수집하고 분석해 또 다른 데이터를 생성하는 등 데이터가 자원이 되는 사회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기상관측자료, 위성자료, 지진관측자료 등 기상청이 매일 생산하는 다양한 빅데이터는 위험기상·지진 등의 재난 조기대응을 위한 의사결정에 활용된다.
 
특히 지진관측자료인 땅의 흔들림은 지진계를 통해 관측된다. 세계 최초 지진계로 알려진 중국 한나라의 '후풍지동의'로는 원기둥 위에 8방위로 놓인 용의 입에서 떨어지는 구슬 방향으로 지진이 발생한 방향을 파악했다고 한다. 돌아가는 회전통이 진동을 기록하는 아날로그 지진계는 각각의 관측지점과 진앙 간 거리들을 조합해 진앙지를 계산할 수 있었다. 현재는 디지털 관측으로 넘어오면서 많은 지진파 데이터로부터 작은 움직임의 위치와 크기까지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지진관측 데이터 발전은 우리나라 지진 발생 빈도수의 변화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규모 2.0 이상 지진이 아날로그 관측 시기였던 1978~1998년에는 연평균 19.2회 발생했으나, 디지털 관측 이후 1999~2022년에는 앞선 수치의 3배를 넘는 연평균 70.8회가 발생했다. 이는 이전보다 지진이 더 자주 발생했다기보다는 지진관측망이 조밀해지고, 장비 성능이 발달하고 분석기술이 향상된 영향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기상청은 신속한 지진감지를 위해 현재 전국 297개 지진관측소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으며, 공중음파관측소와 지구자기관측소도 운영 중이다. 원거리 관측을 위한 광대역지진계부터 근거리 관측을 위한 단주기지진계, 지반진동 세기 관측을 위한 가속도지진계까지 다양한 지진계들이 100분의 1초 단위로 아주 정확하게 진동을 기록하고 있다.
 
지진관측 데이터는 단순히 지진이 발생했을 때만 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10여 명의 울산 석유공장 폭발 사고 시에도 기상청은 사고 현장에서 약 9.5㎞ 떨어진 관측소에서 지진파를 감지하고, 폭발로 인해 생성된 음파를 기록하는 공중음파관측소 4곳에서 음파를 감지해 사고 발생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지진 자료가 사건 증거로 활용된다. 2012년 노르웨이 공군 비행기 추락사고에서 사고 지점 인근 지진계 기록으로 사고 시간을 계산하고 지진 규모로 비행기 속도를 추정해 사고 직전 비행기가 낮은 각도로 비행했음이 밝혀졌다. 이렇듯 지진관측 데이터는 지진탐지뿐 아니라 사고 정황을 모의함으로써 재난 사고 실마리를 찾는 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최근에는 재난대응관리를 위해 인공지능(AI) 기술과 연계한 지진관측 데이터 활용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전국에서 수집되는 방대한 지진파 자료는 주로 지진분석에 사용되고 있고, 기계학습·AI 등의 최신기술이 지진 데이터와 융합해 만들어 낼 지진분석이나 감시기술 영역의 한계를 우리는 가늠하지 못한다.

앞서 사례에서 시사하는 바와 같이 지진 발생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지진 발생 전 과정에서 수집된 자료들을 AI에 학습시키고, 도출된 결과를 이용하면 지진재난 대응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미래 재난안전을 위해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디지털 기술과 지진관측 빅데이터를 활용해 기상관측자료를 기반으로 기상예보를 하듯 지진 데이터를 통해 지진 예측뿐 아니라 각종 재난·재해의 숨겨진 힌트를 찾을 날도 멀지 않다고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