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랜덤워크 이론'이 유난히 떠오르는 요즘

2023-01-09 05:00

[장성원 국제경제팀장]

잘 알려진 주식 투자 이론 중에 ‘랜덤워크(Random Walk, 무작위 걸음)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이기도 한 버턴 말킬에 의해 널리 알려진 이 이론은, 증시가 랜덤워크라는 말 그대로 술 취한 사람의 걸음과 같이 무작위로 움직이기 때문에 향후 증시를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연초를 맞아 여러 기관과 전문가들이 올해 세계 경제 및 증시 전망을 내놓고 있다. 면면을 들여다보면 세부적 수치와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전반적 내용은 대체로 비슷한 맥락이다. 작년과 같이 고물가, 고금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거시적 환경에 큰 변화가 없는 가운데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의 경기 둔화 혹은 침체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최근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및 국경 개방)을 선언한 중국 정도만 변수로 보는 분위기이다. 이에 글로벌 증시 역시 최소한 올해 중반까지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지면서 부진한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시쳇말로 고생길이 훤하다. 투자자들에게 있어 직면하기 괴로운 상황이다. 이미 지난 1년간 주식을 비롯해 대부분의 자산 가치가 급락하며 고생길을 걸어왔는데, 앞으로도 상당 기간 희망의 빛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물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및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 주택 경기 하락에 베팅해 큰 성공을 거둔, 영화 '빅쇼트'의 주인공인 마이클 버리와 같이 증시 환경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뛰어난 대응 전략, 남다른 통찰력과 전문 지식 및 중요 정보 등을 활용해서 좋은 수익률을 올리는 투자자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투자자들의 경우, 경기와 유동성 환경 모두 좋지 않은 상황에서 좋은 수익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런 현실에 아예 시장으로부터 눈길을 돌려버린 투자자들도 있을 것이다. 필자의 주변만 하더라도 마이너스 수익률로 점철된 계좌를 보면서 스트레스만 받느니 차라리 신경을 쓰지 않겠다며 ‘비자발적’ 장기 투자자가 된 사람들이 적잖다. 실물 경제도 가뜩이나 좋지 않은데 금융 시장까지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다 보니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낙폭 과대' 요인 정도를 제외하고는 기대를 걸 만한 요소를 찾기 어렵다. 실제 한국거래소 발표에 따르면 1월 첫 주간 코스피 거래대금이 2020년 1월 이후 3년래 최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등 다른 글로벌 증시들도 대부분 거래가 부진한 것이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상황이 이래서일까? 예전에 배웠던 ‘랜덤워크 이론’이 자주 생각나는 요즘이다. 현재와 미래 모두 암울하다 보니 '랜덤워크 이론'을 빌미로 불확실성에 기대보고 싶은 마음도 아예 없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그러한 요행 심리를 차치하고라도 한 가지 분명히 기억해 둘 것은 있다. 그것은 바로 시장이 꼭 전망대로만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작년 증시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작년 이맘때 증시 하락을 예상한 기관도 많지 않았는데, 하물며 나스닥이 1년간 30% 이상 급락하리라 예측한 곳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또 러시아가 실제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연준이 그토록 엄청난 폭으로 금리를 인상하리라 예측한 곳도, 비트코인이 70%가량 급락하리라 예측한 곳도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것들을 예측하지 못했다고 해서 누구를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투자자들에게 정확한 예측을 제공하기 위해 최고의 경제 및 증시 전문가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최대한의 정보에 근거해 가용할 수 있는 최선의 분석 방법을 활용해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예측 결과를 제시한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고, 정확하게 예측한 부분들도 분명 있다. 다만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아무리 엄선된 과정을 거쳐 도출된 예측이라고 해도 결국 인간인 이상 틀릴 가능성이 있다는 본질적인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투자자들 역시 기본적으로 이러한 가능성을 인정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예측대로 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안될 수도 있다는 것. 

사실 예측을 벗어난 일들은 계속 일어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을 꽁꽁 닫고 제로 코로나에 몰두하던 중국이 그토록 빨리 리오프닝을 선언하며 위드 코로나로 전환할지 누가 알았겠는가? 또 오랜 기간 초저금리를 유지해오던 일본이 갑작스럽게 장기물 국채 금리를 인상하면서 통화정책 전환을 시사할지 누가 예측했겠는가? 미리 알았던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2023년에도 많은 일이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은 예상 범주 내의 일일 것이고, 어떤 것은 예상 밖의 일일 것이다. 현재 여러 가지 비관적 전망들이 나오고 있지만 정확히 어떻게 될지 확신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상황이 예상했던 것보다는 좋아질 수도 있고, 반대로 더 나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상황에 맞춰 적절하게 대응하는 자세도 필요할 것이다. 

경제와 증시를 바라보는 데 있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마음가짐은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는 겸손의 자세이다. 그리고 그러한 겸손의 자세는 상황이 좋을 때도 필요하지만, 현재와 같이 비관론에 휩싸이기 쉬운 상황에서도 빛을 발하는 덕목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