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준의 지피지기] 2023년의 중국 : 조심스러운 시진핑, 파이팅 넘치는 외교팀

2023-01-05 06:00

[박승준 논설고문]


 2022년 12월 31일 발표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2023년 신년사는 조심스러운 것이었다. 어렵다는 뜻인 ‘난(難)’이라는 글자가 9개나 들어갔다.
“기업들의 어려움을 풀어주기 위해(紓難解困)···” “인민들의 급한 어려움과 근심을 해결해주기 위해(急難愁盼)···” “전에 없던 곤란(困難)과 도전을 이겨내기 위해···” “자연재해와 안전사고는 견디기 어려워서(令人難過)···” “보기 드문 곤란(困難)···” “내가 늘 말하던 간난신고(艱難辛苦)는···”.
시진핑은 내일의 중국을 말하면서도 북송의 시인 소식(蘇軾·蘇東坡)의 시구(詩句)를 인용했다. “어려움과 마주하는 것은 멀리 가기 위함이요(犯其至難而 圖其至遠)···” “길이 아무리 멀고 일이 아무리 어렵더라도(路雖遠 事雖難)···”.
시진핑은 10년 전인 2012년 가을 중국공산당 총서기로 당선된 이후 벌써 10번이나 신년사를 발표했지만 올해처럼 조심스러운 표현에 조심스러운 표정을 보여준 일은 없었다. 지난해 신년사만 해도 ‘난(難)’이라는 글자는 2개에 불과했다.

올해 신년사에는 지난가을 20차 당대회에서 채택한 ‘두 개의 옹호(兩個維護·시진핑 총서기를 당의 핵심으로 옹호하고, 당 중앙의 권위와 통일적 리더십을 옹호)’라든가, 공동부유(共同富裕)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았다. 공동부유는 1978년에 시작된 개혁·개방 시대에 덩샤오핑(鄧小平)이 제시한 선부론(先富論·누구든 부자가 되면 경제 발전을 선도한다는 이론)에 사회주의적 요소를 강화한다는 개념을 제시한 것이었다.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를 건설한다”든가 “중국식 현대화 추진으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위대한 청사진을 구현한다”는 말은 들어갔지만 마르크스(馬克斯)라는 이름은 인용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지난해 11월 20일부터 12월 18일까지 카타르에서 열린 월드컵 축구 때문에 눈이 띈 14억 중국 인민들이 상하이(上海)를 비롯한 전국 도시 곳곳에서 “공산당 물러가라(共産黨下臺)" "시진핑 물러가라(習近平下臺)”고 외치는 소리를 또렷이 담은 동영상을 시 주석이 보기라도 한 것일까. 비록 견디기 힘들기는 하지만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중국 의료 시스템의 현실을 잘 알기 때문에 시 주석의 ‘둥타이칭링(動態淸零·제로 방역)’을 따르다가 TV 중계로 본 카타르 월드컵에서 선수도 관중들도 마스크를 쓰지 않고 열광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 중국만 왜?”라는 깨우침을 얻게 돼 A4 흰 종이 한 장씩 들고 인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소리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일까. 시 주석 신년사에는 “중국은 큰 나라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요구를 하고, 한 가지 일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견해를 갖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라는 보기 드문 내용도 포함됐다. 방역의 방법론에 대해서 시 주석은 “현재 방역은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으며 비록 힘들기는 하지만 모두 견인불발(堅忍不拔)의 노력을 하면 앞날에 서광이 비칠 것”이라고 말해 지난 3년간 유지해오던 “적극적인 제로 방역 견지(堅持動態淸零)”라는 말도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시진핑 주석은 대만 통일 문제에 대해서도 지난해 신년사에서 언급한 “조국의 완전한 통일의 실현이 양안(兩岸) 동포들의 공통된 마음”이라는 표현을 대폭 누그러뜨려서 “해협 양안은 서로 한 집안 친척(一家親)이니 함께 손을 잡고 중화민족의 복을 창조하자”고 표현했다. 시 주석은 중국 경제 현황에 대해서도 “세계 2위 경제 규모의 지위는 계속 유지하고 있으며, 경제는 온건한 발전을 지속하고 있고, 전 세계가 식량 위기를 겪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우리의 식량 현황은 19년째 풍년을 실현해서 중국인 밥그릇이 점점 단단해져 가는 중”이라는 판단을 제시했다.

시 주석 신년사에서 특이한 점은 지난해 11월 30일 세상을 떠난 장쩌민(江澤民) 전 당 총서기의 죽음을 언급한 부분이다. 시진핑은 “2022년 장쩌민 동지가 우리 곁을 떠났다, 우리는 그의 공적과 그가 남긴 보귀한 정신적 재산을 귀하게 여겨 그의 유지를 계승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덩샤오핑이 이끈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이끈 빠른 경제성장을 넘어서 공동부유의 세상으로 가겠다고 당 총서기와 국가주석 3연임을 추구하던 기개는 잠깐 내려놓은 것일까. 그는 “역사는 파란만장한 것이어서 한 세대, 한 세대의 사람들이 분투한 노력이 오늘의 중국을 창조했다”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볼 수 없었던 조심스러운 신년사를 발표한 것과는 달리 연말 12월 30일에 단행한 외교팀 구성에서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20차 당대회 과정에서 1950년생으로 72세가 된 양제츠(楊潔篪) 외교담당 정치국원을 퇴진시키고 1953년생인 왕이(王毅) 중앙위원 겸 외교부장을 정치국원으로 끌어올려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을 맡겼다. 외교부장에는 주미 대사를 지낸 전랑(戰狼) 외교의 상징 친강(秦剛)을 중앙위원으로 끌어올리고 12월 30일 외교부장으로 발탁했다. 1966년생인 친강은 1988년 외교부에 입부했기 때문에 1986년 외교부에 들어온 러위청(樂玉成·1963년생) 전 부부장과 1987년 외교부원이 된 마자오쉬(馬朝旭·1963년생) 전 부부장을 제치고 발탁됐다.

2005년 외교부 대변인, 2018년 외교부 부부장을 거쳐 2021~2022년 주미 대사를 지낸 친강은 스스로를 “전랑(戰狼·늑대) 외교의 상징”으로 자처하는가 하면 “내가 전랑 외교의 상징이라면 유럽과 미국 외교관들은 악랑(惡狼·나쁜 늑대) 외교를 하고 있는 셈”이라고 서슴지 않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친강은 지난해 1월 미국 NPR 라디오와 인터뷰하면서 “미국과 유럽이 ”신장위구르 자치구에서 중국이 인종학살(genocide)을 하고 있다는 주장은 조작된 거짓말이며 가짜뉴스”라고 담대하게 말해 주목을 받았다. 그는 외교부 대변인 시절에는 중국이 지식재산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지적하자 “그렇다면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종이와 화약, 나침반, 인쇄술 등 고대 중국의 4대 발명품에 대한 지식재산권을 지불해야 할 것”이라는 황당한 답변을 해서 미국과 유럽 기자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친강보다 외교부 선임으로 러시아통이던 러위청은 지난해 2월 14일 푸틴이 동계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위해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시진핑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중국과 러시아가 한계없는(no limit) 협조체제를 만들자”는 합의 문구를 공동성명에 포함시킨 장본인이다. 러위청은 이 때문에 외교부 부부장에서 중국 라디오TV 총국 부국장으로 좌천된 기록을 남겼다. 중국 외교부 서열 3위이던 친강은 지난해 12월 6일 워싱턴에서 열린 중국과 미국 무역위원회 송년 파티에 참석해 “그동안 나를 전랑 외교의 상징이라고 평가해준 데 대해 감사한다”는 코멘트를 해서 자신이 외교부장으로 발탁될 것임을 과시한 것으로 홍콩 신문들에 보도됐다.

주일 대사를 지낸 왕이 정치국원 겸 중앙외사공작판공실 주임과 주미 대사를 지내고 중앙위원으로 승격된 친강이 올해부터 보여줄 중국 외교의 인상은 전랑(늑대)의 모습이 될 전망이다. 전임 양제츠 정치국원 겸 중앙외사공작판공실 주임과 왕이 중앙위원 겸 외교부장으로 구성된 외교 사령탑의 인상은 왕이·친강 카드로 바뀌어 한층 강한 이미지를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올 한 해 중국의 표정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조심스러운 표정과 왕이·친강이 보여줄 전랑 외교의 스핑크스의 두 얼굴을 보여줄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사회는 새로 외교부장에 발탁된 친강이 유창한 영어로 보여줄 ‘중국식 논리’ 사이에서 다소 혼란스러워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진핑 주석이 신년사에서 보여준 조심스러운 표정도 시 주석이 인용한 소식의 시구의 본뜻이 “어려움과 마주하는 것은 멀리 가기 위함”이라는 전술적 조심스러움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미니박스]

친강(秦剛) 신임 중국 외교부장 겸 당 중앙위원 프로필
1992~1995년 외교부 서유럽 담당 3등 서기관
1995~1999
주잉글랜드·아일랜드 서기관
2005~2010
외교부 대변인
2014~2017
외교부 의전국장
2017~2018
외교부 부장조리
2018~2021
외교부 부부장
2021~2022
주미 대사
2022년 12월 30일 외교부장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현 최종현 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고문 ▷호서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