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금리인상 시대] 예‧적금에 몰린 뭉칫돈, 대출금리 상승 더 부추긴다
시중은행들이 기준금리 인상에 발맞춰 수신금리를 올리면서 예·적금에 돈이 몰리는 '역 머니무브'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저원가성예금인 요구불예금이 큰 폭으로 감소해 은행들의 조달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다. 가뜩이나 금리 인상 움직임이 가파른 상황에서 이 같은 조달비용 확대가 대출금리를 또다시 끌어올리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어 그 후폭풍은 일선 차주에게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형국이다.
18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8월 통화 및 유동성' 통계에 따르면 지난 8월 은행권 정기예적금 규모는 1424조1000억원으로 한 달 전(1390조원)보다 34조1000억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한은이 관련 통계를 편제한 지난 2001년 12월 이후 21년여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수치다.
반면 요구불예금과 같은 저원가성 예금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8월 은행권 요구불예금 감소 규모는 10조1000억원에 달했다. 또다른 저원가예금인 수시입출식저축성예금 역시 한 달 만에 11조원 이상 줄어들며 역대 최대 감소폭을 나타냈다. 이 같은 추세는 최근까지 지속돼 지난달 말 기준 5대 시중은행 요구불예금 규모는 670조7737억원으로 지난 7월(688조3442억원), 8월(675조1123억원)에 이어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유동자금이 요구불예금 대신 예적금상품에 몰리는 요인으로는 빠르게 치솟고 있는 수신금리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최근 상당수 은행들의 정기예금 금리는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발표 직후 잇따라 상향돼 현재 연 4%대 안팎을 기록하고 있다. 이어 올 연말에는 추가 금리 상승에 따라 연 5%를 넘어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에 저원가성예금에서 이탈한 자금이 예적금 상품으로 옮겨가는 현상이 뚜렷해진 것이다. 한은 역시 "금리 상승으로 예적금상품들이 금리 경쟁력을 갖춘 데다 (주식 등) 투자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안전자산인 예적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규모가 커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같은 자금 이동 추세가 은행들의 조달비용을 확대시켜 대출금리 인상 움직임을 더욱 가속화시킬 여지가 높다는 점이다. 요구불예금은 필요로 할 때 언제든지 자금 입출금이 가능한 상품으로, 금리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다. 이는 곧 은행의 조달비용이 크지 않다는 의미기도 하다. 조달비용을 대출금리 산정에 반영하는 은행권 입장에서는 요구불예금 규모가 클수록 대출금리 산정에 미치는 여파가 줄어들게 된다. 반대로 고금리 예적금에 자금이 몰리고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은행의 조달비용이 증가하는 방식이다.
특히 은행들이 저원가성예금 이탈로 부족해진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은행채 발행을 늘리는 점도 조달비용 확대에 영향을 미친다. 은행 조달비용이 증가하면 은행 순이자마진(NIM)에도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변동금리형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 등 주요 대출금리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 역시 덩달아 상승한다. 코픽스 인상은 곧 대출금리 상승으로 직결되는 만큼 가계대출 차주들의 이자 부담 확대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또 이와 같은 조달비용 부담 확대가 은행 NIM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편 이 같은 금리 상승 기조 속 대출금리 부담이 커지자 이미 보유한 대출에 대해서는 서둘러 상환하고 신규 대출 수요를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신용대출 중도상환 건수는 33만7408건으로, 작년 1년간 중도상환 건수(34만170건)에 근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5대은행 가계대출 잔액(695조830억원) 역시 올들어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