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여빈 "'글리치', 모험해보고 싶었어요"
2022-10-17 00:00
넷플릭스 '글리치'(감독 노덕) 역시 마찬가지다. 흔적 없이 사라진 남자친구의 행방을 쫓으며 미확인 미스터리의 실체에 다가서는 '지효'와 '보라'의 이야기를 담은 '글리치'를 통해 또 한 번 '모험'에 나섰다.
"개인적으로 '연애의 온도' 노덕 감독님의 팬이었고, 진한새 작가님이 쓴 '인간수업'을 보고 충격을 받았었거든요. 시나리오를 읽기 전부터 가슴이 뛰었어요. 그리고 시나리오를 읽으면 읽을수록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감이 오지 않더라고요. 이 궁금증을 향해 뛰쳐나가 보고 싶었어요. 모험하고 싶더라고요."
전여빈은 극 중 하루아침에 지구에서 증발한 남자친구를 찾아 나선 외계인 목격자 '홍지효' 역을 맡았다. '글리치'의 진한새 작가는 전여빈을 염두에 두고 '홍지효'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작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멜로가 체질'의 한 장면을 보고 '전여빈이 홍지효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상사에게 훈계를 듣는 장면이었는데 그때 저의 표정이 아주 마음에 드셨다고 해요."
진한새 작가의 예상은 적중했다. 전여빈은 자신을 둘러싼 미스터리와 봉인되어 있었던 기억을 마주하며 변화하는 '지효'의 성장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마음에 외계인 하나씩은 가지고 사는 것 같아요. 그 외계인이라는 게 남들에게는 이해받지 못하는 어떤 것이라고 보고 있거든요. '지효'는 억압된 기억이 있고, 평범을 위장하고 살고 있어요. 하지만 점차 평범을 위장할 수 없었고 진실을 얻기 위해 뛰쳐나간 거죠. 관계에 어려움을 느끼던 아이가 모험을 통해 곁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있고, 손잡을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거예요."
"외적으로는 어른이지만 완전한 어른 같지 않은 이미지를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어른이지만 그 안에는 작은 아이가 있다는 걸요."
'홍지효'는 감정의 진폭이 큰 캐릭터다. 하루아침에 남자친구를 잃고 모험을 펼치는 데다가 일련의 사건을 통해 성장하며 내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지효'는 극 중에서 가장 많은 인물을 만나요. '지효'가 넓어지며 저도 배우로서 파이가 커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도전하는 느낌이 들었고 배우로서 넓어지는 것 같아서 행복했어요. 마땅히 기쁘게 (작품을) 따라갔어요."
전여빈은 극 후반으로 갈수록 연기의 짜릿함을 느끼곤 했다고 말했다.
"추도식 장면을 찍으면서는 약간의 전율까지 느껴졌어요. '지효'가 머릿속에 심어진 칩을 돌려받기 위해 '호산나'라고 거짓말을 하게 되는 장면이었는데 (사람들을 보며) 살벌하게 무서운 느낌을 느꼈어요. 감독님께서 '모니터 밖에서도 여빈 씨가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추운 날이었는데도 추위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어요. 심장이 뜨거워지더라고요."
시청자들은 '지효'와 '보라'의 찰떡같은 호흡에 환호했다. 전여빈과 나나는 각각 '지효'와 '보라'로 극을 풍성하게 채워나갔다.
"어느 시청자분께서 '더할 나위 없는 아랍 두부'라고 하셨어요. 제가 '두부상'이고 나나는 '아랍상'이어서 서로가 외적으로도 아주 잘 어울린다고요. 서로가 서로에게 없는 걸 채웠다고 생각해요. 연기자 동료로서도 그랬어요. 나나는 저를 북돋아 주었고 저 역시 그 친구가 지쳐있을 때 이끌어보기도 했죠. 서로 흐름이 잘 맞았어요. 처음부터 서로를 믿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같아요."
전여빈은 나나가 '보라' 역할을 맡았다는 소식에 설렘을 느꼈다고 말했다.
"'보라' 역할을 맡는 사람은 굉장히 멋질 거로 생각했어요. 나나가 그 역할을 한다고 했을 때 당연히 잘 해낼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나나가 '보라' 분장까지 하고 나타났을 때는 '고맙다'는 마음까지 들더라고요. 더할 나위 없다고 생각했어요."
노덕 감독과의 호흡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노덕 감독의 오랜 팬이라고 털어놓은 그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촬영 도중 감독님께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는 순간을 느낄 때가 있다고 하는데 저는 그걸 지금 느끼고 있다'고요. 감독님께서 촬영이 끝난 뒤 그 이야기를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고 하시더라고요. 모든 배우와 제작진이 현장에서 잘 놀 수 있었던 건 감독님께서 이 드라마를 책임지고 이끌어갔기 때문이에요. 노덕이라는 비행기를 타고 훨훨 날다가 돌아온 기분이에요. 또 만나고 싶어요."
앞서 전여빈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마음에 외계인 하나씩은 가지고 사는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남들에게 이상하게 보일까 숨기는 것을 '외계인'이라고 칭한다는 그에게 "당신의 외계인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요. 명확하게 뭔지 모르겠어요. 내 속에는 너무 많은 생각이 있어요. 다만 드라마를 찍으며 '외계인은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우리 드라마가 말하는 바죠. 남들이 보았을 때는 너의 모험이 어떤 여정인지 모르더라도 스스로는 알고 있잖아요. 한걸음 성장했다는 걸요. 모든 과정을 응원해주고 싶어요. 그 마음을 '글리치'를 찍으며 느꼈고요."
'지효'가 그랬듯 전여빈 또한 '글리치'를 통해 성장했다.
"매 작품 찍고 나서 느낀 점들을 일기에 써요. 나중에 돌이켜보면 했던 말을 또 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모두 다른 순간이지만 같은 감정이 와닿았던 거겠죠? 그 시간을 충실히 잘 살아냈다는 거니까요. 내 사람들을 믿고 의지하고 함께 달렸다는 기억이 소중하게 남아있어요. 그게 저를 성장시킨 거 같아요."
전여빈은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 '죄 많은 소녀' '낙원의 밤', 드라마 '구해줘' '멜로가 체질' '빈센조' 등을 통해 차근차근 성장해왔다. 일각에서는 "또래 배우 중 가장 정석으로 성장한 인물"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스무 살쯤에 '영화 만드는 이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영화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요. 연기 학원에 다니면서 (연기를) 배우는 순간 해방감을 느꼈어요. '이걸 일로 해 볼 수는 없을까?' 기대를 품게 된 거죠. 하지만 배우가 되는 일은 어려웠고 오래 기다림의 시간을 겪었어요. 그러면서 갈급하게 된 거 같아요. 그 갈급함이 저를 만들어주었고 초심을 찾아주고 있고요. 잘 변하기를 바라고 성숙해지고 싶어요. 잘 성장하고 싶고요. 단 한 번뿐인 순간을 잘살아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