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 상징 엘리자베스 英 여왕 서거…"단단한 바위 떠나"
2022-09-09 12:25
70여 년간 영국을 이끈 세계 최장수 국가원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향년 96세로 서거했다. 1952년에 왕위에 오른 엘리자베스 여왕은 15명의 영국 총리와 14명의 미국 대통령을 거쳤다. 그는 전쟁으로 거의 무너져 내린 나라의 왕좌를 물려받았고 영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획기적으로 변한 시기에 단단한 바위처럼 자리를 지켰다.
미국 주간지 타임지는 “엘리자베스 여왕은 왕실의 의무를 다하며 금욕적이고 시대를 초월한 모습으로 대중의 존경을 받았다”고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왕위에 올랐을 때 그는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를 포함한 15개 나라의 지도자이자 50개국 이상의 수장이었다. 그가 여왕이 된 뒤 세상은 급변했지만, 수많은 사람은 엘리자베스 여왕을 변하지 않는 애국의 상징으로 여겼다.
1926년 4월 21일 태어난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 윈저(엘리자베스 여왕)는 왕위 계승 서열 3위였다. 계승 서열 1위였던 에드워드 8세가 1936년 국왕 즉위 후 미국인 이혼녀 심슨 부인과 결혼하겠다며 왕위를 포기하자, 엘리자베스 2세의 부친인 조지 6세가 국가원수 자리에 올랐다.
공주였던 엘리자베스 2세는 전쟁 포화 속에서 10대 시절을 보냈다. 1939년 9월 나치 독일은 영국에 선전포고를 했다. 세계 대부분이 전쟁에 휩싸였다. 공주는 영국 군인들을 위해 양말 뜨개질을 했고, 주당 5실링 수당의 일부를 긴급 아동 복지 기금에 보냈다. 헌 옷을 입고 모든 영국인처럼 허용된 전쟁 식량만 먹는 등 영국 왕위 계승자임에도 불구하고 검소함을 유지했다.
런던 버킹엄 궁전에 폭탄이 떨어졌을 때도 그의 부친인 조지 6세는 런던을 포기하고 캐나다로 공주들을 대피시켜야 한다는 정부 관계자들의 간청을 거부했다.
1944년 18세의 나이에 군에 입대해 운전병으로 근무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당시 친구들에게 “이렇게 열심히 일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1945년 5월 8일 독일이 항복한 후 런던 거리 행사의 기억에 대해서는 40년 후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밤”이라고 회상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1947년 결혼한 그리스 왕실 출신인 필립 마운트배튼(필립 공)과의 사이에서 3남 1녀를 낳았다. 그리고 1952년 2월 부친인 조지 6세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엘리자베스 2세는 26세의 나이에 영국 국왕으로 즉위했다. 즉위식은 1953년 6월 2일 거행됐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대관식 후 그해 11월부터 세계 순방을 떠났다. 리비아, 호주, 피지, 뉴질랜드, 자메이카, 우간다 등 전 세계를 돌았고, 순방을 떠난 지 6개월이 된 1954년 5월에서야 영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특히 1965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서독을 방문했을 때 그는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영국과 독일 사이에 남아 있던 적대감을 지웠다. 그가 베토벤 기념비에 화환을 놓을 때 독일 군중들은 “엘리자베스, 엘리자베스”를 외치며 환호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여왕의 가족 문제는 그에게 골칫거리였다. 대관식 이후 세계 순방을 다닐 때 그의 첫째 아들인 찰스 왕세자는 겨우 5살이었다. 아이들은 엄마와 전화로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었고, 찰스 왕세자는 나중에 본인은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타임지는 엘리자베스 여왕은 가정보다 일을 우선하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1992년에 윈저성에 화재가 발생했고, 7800만 달러에 달하는 윈저성 복구 비용에 관해 여론이 악화했다. 여왕은 위기를 타개하고자 소득세 면책 특권을 포기했다.
또한 여왕의 아들인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비의 불화 등은 왕실에 큰 부담이었다. 손자인 해리 왕자와 그의 아내 메건 마클이 2021년 오프라 윈프리와의 인터뷰에서 흑인인 메건이 왕실에서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비판을 받기도 했다.
가족 문제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 여왕은 세상이 급변하는 속에서도 왕실의 의무를 다하며, 영국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통치 기간 여왕은 매일 200~300통의 편지를 읽고 외국 정부에서 보낸 공식 문서들을 검토했다. 영국 총리와도 매주 만났다.
타임지는 “영국 내에서 공화주의 운동이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여왕은 매우 인기 있는 인물이었다”며 “그는 가장 힘든 시기에서 영감과 낙관의 메시지를 전하며 선한 영향력을 유지했다”고 평했다. 이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금욕적인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는 빛났다”고 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는 “급변하는 시대에 그는 안정의 상징이었다”며 “우리는 그를 이보다 더 자랑스러워할 수 없다. 그는 변함없는 품위로 이 나라를 섬겼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