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대출규제 완화] 오늘부터 생애최초 LTV 80%…내집마련 쉽지 않은 실수요자들

2022-08-02 07:00

서울 용산에서 주택가.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 연 소득 1억원인 A씨(45)는 금리 4.17%(30년 만기 월리금균등상환)로 서울 마포구에서 시세 9억원짜리 아파트를 구입할 때 대출받을 수 있는 금액을 계산해 봤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 80%,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를 적용하니 총 6억8400만원을 대출받을 수 있었다. 전세금 2억원을 포함해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런데 막상 은행에서는 최대 한도인 6억원밖에 대출을 받을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당장 약 1억원가량을 신용대출 등으로 보완해야 하는데 만만치 않은 이자 상환 부담에 내 집 마련을 포기하고 월세 전환을 알아보기로 했다.

# 연봉 5000만원인 무주택자 B씨(41)가 경기도 수원에서 7억원짜리 생애 첫 주택을 마련하기 위해 최대 대출 가능액을 알아봤더니 3억1000만원으로 산출됐다. 이달부터 대출 규제가 완화된다고 했지만 완화 전이나 지금이나 DSR 39.94%로 계산돼 LTV 80%는 B씨에게는 아무 소용없는 정책이었다. LTV가 허락하는 최대 한도만큼 대출을 받으려고 해도 DSR 40% 규제에 걸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1일부터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들은 집값 대비 최대 80%를 빌릴 수 있도록 대출 규제가 완화됐지만 정작 대다수 실수요자들에겐 실효성이 미비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치솟을 대로 치솟은 주택 가격과 DSR 규제, 고공행진 중인 대출금리에 따른 이자 상환 부담 때문에 규제 완화 혜택을 체감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금융위원회는 1일 가계대출 규제 관련 감독규정 개정안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올해 6월 내놓은 '대출 규제 정상화 방안'의 일환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가계부채 관리 강화 과정에서 야기된 주택 구입 실수요자의 애로 사항을 해소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주택 소재지역과 가격, 대출자 소득과 관계없이 LTV가 80%로 확대된다. 이 때문에 15억원 초과 주택도 대출이 가능하다. 대출액 총한도는 6억원이다. 이전까지 생애최초 주택구입자의 LTV는 9억원 이하 주택의 경우 투기 및 투기과열지구에서는 50%, 조정대상지역에서는 60%였다. 9억원 초과에서 15억원 이하의 경우 9억원 초과분부터는 각각 20%, 30%가 적용되며 15억원 초과 주택은 대출받을 수 없었다. 

1주택자가 규제지역 내 주택 구입 목적으로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받을 때 의무적으로 기존 주택을 처분해야 하는 기간이 기존 6개월에서 2년으로 늘어나고, 신규 주택에 전입해야 하는 의무도 폐지된다. 1일 이후 주담대 약정을 체결하는 대출자들이 적용 대상이다. 천재지변과 산업재해, 기존 주택 소재 지역이 공공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되는 등의 이유로 2년 내에 기존 주택 처분이 어렵다면, 각 금융사 여신심사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기존 주택 처분 기한을 연장하는 것도 가능하다.

중도금과 잔금 대출도 수월해진다. 시가 15억원을 초과하더라도 중도금 대출 범위 내에서는 잔금 대출을 허용해 이주비·중도금·잔금 대출을 원활히 받을 수 있게 된다. 기존에는 준공 후 시가가 15억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파트 사업장은 주담대가 전면 금지돼 분양가가 15억원 미만이라도 아예 이주비와 중도금 대출이 거절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부분을 개선했다. 

[표=아주경제 그래픽팀]

지난 5년간 대출 규제를 바짝 조여왔기 때문에 규제 완화의 변곡점이라는 데는 의의가 있다. 그러나 실수요자 구매 욕구만 자극한 채 정작 정책 효과는 미미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KB부동산 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7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2억8050만원으로 6억원 상한인 대출 한도는 사실상 LTV 50%에도 미치지 못한다. 또 집값과 소득격차가 벌어진 탓에 6억원 한도까지 대출이 된다 하더라도 이를 뺀 나머지 금액을 모으기도 쉽지 않다. 실제 연소득 대비 집값(PIR) 추이를 보면 2018년 6.7배에서 2019년 6.8배로 벌어지다 2020년엔 7.3배까지 솟구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생애최초 구매자 대출규제 완화 정책이 보다 효용성을 발휘하기 위해선 생애최초 구매자의 DSR 규제 완화까지 연동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정부는 차주별 DSR 강화와 맞물려 20~30대 청년층의 장래 소득을 반영한 연소득 책정 기준을 도입하기로 했지만, 40대 이상은 장래 소득이 반영되지 않는다. 최대 한도인 6억원을 대출받을 경우 대출금리 4.04%(30년 만기 원리금 균등상환 기준)를 가정하면 DSR 40%를 넘기지 않기 위해선 연소득이 9000만원 수준에 달해야 한다. 

특히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대출 금리 인상까지 맞물려 차주들의 원리금 상환 부담도 커졌다. 한·미 금리는 2020년 2월 이후 약 2년 반 만에 처음 역전되는 등 금리인상 압력은 높아지고 있다. 생애최초 주택구매자의 금리는 3% 미만으로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절반 수준이지만, 금리 추세와 연동되기 때문에 부담이 적지 않다.

때문에 생애 최초로 주택을 구입하는 매수자는 올 들어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부동산 정보 플랫폼 직방에 따르면 전국 부동산 생애최초 매수자(대법원 등기 기준)는 올 들어 5월까지 월평균 3만8749명으로 조사됐다. 월별 생애최초 구매자가 4만명 밑으로 떨어진 것은 통계를 집계한 2010년 이후 처음이다. 부동산 전문가는 "첫 내집 마련을 고심하는 대기수요자들이 대출한도가 늘어났다고 움직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일 것"이라며 "당분간 관망세가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