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준의 함께꿈] 우영우에 푹 빠진 당신 …그런데 우리 현실은?

2022-07-26 06:00

[안상준 교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신드롬이 예사롭지 않다. 드라마는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이면서 자폐스펙트럼을 지닌 한 변호사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그려간다. 천재·자폐 변호사의 매력적인 캐릭터는 물론이거니와 장애인에 대한 기존 관념과 문법을 벗어나 장애인과 한 팀을 이루어 사건을 해결하는 회사 동료들의 인간미도 매우 인상적이다.

그러나 자폐 장애를 극복한 감동적인 스토리는 극적인 예외에 해당한다. 우영우를 바라보는 장애 부모의 마음은 부러움과 아쉬움을 오가며 만감이 교차하리라 짐작이 간다. 필자가 보기에 우리 사회는 장애인이 살아가기에 너무나 가혹하다. 그리고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정치권의 무관심과 무대응은 우리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선진국 대한민국은 장애인 문제에 관한 한 명백히 후진국이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들어 드라마에서나마 장애인 문제를 다루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얼마 전 성황리에 막을 내린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는 다운증후군을 앓는 정은혜 작가가 직접 출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독일 유학 시절에 필자에게는 여러 가지 문화적 충격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생경한 장면이 바로 장애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독일에서는 거리에서나 마트에서나 강의실에서나, 즉 어디를 가든 장애인을 볼 수 있었다. 특히 멀리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경사지를 깎아 조성된 거대한 캠퍼스에서 장애인들이 홀로 강의실을 드나드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트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대학 진입로에 들어서면 휠체어는 노란색 점자 블록을 따라 이동한다. 이 통로를 따라가면 목표 건물로 유도하는 장애인 전용 앨리베이터가 곳곳에 설치되어 별다른 도움 없이 장애인 전용 이동통로를 통해 강의실 출입이 가능했다.

그때 필자는 처음으로 한국에서 성장하는 동안 장애인에 관하여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돌아보면 우리 주변에는 늘 장애인이 존재했지만 보이지는 않았다. 개발 독재 이데올로기 아래 성장하던 시절에 장애인은 사회적 짐으로 치부되었고, 장애인 돌봄은 개인과 가족 몫이었다. 장애인은 가능한 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살아가야 했다. 귀국하여 대학 강단에 섰을 때 휠체어에 탄 장애인 학생이 수강하여 우리 사회의 장애인 인식에 대한 변화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 경험은 지금까지 유일한 예외로 남아 있다. 가끔 대형마트나 거리에서 장애인 모습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은 사회적으로 투명인간처럼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2022년 초부터 전개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이동권 보장 시위는 장애인이 살아 움직이는 존재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시민이 출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지하철 시위를 전개하자 화제의 뉴스가 되었고, 정치인의 관심이 생겨났다. “시민들의 출퇴근길을 볼모로 잡고 있다. 심지어 임종을 지키러 가는 시민에게 막말도 했다. 이들은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그냥 이상한 인간들이다. 따라서 장애인은 착한 약자라는 언더도그마는 틀렸고, 이들의 불법행동을 막는 게 당연하고 정당하다.” 여당 대표 이준석의 장애인 비하 발언은 역설적으로 장애인 문제를 뜨거운 논쟁거리로 부각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 헌법에 보장된 저항권을 행사하는 장애인에게 시위 방법을 트집 잡아 불법 행동이라거나 반문명적 행위라고 비난하는 그의 발언은 저급했다. 차별과 혐오에 기초한 갈라치기 정치는 차치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엘리트 정치인이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인식 수준에 필자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필자는 장애인과 관련하여 지금 생각해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감동적이고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경험이 있다. 몇 해 전 미국 플로리다에서 어린이들의 꿈의 동산이라 불리는 디즈니월드를 방문했을 때였다. 오전 9시 개장에 맞춰 입장하려는 사람들이 셔틀버스 앞에 긴 줄을 섰다. 그런데 버스 문이 열렸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동태를 살피니 기사는 장애인을 태울 준비를 하기 위하여 버스에 장착된 휠체어 운반기를 열고 내려서 장애인을 태운 후 좌석에 고정하는 과정을 천천히 진행하였다. 마치 승차 의식의 거행을 지켜보는 듯한 장면이었다. 입장 시간이 임박해 다들 마음이 조급했겠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필자가 디즈니월드를 방문한 며칠 동안 이 장면은 매일 반복되었고, 미국 시민사회의 저력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에버랜드나 롯데월드에서도 이런 장면이 연출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선진국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하게 한 단계 도약하려면 시민들이 약자에 대한 배려를 자연스럽게 실천하고, 약자와 함께 살아간다는 사회적 인식과 제도가 확산하고 정착되어야 한다. 그 출발점은 차별과 혐오의 뿌리인 무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특정 대상에 대하여 모르면 불안하고, 불안하면 겁이 나고, 그러면 편견이 생기고, 편견은 차별로 이어지고, 차별은 혐오를 낳는다. 반대로 알면 편안하고 이해가 생기며, 이해는 소통을 낳고, 소통은 교류를 낳는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장애인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사는 경험의 폭을 넓히는 게 최선의 방책이다. 어린 시절부터 학교에서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이 함께 어울려 성장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장애는 삶에서 불편한 요인일 뿐이며 인격과 능력 면에서 차별받을 요소가 아님을 학생들은 저절로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입학이 법으로 금지되지는 않았을지 모르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장애인 학생을 중등 과정 일반 학교에서 보기 쉽지 않다. 비장애학생 학부모들의 반대 또한 크다고 알려져 있다. 입시 앞에서 그 어떤 사회적 명분도 품위도 사치스럽게 여겨지는 풍조에 답답해진다.

일반 학교 입학은 고사하고 장애인 특수 학교 설립도 사회적 난제다. 몇 년 전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서울 서진학교 설립 과정은 이례적이면서도 상징적이다. 장애인 학생 학부모 요청에 따라 폐교된 초등학교를 활용하여 교육청이 장애인 특수 학교를 설립하는 과정은 하등의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은 집값 하락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며 학교 설립을 반대하거나 공사 지연의 원인을 제공했다. 급기야 주민토론회에서 장애학생 어머니들이 무릎을 꿇고 호소하는 충격적이고 기이한 장면이 전 국민에게 소개되었다. 학교 설립을 위한 동정 여론이 일면서 비로소 학교 설립의 물꼬가 트였다. 이 특별한 사례 덕분에 특수 학교 설립에 대한 정서적 반감이 현저하게 줄고 전국에 22개교가 개교를 앞두고 있다고 한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분명히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을 비롯한 모든 시민이 지역 및 개별 시설에 접근하거나 이용·이동할 때 편리하고 안전한 생활 환경을 조성하는 제도(Barrier Free)도 시행하고 있다. 몇 년 전 개관한 파주 한울도서관처럼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함께 동등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도서관도 생겨났다. 또한 교육부는 지난 2월 장애인 특별전형 혜택이 실질적으로 장애학생에게 돌아가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에 따라 대학별 평가 과정에서 장애학생들이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기회를 받도록 ‘장애인 특별전형 운영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연내 대학에 제공할 계획이다. 대학에 설치된 수많은 장애학생을 위한 엘리베이터들이 쉴 새 없이 운행되는 장면을 보고 싶은 마음이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그리고 ‘우리들의 블루스’가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장애인과 함께 사는 세상을 그린다는 점이다. 장애 극복은 개인적 차원이지만 장애인과 함께 사는 세상은 사회적 차원이다. 그래서 어느 사회나 성취할 수 있고, 우리에게도 결코 꿈이 아니다. 그리고 그 꿈은 가능한 한 빨리 실현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34조(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5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이런 가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제정된 '장애인복지법' 1조(목적)는 국가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을 잘 보여준다.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과 권리보장을 위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등의 책임을 명백히 하고, ··· 장애인복지대책을 종합적으로 추진하며, ··· 장애인의 생활 안정에 기여하는 등 장애인의 복지와 사회활동 참여 증진을 통하여 사회 통합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과 권리 보장을 내세우지만 국가는 복지 차원에서 접근하여 정책을 수립하고 사회 통합을 이루고자 한다. 장애인은 수동적으로 보호를 받는 대상이고, 법률은 보호의 주체인 국가의 관점에서 제정되었다.

그에 비해 독일은 장애인 권리 보장을 다르게 접근하고 규정한다. 우리 헌법에 해당하는 독일 기본법 3조를 보자. “누구도 장애 때문에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 짧고 강렬하게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살아야 하는 권리를 포괄적으로 천명한다.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법률인 '장애인 동등법' 역시 목적 부분에서 우리와 사뭇 다르다. 이 법의 1조(목적)는 다음과 같다. “장애인의 불이익을 제거하고, 사회적 삶에서 그들의 지분을 보장하고, 그들에게 자신의 선택에 따라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것이다.” 장애인의 권리는 개인의 기본권 차원에서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보장되어야 하고, 연방정부는 평등한 대우와 기회균등의 지원을 정책의 중심에 둔다. 무엇보다도 장애인의 자기 결정에 따라 살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한다는 점에서 장애인의 주권의식을 반영한다.

장애인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회, 장애인을 보호하고 배려하는 사회, 교육받을 권리를 포함하여 장애인의 권리를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보장하는 사회, 한 걸음 더 나아가 장애인이 자신의 결정에 따라 자신의 능력으로 삶을 영위하는 사회! 얼마나 멋진가? 선진국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려본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학과 졸업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 취득 △ 한국서양중세사학회 회장 △2021년 5월부터 한국 대학체제의 개혁 방안을 모색하는 ‘삼각지연구팀’에 참여, <대학법체제정비>(2021)와 <고등교육 패러다임 대전환을 위한 대학정책> △교수신문 기획연재 '대학법과 대학의 미래'의 책임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