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순 칼럼] 몰려오는 신냉전 먹구름 .…냉철한 '국익 계산법'
2022-06-28 13:53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 속에서 지난 5월 신정부 출범 이후 우리 외교·안보의 무게축은 미국 쪽으로 그 중심축이 옮겨지는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현 정부는 중국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의도에서 중국이 우리의 행보를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말라는 메시지를 발신하고 중국과 소통채널을 확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미·중 간에 ‘전략적 모호성’이란 이름 아래 우리의 입장을 명확히 하지 않고 중국의 눈치를 많이 보는 일종의 등거리 외교를 하였다. 이에 비하면 현 정부는 이런 모호성을 버리고 좀 더 명확하게 한·미동맹 중심 외교를 하겠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태도이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과 중국 양쪽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싶은 속내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시도는 해봐야 할 일이지만 현실적으로 점차 양립 가능하지 않은 행위가 될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안미경중’이라는 프레임, 즉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방식이 우리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정식이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미·중 간 갈등이 심해지는 국제정세 하에서 이러한 ‘이중 의존성의 딜레마’를 앞으로 지속해 나가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미국과 중국 간의 전략적 경쟁이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과 앞으로 닥칠 대만해협에서의 위기 등을 감안하면 그냥 경쟁이 아니라 신냉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신냉전이 도래하면 예전 구냉전 시대만큼은 아니더라도 자유진영과 권위진영 간 교역도 상당히 분리(decoupling)되어 이루어질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안미경중’은 더 이상 작동하는 방정식이 아니므로 우리의 국익 극대화 방정식을 새로운 계산법에 따라 정립해야 한다.
국익의 3대 기본구성 요소는 첫째 국가의 생존, 둘째 국가의 번영, 셋째 국가가 존중하는 가치의 수호라고 말할 수 있다. 모든 국가는 국제관계에서 이 세 가지 요소의 효용을 가장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자국의 외교·안보 정책을 구성하고 외교관계를 이에 맞춰 이끌어간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요소도 평시에는 등가적인 가치를 가진다고 상정하고 외교를 펼쳐 나갈 수 있으나 위기가 닥칠수록 이 세 가지 요소 간의 우선순위를 지혜롭게 조정해야 한다. 즉 위기 시에는 생존이 무엇보다 먼저이고 다음이 번영 그리고 마지막 순위가 가치이다. 우리가 보편적 가치라고 말하는 ‘민주주의, 인권, 자유 그리고 시장경제’ 이런 것들은 지킬 수 있으면 지키는 것이 우리 국익에 보탬이 되나 이를 위해 우리의 생존 또는 안보를 손상시키는 것은 실용주의적 접근법이 아니다. 그리나 우리가 직접 향유하는 가치를 타국이 제한하려 할 경우에는 우리가 분연히 맞서야 한다. 하지만 다른 지역, 다른 국가의 가치가 제한되는 일이 발생할 때 보편적 가치를 지키기 위하여 모두가 나서야 한다는 주장은 자유주의 질서 자체가 약화되는 장래 상황에서는 좀 더 냉철하게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이 가치를 지키기 위해 다른 나라를 도운다 하지만 그것이 전쟁 당사국의 관점에서는 자국의 생존을 위협하는 행위로 간주할 수 있다. 즉 우리는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를 지키기 위한 선의를 베풀었다 하지만 이것이 특정국가의 안보이익을 침해할 때는 그 나라는 우리에게 가치와 다른 차원의 대응을 혹 지금은 아니라도 나중에라도 기억해서 할 것이다. 이런 보복조치를 당할 경우 다른 나라들이 우리의 피해를 자국의 피해처럼 간주하고 우리를 도와 그 특정국가에 대한 공동대응을 할 것인가? 현재의 국제상황에 비추어 보았을 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가치를 위해 우리의 생존이나 번영이 손상되어도 좋다는 각오를 하고 이런 일을 하여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또한 국제관계에서는 경제적 이익과 안보적 이익이 충돌하는 지점이 발생한다. 앞으로 미·중 간 갈등이 심화될수록 이런 지점이 더 많이 드러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양 이익을 동시에 추구할 수는 없을 것이고 우리는 불가피하게 선택의 배합, 그 강약을 조절해나가며 우리의 입장을 세워나가야 할 것이다. 양 이익이 충돌하면 당연히 안보이익이 우선되어야 하고 불가피할 경우 경제적 이익을 좀 손상시킬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을 두려워하고 회피하고자 한다면 양쪽 이익이 다 손상당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지금처럼 미·중 간에 분리현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우리가 경제적으로 중국과 협력할 수 있는 분야는 어디이고 분리를 할 수밖에 없는 분야는 어디인지를 빨리 분별해 내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서 분리가 불가피한 분야에서는 분리하되 대신 중국이 들어오지 못하는 공간을 우리가 대신 차지함으로써 중국시장에서 잃은 부분을 메울 수 있거나 더 큰 이익을 거둘 수도 있을 것이다. 막연하게 중국의 시장이 크고 이를 포기할 수 없으니 중국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은 앞으로 맞는 말이 아닐 수 있다. 중국과 서방시장이 분리되면 우리가 팔 수 있는 제품도 제약될 수밖에 없고 중국 산업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우리가 경쟁우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제품 수도 줄어들 것이다. 지난 5월 우리는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대중무역에서 적자를 기록했다. 미래의 중국 수출시장은 과거 시장의 몇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될 것이다. 과거의 잣대로 미래를 설계하고 준비해서는 안 된다. 게다가 앞으로 경제와 안보가 분리되지 않는 경제안보 시대가 도래하면 이 계산은 더 잘 셈해야 한다.
제일 근본적 국익인 우리의 생존, 즉 국가안보를 지키는 일에 있어서 우리의 계산법은 어떠해야 하는가? 우리의 생존방정식에 가장 중요한 고려요소는 북핵위협, 미·중 간 갈등, 그리고 중국에서 오는 지정학적 압력 이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북한의 비핵화는 이제 달성하기 힘든 외교과제가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제 북한의 핵위협에 굴하지 않고 생존을 담보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려면 한·미동맹이 우리에게는 대체불가능한 안보 근간이 되어야 한다. 미국의 핵우산은 물론이고 필요시 독자적인 핵무장을 준비하는 과정에 미국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여태까지 북한 비핵화를 위해 중국의 협조를 기대하며 해왔던 저자세 외교를 탈피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 핵과 미사일의 위협을 감소시키려는 우리의 노력을 저해하는 중국의 압력에 감연히 맞서야 한다. 날로 점증하는 북한 핵위협과 한반도에 드리우는 이중 냉전구도의 압력으로 인해 생존을 위한 우리의 선택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지난 3월 중국 시 주석이 윤 당선자와 한 통화에서 ‘중국과 한국은 이사 갈 수 없는 이웃이다’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한다. 이는 양국이 선린이란 점보다는 인접한 강대국으로서 중국이 가지는 지정학적 압력을 가벼이 여기지 말라는 데 방점이 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이 점은 가벼이 생각할 사안은 아니지만 우리가 중국의 핵심이익을 먼저 건드리지 않는다는 입장만 분명히 전하면 된다. 중국이 현상을 변경하고 우리에게 그 압력이 실존적 위협 형태로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런 경우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다는 점을 중국이 알게 해야 한다. 이는 계산의 영역이 아니라 본능의 영역이기에 우리는 다양한 대비를 미리 해나가면서 그 압력에 버틸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특임대사 △주호주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