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순 칼럼] '핵 잠재력 확보' 언제까지 미뤄야 하나

2024-06-25 06:00

[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2006년 10월 필자가 주미 대사관에 근무할 당시 북한은 1차 핵실험을 감행하였다. 그 당시 뉴스의 충격은 컸으며 워싱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북한의 비핵화가 힘들 것이라는 인식이 처음 퍼지기 시작했다. 필자도 그 이후 ‘북한의 비핵화는 정말 제갈공명의 지략으로도 쉽지 않게 되었다’는 비관론에 빠지게 되었다. 그 후 18년이 더 지난 지금 북한은 이제 7차 핵실험을 앞두고 있고 미국을 겨냥한 ICBM도 재진입 기술 완성을 위한 마지막 실험을 앞두고 있다. 북한은 소형화된 50여 개의 핵탄두를 다양한 운반수단에 탑재할 수 있는 전술핵 운용 능력까지 갖추어 우리의 안보는 정말 백척간두에 섰다고 볼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핵무기는 가공할 위력을 가지고 있어 핵무기 보유국과 비보유국 간에는 전력의 우위를 논할 수 없을 정도로 보유국에 유리한 절대무기이다. 그래서 70년대 초반 세계 5대 강국(P5)들이 자기들만 핵무기를 보유하고 다른 국가들의 보유를 막을 목적으로 ‘핵 비확산체제(NPT)’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 인도, 파키스탄에 이어 이스라엘 그리고 이제는 북한까지 이 체제를 무시하고 핵보유국의 지위를 획득하는 데 성공하였고 이란이 그 뒤를 이으려 하고 있다. 절대무기 확보 노력에 대해 제재 등 국제사회의 압박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핵을 가지는 이점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이를 손에 넣으려는 각국의 노력이 이어지는 것이다.
 
북한 핵이 우리 안보에 던지는 실존적 위협과 다른 나라들의 개발사례에도 불구하고 우리 내부에서는 북한 핵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란만 분분하다. 지난 5년간 우리도 핵을 보유해야 한다는 우리 국민의 직관적 인식, 즉 핵보유 찬성률이 매년 7~8% 정도씩 상승하여 76%까지 올라왔다. 이에 비해 우리 정부와 여·야 정치인 그리고 전문가들은 핵보유를 아예 금기시하거나 핵보유 찬성률이 40% 미만에 머물러 있다. 특히 다른 모든 안보관련 쟁점에서는 이견을 보이는 여·야가 독자적핵무장(핵자강) 이슈에 관해서는 일치된 입장을 보이는 것도 흥미롭다. 물론 핵보유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니 신중히 접근해야 하지만 전반적 동아시아 안보환경을 감안할 때 우리 안보를 남에게 맡겨두거나 무신경한 낙관론 또는 외부의 법적 제약 등을 빌미로 결정을 더 이상 천연할 여유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핵자강 반대논리의 맹점을 짚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한반도 비핵화 선언’ 준수를 위해 또는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을 위해 우리가 핵자강을 추진하면 안 된다는 논리가 있다. 그러나 이미 사문화된 비핵화 선언을 지키기 위해서 또는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는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우리 국민 생명을 다 걸고 도박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너무 무모하다. 북한은 이미 2년 전 ‘한국에 대해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천명하였으며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도 이제 북한의 비핵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현 바이든 행정부도 최근 북한과 핵협상을 원한다는 신호를 보내면서 중간단계 과정을 거치겠다고 하여 우리 정부와 엇박자를 보였다. 이는 북한이 핵개발을 동결하면 제재 완화 등을 고려할 수 있다는 말인데 현실적 접근법이긴 하나 역으로는 북한의 과거 핵은 묵인해 주겠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즉 북한을 상당 기간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고 북한과 핵 군축협상에 들어갈 수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미 정부까지도 이런 판단을 하는 마당에 비핵화 협상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려 우리의 핵자강 노력을 언제까지 미루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둘째 북한의 핵무기에 대해 우리는 재래식 무기, 즉 소위 3축 체계인 1)선제타격 킬체인, 2)대공 방어망(KAMD), 3)대량 보복으로 대응하겠다는 계획은 이제는 현실을 벗어난 자기만족용 수사에 불과해졌다. 북한의 고체로켓연료 개발과 이동식 발사차량 운용으로 인해 선제타격이 불가능해졌다. 또 북한의 미사일, 다연장 로켓 등 투발수단이 다양해져 이제 겨우 구축 중인 KAMD로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리고 대량보복 수단으로 우리도 현무 4라는 소위 괴물 탄도탄을 대량 구비한다지만 1차 핵공격을 받은 후 우리의 지휘체계가 정상 작동할지 장담할 수 없다. 그러므로 비대칭 절대무기인 핵무기를 재래식 3축 체계로 막는다는 논리로 핵자강을 반대하기는 너무 공허하다.
 
셋째 우리가 핵개발을 시도하면 한·미동맹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물론 아직 미국 조야에 핵 비확산론자들이 많이 존재하니 이들의 반대는 극복해야 한다. 반면 미국 내 한국의 독자 핵무장을 지지하는 전문가들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트럼프와 가까운 인사들은 이를 공개 지지하고 있다.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은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문제는 협상의 대상이다. 왜 일본에는 되고 한국에는 안 되는가’라고 우리에게 반문하고 있다. 더 나아가 트럼프 당선 시 국무장관감이라는 크리스 밀러는 ‘동맹은 비즈니스다. 동맹을 낭만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살아남지 못한다’라고 말하며 우리가 동맹에 맹목적으로 의존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다. 차기 NSC 실장감인 엘브 콜비도 ‘한반도 안보는 미·중 패권경쟁의 관점에서 재해석 되어야 하며 미국은 중국에 집중하니 한국은 대북억제 및 격퇴를 스스로 감당할 준비를 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미국 측에서 이런 요구가 나오고 있는데 한·미동맹을 위해 핵자강 노력을 자제해야 한다는 우리 내부 논리는 주객이 바뀐 느낌이다.
 
넷째, NPT 체제를 우리가 준수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경제제재를 당하여 한국이 엄청난 국익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P5의 핵독점 카르텔인 NPT 체제에 이미 큰 균열이 발생하였으며 또 이 P5 가운데 중·러는 물론 미국까지도 더 이상 핵군축을 준수할 의지가 없어 NPT 체제는 와해단계에 들어갔다고 봐야 한다. 크리스 밀러는 ‘NPT는 실패한 체제이며 미국의 위협자들이 이를 지키지 않는데 우리가 이를 지키기 위해 벌 받을 필요가 없다’라고까지 말할 정도이다. P5가 이럴진대 실존적 위협 앞에 서있는 한국이 NPT 타령을 하는 것은 자기 초가집 불타는 줄 모르고 이웃 기와집에 불날까 걱정하는 격이다.
 
다섯째, 미국의 핵우산 약속, 즉 확장억제 약속을 굳건히 믿고 그것도 모자라면 미국의 전술핵을 도입하거나 미국과 핵공유를 하면 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1년 전 한·미 간에 서명한 ‘워싱턴 선언’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바이든 행정부의 약속일 뿐이다. 트럼프가 집권하면 이것은 휴지조각이 될 공산이 크다. 다른 확장억제 메커니즘 작동도 결국 ‘미국의 대도시들에 대한 북한 핵공격을 감수하고도 한국을 구하기 위해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냐?’라는 질문에 대한 미국의 의지에 달려있다. 그런데 미국이 지난 70년간 절대적 열세에 있던 북한의 거듭된 도발에도 제대로 된 군사보복을 한 적이 없다. 그런데 막강 도전자 중국을 앞에 두고 제2 전선을 열어 북한에 핵을 사용하면서까지 한국을 구해줄 것 같지 않다는 점을 미국 전문가들도 이제 고백하고 있다.
 
모든 현상은 동태적으로 봐야 더 잘 파악이 되고 국제정세는 날마다 움직이는 생물과 같기에 과거의 눈으로 과거의 논리를 가지고 과거의 약속만 믿고 지내서는 안 된다. 특히 북한 핵위협에 우리 스스로 대비해 나가기 위해서는 시간도 필요하다. 최근 북·러가 준군사동맹을 맺은 셈인데 이로 인해 북한의 핵공갈이 더 대담해질 수 있다. 이를 감안할 때 바로 우리가 핵무장국으로 내달릴 수는 없더라도 이를 위한 준비, 즉 미국과 원자력 협정 개정 또는 11조 1항 해석에 대한 양해를 받아두는 등 핵잠재력 확보를 위한 발걸음을 더 지체하지 말고 내디뎌야 할 때이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 특임대사 △주호주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