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늦차 탄 삼성···이재용의 450조 투자 방점 찍나

2022-06-20 18:00

기존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제자리걸음을 하던 삼성SDI가 차세대 배터리 기술과 경쟁력 확보에 전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전장사업 등 다른 계열사와 시너지 효과를 확보할 수 있는 차세대 배터리 분야만큼은 뒤처질 수 없다는 판단으로 분석된다.

이를 감안하면 삼성그룹 인사도 눈에 띈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최윤호 사장을 삼성SDI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했다. 이에 재계에서는 삼성그룹이 상당히 오래전부터 차세대 배터리에 대한 계획을 세워왔으며 이를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재계에서는 향후 삼성SDI가 차세대 배터리 개발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이달 이 부회장의 유럽 출장을 살펴본 뒤 내린 관측이다.

이 부회장은 이번 출장을 통해 헝가리 배터리 공장을 방문하고, 전기차 배터리 파트너사인 BMW 관계자들을 만났다. 이 같은 일정 중 상당 기간을 삼성SDI를 이끄는 최 사장과 동행한 것으로 파악된다.

◆경쟁자 LG·SK 앞서가는데···제자리걸음한 삼성SDI

이 부회장의 이 같은 관심은 그동안 삼성SDI에 대한 국내외 관계자들의 평가와 다소 거리가 있다. 그동안 배터리 업계에서 삼성SDI는 국내외 경쟁사에 비해 설비투자 등 경쟁력 확보 의지가 크지 않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실제 최근 몇 년 동안 국내외 경쟁사가 질주하는 동안 삼성SDI는 성장이 다소 지지부진했다.

지난해 연간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을 살펴보면 삼성SDI는 13.2기가와트시(GWh)로 2020년 8.5GWh 대비 56% 성장률을 기록했다.

언뜻 보기에는 작지 않은 성장세지만 글로벌 8위권 배터리 기업의 성장률을 감안하면 아쉬운 실적이다. 지난해 글로벌 8위권 배터리 기업 중 일본 파나소닉(성장률 33.5%)을 제외하면 삼성SDI보다 낮은 성장률을 기록한 기업은 없었다. 상당수 중국 기업과 SK온도 100% 이상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했다.

올해는 이 같은 흐름이 더욱 악화하고 있다. 올해 1~4월 삼성SDI는 4.9GWh로 지난해 같은 기간 3.9GWh 대비 26.9%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는 파나소닉 성장률인 31.3%보다 낮은 글로벌 8위 이내 기업 중 최악의 성장률이다.

이에 삼성SDI는 2020년 글로벌 5위에서 지난해 6위, 올해 7위로 갈수록 한 계단씩 밀려나고 있다. 사실상 배터리 사업에서 삼성이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사진=SNE리서치]

◆삼성의 시선은 차세대 배터리로···전장사업과 시너지 '톡톡'

그러나 재계에서는 이같이 경쟁 구도가 굳어진 리튬이온 전지보다 차세대 배터리 기술로 주목을 받는 '전고체 전지' 분야에서 삼성SDI가 투자와 연구개발(R&D)에 집중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전고체 전지는 리튬이온전지 4대 소재 중 전해액과 분리막을 고체 상태인 이온전도 물질로 대체한 차세대 전지를 의미한다. 가연성이 높은 전해액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화재·폭발 위험이 낮은 데다 에너지 밀도가 높은 양·음극재를 활용할 수 있어 전기차 주행거리 등이 획기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SDI가 차세대 배터리에서 보다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다면 다른 계열사와 시너지를 확대할 수 있다. 특히 전장사업에서 시너지가 매우 클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삼성 계열사들은 각각 저마다 분야에서 전장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삼성SDI도 경쟁력 확보에 성공한다면 전기차에 활용되는 작은 부품부터 동력원인 배터리까지 이른바 수직계열화를 구축해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

실제 삼성디스플레이는 리지드(Rigid·잘 휘지 않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전장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지난해 현대자동차 전기차 '아이오닉5'에도 전자식 사이드미러용 디스플레이를 공급한 바 있다.

또한 삼성전기는 적층세라믹캐패시터(MLCC)를 비롯해 카메라모듈까지 전장 부품시장에서 입지를 확대하고 있다. 다만 아직 카메라모듈 분야에서는 낮은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이에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를 생산하는 삼성SDI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평가다.

◆이재용의 복심 최윤호 사장이 경영 중···삼성의 차기 성장동력 낙점?

차세대 배터리 시장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행보는 이 부회장의 이번 출장보다 훨씬 이전부터 구체화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지난해 말 그룹 인사에서 이 부회장의 '복심'이라는 평가를 받는 최 사장이 삼성SDI를 이끌게 된 것과 연관이 깊다.

이는 최측근에게 경영을 맡길 만큼 이 부회장이 배터리 사업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시각에서다. 이번 출장은 이 부회장이 그동안 줄곧 가져왔던 배터리 사업에 대한 관심과 경쟁력 강화 의지를 외부로 드러낸 사례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이에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차세대 배터리를 삼성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낙점하고 적극 육성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이에 삼성SDI는 내년에 전고체 전지 배터리 시제품을 제조하기 위한 파일럿 라인을 가동한다는 목표다.

이를 통해 2025년 시제품을 선보인 후 2027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국내외 경쟁자보다 최대 1년 이상 상용화 시점을 앞당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이 향후 5년 동안 총 450조원 규모 투자 계획을 내놓은 직후 이 부회장이 유럽 출장을 통해 차세대 배터리에 대한 관심과 의지를 표명했다"며 "삼성이 차세대 배터리 사업에 대해 대규모로 투자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럽 출장 마치고 귀국한 이재용 부회장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