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클러 없었던 '방화 변호사사무실'..방화설비 보강 난제 왜?

2022-06-14 07:00
스프링클러 없는 구옥들, 방화설비 보강 필요성 대두
전문가들, '안전 교육 강화'·'사회적 합의 위한 노력' 제언

지난 9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 대구지방법원 인근 변호사 사무실 건물에 화재가 발생해 소방관들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지난 9일 30년 가까이 된 대구 수성구 한 건물에 불이 나 60명에 육박하는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낡은 다중 이용 건물에 대한 부실한 방화설비 보강 필요성이 대두됐다. 전문가들은 스프링클러 추가 설치 등 방화설비 보강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산업 안전 교육 대상 확대와 장기적인 사회적 합의 마련 등 대안을 제시했다.

 
60명 육박하는 사상자 발생···스프링클러 있었다면

지난 9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 대구지방법원 인근 변호사 사무실 밀집 건물에 방화로 불이 나 7명이 숨지고 50명이 다쳤다.
 
밀폐된 구조인 변호사 사무실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했고, 화재가 발생한 층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은 탓에 피해가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찰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55분께 대구 수성구 범어동 법원 인근 지하 2층~지상 5층짜리 건물 2층에서 불이 났다.
 
경찰은 방화범 천모씨(53)가 재판에서 패소한 것에 불만을 품고 상대방 변호사 사무실에 인화 물질을 들고 들어가 사무실에 불을 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사망자 중 1명은 방화범, 1명은 변호사이고 나머지는 직원들로 확인됐다. 이들은 모두 경북대병원으로 옮겨져 안치됐다.
 
불은 소방차 60여 대와 소방인력 160여 명이 동원돼 발생 20여 분 만인 오전 11시 17분께 진화됐다.
 
해당 건물에는 지하에만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고, 화재가 발생한 지상 층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아 피해를 키운 것으로 파악됐다. 소방당국은 "화재 건물 지하 층에만 스프링클러가 있고 지상 층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고 전했다.
 
현행법상 6층 이상이면 의무적으로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게 돼 있다. 하지만 해당 건물이 승인된 1995년에는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었다.
 
당시 소방시설법에 따르면 업무시설은 △소화기 △옥내소화전 △스프링클러(지하 주차장) 등을 설치해야 한다고 돼 있다. 바닥면적 1000㎡ 이상일 때 간이 스프링클러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규정은 2013년 2월에 생겼다. 지하 주차장에만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된 탓에 불이 발생한 빌딩 2층에는 이 같은 설비가 없었던 것이다.
 
 
현실적 어려움에 '안전교육·사회적 합의' 강조
이에 낡은 다중 이용 건물들에 대한 부실한 방화설비 보강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스프링클러 설치를 소급 적용하는 등 충분한 보강은 현실적으로 여의치 않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최영상 대구보건대 소방방재학 교수는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려면 건물 안에 사람들을 다 내보내고 공사를 해야 한다. 또 물탱크, 배관, 기계실 등도 새로 설치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예전 건축법과 소방법 기준으로 지은 건물에 현대적 기준을 적용하는 방법은 지자체에서 돈을 대준다 해도 사실상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최돈묵 가천대 설비소방공학과 교수도 “스프링클러 설치 비용이 장소와 건물 규모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가벼운 수준이 절대 아니다”며 “30~40년 동안 살면서 불 한 번 나지 않았는데 옆집에 불 났다고 낡은 건물에 그 큰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감당하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같은 어려움에 전문가들은 안전 교육 강화를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했다.
 
최영상 교수는 “자동 소화설비(스프링클러)가 없을 뿐 소화기나 소화전 등은 구비돼 있다. 현실적으로 이것들을 활용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현재 산업체는 법적으로 안전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지만 일반 건물들은 교육 대상이 아니다”며 “자기 건물 소화기와 소화전 위치와 사용법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몇 달에 한 번씩이라도 이미 있는 방화설비 사용법과 해당 건물 화재 시 대피 방법 등을 훈련하는 것을 권장한다”고 조언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더 많은 건물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돈묵 교수는 “방화설비 보강이 비용은 많이 들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쉽지 않겠지만 지자체와 건물주, 세입자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비용을 분담하는 형식으로 사회적 합의를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며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사회적인 협의를 통해 '불에 타서 죽는 일은 앞으로 없도록 하자'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일각에서 제기되는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 확대에 대해선 전문가들은 효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간이 스프링클러란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건물 화장실 등에 작은 물탱크와 간소화된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방법이다.
 
최영상 교수는 “간이 스프링클러는 요양원이나 요양병원 같이 당사자가 스스로 대피할 수 없는 곳에 주로 설치된다”며 “말 그대로 '간이'다. 적재하는 물도 1t 정도로 터무니없이 적고, 물을 뿌리는 헤드도 일반 스프링클러 개수에 비해 15분의 1 수준이다. 효율성이 많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