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튼 박사 "넷플릭스의 망 이용 대가 이중 과금 주장은 이율배반적"

2022-06-09 20:28
한국미디어정책학회 '공정하고 자유로운 인터넷 생태계' 대담 진행

[사진=로슬린 레이튼 박사]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가 망 이용 대가를 놓고 법정 공방을 이어가는 가운데 망 중립성과 망 이용 대가는 별개의 문제고, 콘텐츠제공사업자(CP)에 대한 망 이용 대가 요구가 이중 과금이 아니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왔다. 

9일 한국미디어정책학회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인터넷 생태계: 당면과제와 해결방안 모색'을 주제로 특별 대담을 진행했다. 

이날 대담은 네트워크 경제학 전문가이자 포브스 시니어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로슬린 레이튼 박사와 조대근 법무법인 광장 전문위원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됐다. 김정현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가 사회를 맡았다.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 콘텐츠로 인해 발생하는 막대한 트래픽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면서 망 이용 대가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넷플릭스는 자체 콘텐츠 전송 네트워크(CDN) 오픈 커넥트(OCA)를 통해 망의 과부하를 대폭 줄일 수 있으며, 전 세계 어느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에도 망 이용료를 내지 않는 만큼 SK브로드밴드에 대가를 지불할 수 없다고 맞선다. 

레이튼 박사는 이용자가 인터넷 비용을 지불한 만큼 SK브로드밴드에 망 이용 대가를 내면 이중 과금이 된다는 넷플릭스의 주장이 모순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넷플릭스는 DVD 판매로 시작한 회사고, 현재도 미국에서 우편으로 DVD를 판매하고 있다. 가입자들에게 DVD를 판매한 수익을 받으면서 우편 서비스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며 "넷플릭스가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레이튼 박사는 "미국 사례를 보면 비도심 지역에서 넷플릭스에 수익이 1달러(약 1255원) 발생할 때마다 ISP에는 서버 유지 등에 필요한 비용 0.5달러(약 627.5원)가 발생한다"며 "CP의 콘텐츠 전송에 발생한 비용이 충분히 회수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넷플릭스가 망 이용 대가를 지불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는 망 중립성 원칙이다. 망 중립성은 인터넷상에서 특정 콘텐츠를 차별하지 않고 동등하게 다뤄야 한다는 원칙이다. 

그러나 조 위원은 망 중립성과 망 이용 대가는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CP가 이미 돈을 냈는데 ISP가 트래픽을 빨리 처리해줄 테니 웃돈을 달라고 요구하면 망 중립성 위반이다. 그러나 처음에 공중 인터넷망에 접속하기 위한 비용은 망 중립성과 무관하다"고 말했다. 

이어 조 위원은 "미국 케이블TV 사업자 차터가 타임워너를 인수할 당시 미국에서는 망 중립성 원칙이 강력하게 시행되고 있었는데 합병 조건에 망 이용 대가를 부과하지 말라는 내용이 있었다. 망 이용 대가를 부과하지 말라는 것은 (망 이용 대가가) 별도로 부과됐다는 것"이라며 "망 중립성과 망 이용 대가가 별개라는 것이 미국의 공문서에 의해 거꾸로 증명된 것이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레이튼 박사 또한 망 중립성과 망 이용 대가가 다른 문제라는 조 위원의 의견에 동의했다. 

레이튼 박사는 나아가 넷플릭스가 트래픽 절감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OCA가 오히려 망 중립성을 위반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넷플릭스는 OCA라는 배타적인 CDN을 만들어 넷플릭스만 이용하고 있다. 디즈니+ 등 다른 콘텐츠 사업자는 이용할 수 없다"며 "이것이야말로 망 중립성 원칙에 어긋난다"고 전했다.
 

[사진=-아주경제 DB]

SK브로드밴드는 지난 2019년 11월 넷플릭스가 망 이용 대가 협상에 응하지 않는다면서 방송통신위원회에 재정을 신청했다. 넷플릭스는 망 이용 대가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면서 방통위 중재안을 수용하는 대신 2020년 4월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지난해 6월 1심에서 넷플릭스가 패소했지만, 넷플릭스는 곧바로 항소를 제기했다. 이어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에 망 이용대가를 요구하는 취지의 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하며 맞불을 놓았다.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정치권에서도 망 이용 대가 문제를 주시하고 있다. 국회에 CP와 ISP 간 망 사용료 지불 계약 체결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된 가운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공청회를 열고 해당 사안을 숙고한다는 방침이다. 

로슬린 박사는 "한국 정치권에서 이런 개념이 계속 논의되는 것은 고무적"이라며 "한국 국회가 계속해서 이 문제를 살펴보고 다른 국가와의 차이를 연구해서 알리다 보면 대중도 (이 사안이) 공정성 문제이고, ISP의 비용이 회수돼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조 위원은 "정부 부처와 전문가를 중심으로 제도 개선과 연구가 필요하다. 그리고 소송이 아니라 당사자 간 협상이나 합의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사업자 간 유연한 협상을 배려해주는 정책적 배려가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업자들이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도록 협상의 여지를 만들어놓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박천일 한국미디어정책학회장은 "넷플릭스는 인터넷의 개방성을 기반으로 발전하면서 인터넷의 효용성을 더욱 신장시켰다. 그러나 최근 행태를 보면 혁신적인 실리콘 밸리 기업의 특성을 지우고, 자신의 이익만 보호하는 레거시 미디어 그룹으로 회귀하려는 것이 아닌가 반문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망 중립성에 대해 논의할 때 사업자 관점에만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늘 최종 이용자 관점에서 평가하고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