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 한동훈 후보자, '무법 장관' 아닌 진짜 '법무 장관' 되려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한동훈 검사장을 법무부장관 후보로 지명하자 더불어민주당이 난리다. 검찰 사유화와 정치 보복 선언이라고 비난한다. 민주당과의 협치를 원한다면 지명을 철회하라고 주장한다. 검찰 수사권을 완전 박탈하는 ‘검수 완박’의 정당성이 증명됐다고도 한다.
한동훈 장관 지명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에 부담이 될 소지가 크다. 민주당과의 관계가 틀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회 소수파인 윤석열 정부가 성공하려면 국회 과반수를 차지한 민주당의 협조가 절실하다. 윤 당선인이 공약한 것들 중 대부분은 법이 개정돼야 실현할 수 있다. 임대차 3법과 부동산 세제 개편에서부터 여성가족부 폐지, 법무부장관의 수사 지휘권 폐지, 공수처 권한 조정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공약이 다 그렇다.
민주당 협조를 얻지 못해서 공약 실현이 불가능해지고 국정 운영이 삐그덕거리면 윤석열 정부에 대한 국민 지지는 떨어지게 된다. 윤 당선인도 이를 예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법무부장관에 지명한 것은 정무적 판단보다 실무적 판단을 중시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 검사장이 법무부장관으로서 최적임자인데 민주당 반발이 예상된다고 장관 직에서 배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최적임자를 법무부장관에 임명해 법무 행정의 효율화와 선진화를 이루고 검찰을 제자리에 돌려놓을 수 있다면 그것이 정권에 대한 국민 지지를 끌어올리고 궁극적으로 정권의 힘을 키우는 적절한 방안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검찰 사유화· 정치 보복 금지에 성패 달려
그렇다면 문제는 한동훈 후보자가 그런 기대를 충족할 수 있을 것이냐이다. 한 후보자가 국민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아이러니하게도 민주당이 잘 제시했다. ‘검찰 사유화’와 ‘정치 보복’을 하지 않는 것이다. 검찰 사유화와 정치 보복 금지는 민주당이 주장하지 않더라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많은 국민이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 검찰 사유화와 정치 보복을 막기 위해서는 굳이 여러 조건이 필요하지 않다. 한동훈 장관 후보자와 윤 당선인이 한 말들을 지키고 행동에 옮기기만 해도 충분하다.
한 후보자의 말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 당선인의 검사 시절 말을 떠올리게 한다. 권력에 충성하지 않고 정의만 추구하겠다는 뜻이 두 사람 말에 담겨 있다. 한 후보자는 ‘맹종하지 않는다’는 말을 지키고, 윤 당선인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한 후보자가 행동에 옮길 수 있게 해 줘야 한다. “우리 총장님”이라며 “살아 있는 권력에도 엄격히 대해 달라”고 했다가 막상 권력 비리를 수사하자 검찰총장 징계를 결재한 문재인 대통령 전철을 밟으면 앞길은 뻔하다.
한 후보자는 ‘수사지휘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그는 “수사지휘권 폐지는 윤 당선인이 공약한 것이고, 나도 박범계·추미애 장관 시절 수사지휘권 남용의 해악을 실감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장관에 취임할 경우 구체적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에게)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법무부장관의 검찰총장 수사지휘권을 폐지하려면 검찰청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위해 필요하다’며 폐지에 반대하고 있다. 민주당이 반대하면 법 개정은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수사지휘권 행사 여부는 오로지 한동훈 법무부장관, 나아가 윤 대통령의 마음먹기에 달렸다. 이들이 언제든 마음을 바꿔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행사한다면 검찰은 다시 정권의 사유물로 전락하고 정치 보복이 횡행할 수 있다.
"맹종 않는다" 韓은 약속지키고 尹은 보장해 줘야
윤 당선인은 검찰총장 시절 “검찰총장은 법무부장관 부하가 아니다”라고 했다. 장관이 수사에 관해 총장을 부하 다루듯 이래라 저래라 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윤 당선인이 한동훈 후보자를 시켜 검찰총장을 부하 다루듯 할지 아닐지를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검찰 사유화를 막기 위해 한동훈 후보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일이 또 하나 있다. 검사 인사 때 검찰총장의견을 듣게 돼 있는 검찰청법 절차를 존중하고 지키는 것이다. 이 절차는 노무현 정부 때 만들어졌다. 법무부장관의 일방적 인사를 막기 위해서였다.
그런데도 추미애 전 장관은 이 절차를 무시했다. 인사 몇 시간 전에 인사안을 대검에 보내놓고는 ‘검찰총장 의견을 들었다’고 했다. 검찰총장 의견을 듣고 하라는 것은 그저 얘기를 들으라는 것이지 협의나 합의해서 하라는 뜻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굳이 그런 절차를 법에 넣을 필요가 없다. 검찰총장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서 인사에 반영하라는 게 법의 취지이고, 이것이 상식이다.
검찰 주요 간부는 검찰총장을 보좌하고 검찰총장과 함께 검찰을 이끌어 나가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 인사를 하면서 검찰총장 의견을 듣고 반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동훈 후보자는 그런 상식을 지켜야 한다.
검사 인사와 관련해 특히 중요한 일은 검찰에 ‘윤석열 사단 요직 장악’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다. 한동훈 검사장이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윤석열 사단의 요직 독점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과거 문재인 정권에 맞섰다가 부당하게 좌천당한 검사들의 명예는 회복시켜 주되, 이들이 검찰 수사 지휘라인을 독점하게 하는 일만은 피해야 한다. 그래야 검찰 사유화 논란을 막을 수 있다.
미국 바이든 정부의 초대 법무부장관인 메릭 갈런드 장관은 지난해 3월 11일 취임사에서 “(여당인) 민주당원을 위한 규칙과 (야당인) 공화당원을 위한 규칙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권력을 가진 자든 못 가진 자든, 부자이든 빈자이든, 같은 경우는 똑같이 다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법무부가 공평한 정의를 추구하고 법의 지배를 고수한다는 점을 말과 행동으로 미국민에게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우리에게도 이런 법무부장관이 나와야 한다. 박범계 법무부장관은 “나는 장관으로 일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국회의원”이라며 “더불어민주당 당론으로 의견이 모이면 당연히 따를 것”이라고 했다. 법무부장관으로서의 정치적 중립성보다 당파성을 더 중시하는 말이다. 이런 법무부장관은 추미애·박범계 장관으로 족하다. 국민들은 이런 장관들에게 신물이 나 있다. 한동훈 장관 후보자가 미국 메릭 갈런드 같은 장관이 된다면 윤석열 정부를 넘어 나라와 국민의 행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