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文정부의 씁쓸한 '국민외교' 성적표

2022-04-06 06:00

[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



윤석열 새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외교 정책을 실패로 규정하며 종전선언을 둘러싼 논란 등 대북 관련 정책과 한·미동맹 약화를 주된 이유로 들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그보다 더욱 눈에 띄는 뼈 아픈 실패 사례를 들고 싶다. 바로 얼마 전 있었던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 선거에서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 낙선한 건이다. 강 전 장관이 노동 관련 경험이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승산이 크지는 않았지만 단 두 표를 얻어서 3위에 그친 것은 예상 밖이고 사실 치욕적인 결과이다. 당선을 위해 한국 정부가 전방위적 외교 노력을 벌였기 때문에 더욱 참혹한 결과였다.

한국은 2년 전 세계무역기구 (WTO) 사무총장 선거에서도 비슷하게 고배를 마셨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업고 유명희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출마했지만 낙마하여 실망을 안겨 주었다. 또 작년에는 강경화 장관이 유엔여성기구 (UN Women) 수장에 도전했다 실패했다. 사실 현 정부 5년 동안 한국은 국제 무대에서 이렇다 할 성과도 활약도 보여주지 못했고 존재감 없이 지내왔다. 과거 노무현 정부 당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당선시켰던 것이나 시기는 다르지만 세계보건기구 (WHO) 이종욱 사무총장, 국제형사재판소(ICC) 송상현 소장 등 국제기구 수장들을 배출했던 것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국제기구 수장 배출 여부로 외교의 성과를 평가할 수 없다면 다른 분야를 살펴보자. 5년 동안 한국이 개최하거나 주도한 국제적 회의나 포럼도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2019넌 부산에서 개최된 한국 아세안 정상회의 정도가 기억나지만 이는 우리 순서가 되었기 때문이지 특별한 경우는 아니었다. 과거 G20 정상회담이나 핵안보정상 회담같이 우리가 유치하고 주도한 국제적 행사는 별로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한·미동맹 약화, 최악의 한·일관계 등 문제점까지 고려할 때 지난 5년의 외교가 실패했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무엇이 한국 외교를 이렇게 초라하게 만들었을까? 필자는 한 이유로 문재인 정부의 ‘국민 외교’를 들고 싶다. 이제는 별로 크게 언급되지 않지만 현 정부 임기 초반에 국민 외교는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화두였다. 전임 박근혜 정부에서 외교 정책, 특히 대일 정책이 국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강행되었다는 판단 하에 모든 외교 정책에서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것이었다. 위안부 관련 일본과의 협의를 그 대표적인 문제 사례로 들었다.

물론 모든 정책에서 국민들의 의견을 듣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교처럼 민감한 사안에서는 때로는 국민들의 목소리뿐 아니라 다른 여러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 이성보다는 감성에 치우치기 쉬운 여론보다는 전문가의 엄밀하고 이성적인 판단도 고려해야 하고 무엇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국익을 고려한 실용적 선택도 중요하다. 모든 것이 개방되고 투명한 오늘날 정보 사회에서도 보안이 요구되는 민감한 외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한 가지 예로 2016년 미국 오바마 정부 임기 말 단행된 쿠바와의 외교 관계 수립을 들 수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수십년간 지속되온 양국간 갈등과 반목을 해소하기 위해 이 협상을 추진하며 끝까지 비밀에 부쳐 성공을 거둔 바 있다. 현대 외교가 갈수록 국내 정치에 볼모로 잡혀 실패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가운데도 이 사례는 신선한 충격을 준다. 결국 외교는 대외적인 과정이고 정치는 대내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병립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이럴 때는 과감하게 외교와 정치를 분리하고 정치가 외교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문제는 어떻게 국민의 목소리도 들어가며 국익에 도움이 되도록 외교를 추구하는가 하는 점이다. 이것이 다음 달 출범하는 새 정부에게 요구되는 외교 정책의 근간이다. 국내 정치 논리에 함몰되지 않고 세계에 눈 돌려 큰 그림을 바탕으로 한 외교를 펼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약화된 외교력을 복원해야 한다. 격화되는 미·중 갈등에 더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사태로 도래한 신냉전시대에 걸맞은 외교관이 필요하다. 이 상황에서 갈수록 중요해지는 한·미 동맹을 고려할 때 특히 미국통 외교관과 외교력 복원이 중요하다. 사실 한국 정부는 대미외교 탈피 및 외교 영역의 확대라는 명분으로 지난 몇 년간 꾸준히 미국통 외교관들을 천대한 바 있다.

대내보다 대외를 지향한 외교력 복원을 위해 또 한 가지 필요한 것은 갈수록 중요해지는 경제 안보에 맞는 기능의 확보이다. 미·중 간 무역과 기술 패권 전쟁에서 이제 경제는 안보에 필수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한·미 동맹도 이제는 군사 분야에서 경제 안보 분야로 그 축을 옮겨가고 있다. 미국이 주요 기술 경제 분야에서 한국의 협력을 요구하고 있고 이것이 향후 한·미 관계의 큰 축이 될 것이다.

이와 관련 외교부의 통상 기능을 회복시켜 주는 것도 필요하다. 통상이 더 이상 국내 산업의 연장선상에서만 볼 수 없는 것이 변화된 오늘의 지정학적 현실이다. 얼마 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미국과 서방의 통상 관련 제재는 이 문제가 산업이나 경제를 넘어선 안보의 영역이라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9년 전 박근혜 정부가 통상 기능을 외교부에서 지금의 산업통상자원부로 이관할 때는 이러한 지정학적 고려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태평성대 세계화시대'였다. 그러나 이제 세계가 분절화되고 불확실성이 커지는 이 시기에는 지정학적 고려가 필수적이다.


이병종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