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이 칼럼을 쓰는 시점에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이 누가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더라도 엄청난 난관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아직도 정점을 모르고 확산 되고 있고 물가 상승, 청년 취업난 등 산적한 국내 문제가 끝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보다 가혹한 도전은 외부에서 올 것으로 판단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보다 가시화된 신냉전은 한국에게 가혹한 선택을 강요할 것이다. 새 대통령은 격랑 속의 국제 정세 속에서 한국이 과연 누구의 편에 서야 할지 결정해야 할 것이다.

물론 한미 동맹을 기축으로 서방 민주 진영에 설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것을 정책으로 대내외에 천명하는 것과 실제로 이를 실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에 얼마나 충실하게 동참할 수 있는지? 이것이 한국의 경제에 큰 타격을 주더라도 아무 거리낌 없이 끝까지 따라 갈 수 있는지? 중국이 러시아 편에 서서 서방과 대결하는 상황이 온다면 서방의 대중국 제재가 가능할 것이고 이 경우 한국은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 관계 악화를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이런 모든 점을 고려해 외교를 수행해야 하는 차기 대통령에게 주어진 과제는 너무나 막중할 것이다.

군사 동맹을 제공하는 미국과 최대 경제 협력국인 중국이 서로 대체적으로 협력하던 지난 30년간은 한국에게는 축복 같은 시절이었다. 상대적으로 안정된 국제 정세 속에서 한국으로서는 안보와 경제의 두 마리를 다 잡는 실리를 취할 수 있었다. 러시아는 아직 소련 해체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전 세계의 대부분 국가가 자본주의 경제와 민주적인 정치 체제를 지향하는 가운데 한국의 외교는 냉전 시대의 고립에서 벗어나 그 지평을 넓히며 국제 사회에서 영향력을 확대시켜 왔다.

그러나 지난 몇 년 전부터 시작된 미,중 간의 갈등에 이어 최근 촉발된 우크라이나 사태는 갑자기 국제 정세를 차가운 얼음장 같은 신냉전으로 바꿔버렸다. 많은 나라가 이런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겠지만 그 어떤 나라도 한국 같이 절박한 상황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강대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나름대로 실리를 챙겨오던 그런 녹록한 상황은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다. 서방의 민주주의 체제와 러, 중 등 권위주의 체제 사이에서 확실한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런 점을 분명히 했다. 독일 등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그 동안은 권위주의적인 푸틴 대통령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안정적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이번의 침공을 계기로 유럽의 모든 나라들이 하루 아침에 러시아에 등을 돌리고 미국이 주도한 제재에 동참했다. 2차 대전의 원죄 때문에 타국의 군사 원조를 철저히 피했던 독일 마저도 대규모 군사 원조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했다. 대부분 유럽 국가가 스위프트 국제 결제 시스템에서 러시아를 축출시켜 경제적 타격을 입혔고 푸틴의 동조자들 개인에게도 제재를 가했다.

더욱 획기적인 것은 그 동안 중립을 표방해 오던 핀란드나 스웨덴이 우크라이나에 군사 지원을 했을 뿐 아니라 러시아의 위협에 대항해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에 가입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핀란드에서는 국민의 53 퍼센트가 가입 찬성, 28 퍼센트가 반대하고 있고 스웨덴에서는 41 퍼센트가 찬성 35 퍼센트가 반대하고 있다. 이들 국가가 실제 나토에 바로 가입할 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확실한 것은 이제 더 이상 중립국으로 남기가 어려워 졌다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신안보 정책을 피력한 바 있다. 그 당시로서는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아 보였다. 냉전의 기억은 잊혀져 가고 바야흐로 전 세계는 개방과 협력의 시대를 맞고 있었다. 더 이상 물리력으로 타국을 침공하고 주권을 침해하기는 쉽지 않은 듯 보였다. 군사 충돌은 보스니아나 아프리카에서 보듯이 주로 내전과 인종 갈등에 기인하는 듯 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힘 없는 나라는 강대국의 탐욕에 제물이 될 수도 있는 현실이다. 자유주의가 쇠퇴하고 현실주의가 다시 부상하는 이 시점에서 억지력이 없으면 생존이 어렵고 동맹을 통해 힘의 균형을 추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에게도 동맹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미국과의 동맹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외 우방국과의 동맹이 더욱 절실해졌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쿼드 시스템에도 직간접적으로 참여하여 우리의 동맹 체제를 강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특히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시급하다.

지금의 신냉전과 과거 냉전간의 차이를 한 가지 든다면 하드파워를 내세운 엄연한 현실주의 국제 정세 속에서도 소프트파워가 아직 유효하다는 것이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미국과 유럽의 국가들이 앞다투어 러시아에 대한 응징과 우크라이나 지원에 나선 것은 우크라이나 지도자와 국민들이 보여준 용기와 의지가 이들 서방 국가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이들 서방 국민들이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성원하는 가운데 서방 정부들도 더욱 강력한 행동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으로서는 안보를 위해 동맹 및 우방 국가 국민들의 마음과 가슴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일본 등 해당 국가 정부를 우리 편으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나라 국민들이 한국을 진정으로 좋아하고 지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것이 현대에서 날로 중요시되는 공공외교의 영역이다. 군사력 등 하드파워에 한계가 있는 한국으로서는 소프트파워를 키워 이를 보충해야 하는 것이다. 국제 정세의 높은 파고 속에 흔들리는 한국 외교를 위해서는 차기 대통령이 꼭 풀어야 할 숙제로 여겨진다.



이병종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