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찬의 정치직설] 지역 감정 아닌 '지역 결집' 남긴 대선
2022-03-14 00:00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승리 윤곽이 뚜렷해지자, 지난 10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상황실에 들렀다. 당선 소감 일성이 흘러나왔다. 국민에 대한 감사와 함께 국민 통합을 강조했다. 이번 대선은 역대급 비호감과 네거티브가 선거를 지배했다. 오죽했으면 당선자와 낙선자 모두 국민 통합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상대 후보보다 더 표를 많이 받은 지역을 지도로 보면 마치 지역 감정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결과로 보인다. 호남은 이재명 후보가 압승을 거두었고 영남은 대구·경북(TK)과 부산·울산·경남(PK) 모두 윤석열 당선인이 더 표를 많은 얻는 결과로 나타났다. 1992년 이후 다른 양강 구도의 대선과 비슷한 모습이라 ‘지역 감정’ 또는 ‘지역주의’에 대한 우려가 앞선다.
과연 이번 대선의 결과가 지역 감정이나 지역주의일까. 광주, 전남, 전북에서 모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득표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 후보가 전남은 86.10%, 광주는 84.82%, 전북은 82.98%로 모두 80%가 넘는다. 윤 당선인은 텃밭인 영남에서 압도적인 득표를 했다. 경북은 72.76%, 대구는 75.14%, 부산 58.25%, 경남 58.24%, 울산 54.41%로 나왔다. 영호남 지역의 개표 결과만 놓고 보면 여전히 지역주의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비롯해 윤석열 후보가 ‘호남 공들이기’를 많이 했고 이 대표는 30%대 득표를 기대했기 떄문에 상대적으로 아쉬움이 역력한 결과다. TK는 이재명 후보의 출신 지역이므로 더 많은 득표를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대구만 하더라도 이 후보의 득표는 21.6%에 그쳤다.
과연 이 결과를 지역주의로 볼 수 있을까.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해진다. 우선 이번 대선은 ‘불가피한 진영간 대결 구도’로 해석된다. 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영남과 호남은 극도로 대립했다. 정치권이 유발한 지역 감정이 중요한 투표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해태와 롯데의 야구 라이벌처럼 서로에 대한 지역적인 반목이 깊게 나타났다. 그렇지만 교통의 발달과 시대의 변화로 더 이상 감정적인 편견에 따른 지역 감정이 남아 있지는 않다. 수도권에 수많은 영호남 출향인들이 살고 있지만 영호남으로 대립해서 쪼개지지는 않았다.
이번 대선의 투표 결과가 시사하는 바가 무척 크다. 특히 더 이상 지역이나 이념에 의한 지역 볼모잡기가 아니라 지역의 주체적이고 독자적인 의사 결정이 가능해진다는 의미다. 사실상 지역 구도는 이미 무너졌고 새로운 투표 기준이 지역별로 설정된다는 반가운 변화다. 보수 정당의 이 대표가 호남에 공들이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정당 활동을 한다는 인식이 가능해져야 한다. 더 이상 민주당은 호남, 국민의힘은 영남 이라는 공식이 적용된다면 한국 정치는 한 걸음도 더 발전하기 어렵다.
TK 출신인 이 후보가 민주당의 후보가 될 수 있듯이 호남 출신의 보수 정당 대선 후보가 당선되는 정치적인 결정이 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나타나야 한다. 당장에 이번 지방 선거에서 국민의힘은 경쟁력 있는 인물로 호남 지역의 광역 단체장과 기초 단체장 후보를 내세워야 하고 민주당 역시 유권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인물로 지역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번 대선은 망국적인 지역 감정이 아니라 지역 결집의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