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설계사 위기] 보험영업 '꽃' 설계사가 시든다

2022-02-12 08:00
코로나19 영향 수입 감소…잇단 보험사기 적발로 이미지 추락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내 보험산업의 성장을 이끌어온 보험설계사가 위기를 맞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대면 영업에 활로가 막힌 데다, 보험사들이 사이버마케팅(CM) 채널 확장 정책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으로 영업 제약이 커진 데다, 지난해부터 시행된 1200% 룰로 수수료 수익도 감소하면서 보험설계사 절반이 우리나라 연평균 소득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시행되면서 보험사기에 연루된 보험설계사들도 잇달아 적발되면서, 설계사들에 대한 인식도 악화하고 있다.

◆설계사 절반 연평균 근로소득 하회

생명보험 전속 설계사의 연 소득이 2400만원 미만인 설계사가 전체 설계사 중 4분의1을 넘은 반면, 연 소득 6000만원 이상 설계사 비중도 2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생명보험협회가 전속설계사 채널을 운영 중인 13개 생명보험사의 전속설계사 2200명을 대상으로 '직업인식 및 만족도 조사'(95% 신뢰수준에 ±2.1%포인트)를 실시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전속설계사 절반이 근로자 1인당 평균 소득인 3828만원(2020년 국세청 산출)보다 적은 보수를 받았다. 소득구간별 분포에 따르면 연 소득 2400만원 미만으로 조사된 설계사는 전체의 26.9%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2400만원 이상~3600만원 미만은 23%였다. 반면 연 소득 6000만원 이상 설계사 비중도 22.9%에 달해 설계사별로 양극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 밖에 3600만원 이상~4800만원 미만과 4800만원 이상~6000만원 미만 구간의 비중은 각각 10.3%, 17%에 불과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소득이 감소했다는 응답도 70.3%에 달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소득이 크게 줄었다고 응답한 비중은 40.2%였고, 약간 줄었다고 응답한 비중은 30.1%였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소득 변화가 없었다는 응답은 20.8%였다. 8.9%는 소득이 증가했다고 답했다.

활동 기간(경력)별 평균 소득은 5년 미만에서 3730만원으로 가장 적었으며, 이후 꾸준히 증가하여 15~20년에서 6492만원으로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전통적으로 높은 수수료를 받아온 독립보험대리점 소속 설계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한국보험대리점협회가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와 지난해 12월 1일부터 17일간 보험설계사 2144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조사에 참여한 설계사 중 93.3%는 코로나19로 소득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20% 이상의 소득 감소를 겪었다고 답변한 설계사는 전체의 51%였고, 30% 이상 소득이 감소했다고 답한 비율도 26.2%에 달했다. 반면 소득이 증가했다고 응답한 설계사 비율은 6.7%에 불과했다.

소득 감소로 설계사들도 감소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시스템에 따르면 국내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생명보험사의 설계사 신규 등록인원은 지난 2015년 4만6611명에서 지난 2020년 3만4821명으로 6년 새 25.3%(1만1790명) 급감했다. 주요 생보사별로 보면 같은 기간 교보생명의 신규 등록 설계사 수는 7295명에서 4243명으로 절반가까이 줄었다. 신한라이프(구 신한생명)와 미래에셋생명도 각각 2284명, 176명 줄었다. 

보험사와 GA, 인슈어테크 기업들도 설계사 유지보다는 비대면채널 강화에 나서고 있는 점도 설계사들에게는 악재다. 

피플라이프는 최근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GA '보험클리닉'은 올해 안에 전국 오프라인 매장을 모두 철수하기로 했다. 보험클리닉은 2018년 9월 1호점인 이수점을 개설한 뒤, 대형마트와 복합몰 등 주요 상권에 160여개의 점포를 내고 고객과의 접점을 좁혀왔다. 이에 모두 정규직으로 채용됐던 360여명의 보험클리닉 정규직 설계사(내근직)들은 현장 영업직으로 전환된다. 토스가 운영하는 GA인 토스인슈어런스도 정규직 설계사 제도를 없애고 다른 GA처럼 대면 영업을 위한 위촉직 설계사를 채용하기로 했다.

◆ 보험사기 주범 오명…보험설계사 이미지 추락

비대면 수요 증가와 1200%룰 시행으로 수입이 감소한 보험설계사가 보험사기의 온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금융감독 당국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보험사기로 적발된 대형 보험사와 보험대리점 전·현직 보험설계사 26명에 대해 등록 취소 또는 최대 180일 업무 정지 등의 제재를 했다.

제재를 받은 전·현직 보험설계사들이 근무했거나 소속된 보험사 및 보험대리점은 삼성생명, 삼성화재, 현대해상, 메리츠화재, 농협손해보험, 신한라이프생명 등이다.

이번 보험 사기 제재에서는 보험설계사들의 기상천외한 수법이 눈에 띄었다.

엠금융서비스 보험대리점의 보험설계사는 2019년 본인 아들이 약관상 보험금 지급 대상이 아닌 포경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마치 질병으로 치료를 받은 것처럼 '귀두포피염'이라는 병명의 허위 진단서를 내서 3개 보험사에서 총 760만원을 챙겼다.

프라임에셋 보험대리점의 보험설계사는 2016년 여행 중 휴대전화를 바닥에 떨어뜨려 액정이 파손된 것처럼 신고하는 수법으로 5개 보험사에서 보험금 100만원을 타냈다.

농협손해보험의 전 보험설계사는 2017년 지인들과 공모해 자신이 운전하는 차량으로 지인의 차량을 고의로 들이받은 뒤 교통사고인 것처럼 꾸며 보험금 1463만원을 챙겼다.

이 보험사의 또 다른 전 보험설계사도 지인들과 짜고 보행 중에 지인이 운전하는 차량에 고의로 부딪친 뒤 교통사고인 것처럼 허위 신고해 보험금 40만원을 타냈다.

이처럼 보험사기에 연루된 보험설계사가 지속적으로 적발되고 있는 데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새 일자리를 얻지 못한 인구가 보험설계사로 유입되면서 보험영업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금감원 금융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기준 생명·손해보험 설계사는 28만5499명으로 1년 전(27만7918명)보다 7000명 이상 늘었다. 2010년 이후 꾸준하게 감소하던 보험설계사 수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2019년 6월 말 26만9213명까지 떨어졌던 보험설계사 수는 이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보험사의 대면 채널 비중도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손보협회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16개 손보사의 대면채널의 원수보험료는 전년 동기 대비 2.6% 감소한 20조6376억3200만원을 기록했다. 비대면채널인 사이버마케팅(CM)채널의 원수보험료가 같은 기간 23.3% 급증한 것과 대조적이다. 전체 원수보험료 중 대면채널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8년 1분기 90%에서 올해 1분기 85.3%로 5%포인트 가까이 하락했다.

보험사 한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얻지 못한 인구가 보험설계사에 대거 뛰어들면서 보험영업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며 "이 때문에 보험설계사들의 수익이 감소하면서 과거보다 보험사기에 대한 유혹도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