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의 투어웨이] 더스틴 존슨의 품위

2022-02-05 00:12
PIF 사우디 인터내셔널 2R
존슨이 마주한 트러블 상황
거침없는 스윙으로 3온 파
디펜딩 챔피언의 품위 선보여

트러블 샷 상황 속 구민석 대한골프협회 과장과 더스틴 존슨(중앙). [사진=이동훈 기자]

13번 홀 티잉 그라운드. 전날 맞대결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더스틴 존슨(미국)과 김주형(20)이 올랐다.

홍해의 강풍 속에서 두 번째 대결을 시작했다. 이날 대회장에는 34㎞/h의 바람과 63㎞/h의 돌풍이 불었다. 대단한 바람이다. 새들이 바람과 사투를 벌이다 지쳐 내려앉았다.

13번 홀은 홍해 코스(15·16·17번 홀)로 가는 길목이다. 우측에서 강한 바람이 불었다. 존슨이 티샷한 공이 왼쪽으로 밀렸다. 두 번째 스윙. 그린 주위에 있던 갤러리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존슨의 입에서 터진 '포어(fore)'라는 외침 때문이다.

갤러리가 흩어져서 그의 공을 찾기 시작했다. 한참이 지났을 때, 한 갤러리가 "테일러메이드 1번을 찾았다"고 신났다.

당황한 존슨은 "찾았다"는 외침에 "검은색 줄이 있나요"라고 물었다. 공을 둘러싼 갤러리는 "맞아"라고 입을 모았다.

그제야 존슨은 "와 정말 끔찍한 샷이었네"라며 정신을 차렸다. 그의 캐디가 거리를 불렀다. 99야드(90m). 그린 뒤로 90m나 더 날아갔다. 성난 홍해의 위력이다.

존슨은 경기위원을 호출했다. 움직일 수 없는 장애물이 있기 때문이다. 경기위원으로 구민석 대한골프협회 과장이 왔다. 상황을 보던 구 과장은 구제를 선언했다. 무릎 높이에서 공을 떨어뜨린 존슨은 루스 임페디먼트(제거 가능한 장애물)를 치웠다.

그러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공은 여전히 건조한 흙 위에 있었다. 중동의 모래, 바위, 잡풀, 케이블 등이 스윙 길을 방해했다.

그런데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어드레스도 짧았다. 깃대를 보고 거리낌 없이 스윙했다. 공이 힘 있게 날아가더니 그린에 떨어졌다. 갤러리가 환호했다.

그린으로 돌아온 그에게 갤러리는 손뼉을 쳤다. 퍼팅하려던 김주형이 어드레스를 풀었다.

존슨의 차례. 긴 거리 퍼트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휘는 공. 이번에도 그는 거침이 없었다. 공은 홀 근처에서 급격하게 휘더니 그림같이 떨어졌다. 갤러리가 환호했다.

전 남자골프 세계 순위(OWGR) 1위(현 5위)이자, 디펜딩 챔피언이 선보인 품위다.

경기 후 야외 취재구역에서 만난 존슨은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린에 올릴 수 있고, 퍼트를 넣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남은 이틀도 바람이 불 것이다. 강한 바람 말이다. 관건은 퍼터다. 퍼터 연습을 하고 나가서 점수를 줄이겠다. 난 그저 스윙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존슨은 이날(2월 4일) 버디 2개, 보기 3개로 1오버파 71타를 기록했다. 중간 합계 4언더파 136타 공동 14위다.

김주형은 이날 버디 1개, 보기 4개를 엮어 3오버파 73타를 적어냈다. 중간 합계 2언더파 138타 공동 21위다.

두 번째 대결은 존슨이 승리했다. 그러나 통계에는 복선이 있다. 이날 존슨의 통계는 페어웨이 안착률 57%(8/14), 그린 적중률 61%(11/18), 퍼트 수 31개로 끔찍했다.

반면 김주형은 페어웨이 안착률 86%(12/14), 그린 적중률 67%(12/18)로 안정적이었다. 퍼트 수는 동일한 31개다.

굳이 차이가 있었다면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를 꼽을 수 있다. 김주형은 평균 230야드(210m)로 안전하게, 존슨은 평균 280야드(256m)로 50야드(45m) 더 내질렀다.

2라운드 결과 문도엽(31)이 커트라인(합격선·3오버파 143타)에 걸려 넘어졌다. 

김주형과 어깨를 나란히 한 김비오(중간 합계 2언더파 138타)는 생존했다.

김홍택과 장이근(이상 29), 서요섭(26)은 중간 합계 3오버파 143타로 합격선에 턱을 걸었다.

선두는 해럴드 버너 3세(미국), 아드리 아르나우스(스페인)로 10언더파 130타를 쌓았다.
 

[이동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