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네 리뷰] '해적: 도깨비 깃발'이 보여준 가능성
2022-01-26 00:00
"낭만적이네요. 이 조명, 온도, 습도…."
한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남긴 말이다. 장소, 날씨, 몸 상태 등 하나하나가 모여 '분위기'를 만든다는 의미다. 영화도 마찬가지. 그날의 기분이나 몸 상태에 따라 영화가 재밌기도 하고, 형편없이 느껴지기도 한다. '최씨네 리뷰'는 이러한 필자의 경험과 시각을 녹여 관객들에게 영화를 소개하는 꼭지(코너)다. 조금 더 편안하고 일상적으로 논평(리뷰)을 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최근 KBS 대하 사극 '태종 이방원' 동물 학대 논란을 지켜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사실적인 표현'을 위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위협해왔던 걸까? 사극 드라마, 영화 속 무심히 지나쳤던 장면들이 어떻게 그렇게 사실적으로 그려질 수 있었는지. 너무나 무심하고 당연하게 지켜봐 왔던 것이 아닐까?
드라마·영화 속 동물 학대에 관한 미심쩍은 눈초리 속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감독 김정훈)도 달리 보게 됐다. 영화 '미스터고' '신과 함께' 시리즈, '백두산' '모가디슈' 등을 제작하고 VFX를 담당해온 덱스터 스튜디오가 참여해 바다, 섬, 동굴을 오가는 해적들의 모험을 실제처럼 받아들일 수 있게끔 완성도 높은 비주얼을 구현해냈다.
덱스터 스튜디오가 제작한 작품 속에는 고릴라, 호랑이, 공룡, 개 등 컴퓨터그래픽(CG)으로 구현된 동물들이 등장했는데 실은 때마다 '기술력 자랑 타임'이라며 삐딱한 시선으로 봐왔던 게 사실이었다. '실제 동물을 출연시키면 될 걸 굳이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는 안일하고 무지함에서 비롯했던 무심함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태종 이방원' 동물 학대 사태로 인한 충격이었다. 이들이 왜 계속해서 실제 동물이 아닌 컴퓨터 그래픽으로 동물들을 구현해왔는지 생각하게 되었고 현재 기술력이 어느 정도로 동물을 구현할 수 있는지 눈으로 실감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사실적 표현'을 위해 실제 동물들에 위험한 장면을 강요하거나, 수면제·마취제 등을 이용하며 재우지 않아도 된다. 이들을 희생하지 않아도 우리의 기술력은 충분히 원하는 바를 구현 할 수 있다는 걸. '해적: 도깨비 깃발'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영화 '도깨비 깃발'은 화려하고 장대한 그리고 사실적인 비주얼이 자랑인 작품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못지않은 규모감과 사실적인 표현 그리고 생생한 생동감이 주는 재미는 어드벤처물로서의 재미를 극대화한다.
자칭 '고려 제일검'이라지만 어딘지 모르게 허술한 인상의 의적단 두목 '무치'(강하늘 분). 그는 관군에게 쫓겨 바다를 표류하던 중 해적 단주 '해랑'(한효주 분)의 눈에 띄어 목숨을 구할 수 있게 된다. 한배를 타게 된 '해적단'과 '의적단'은 사사건건 부딪치고 으르렁거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에게 깊은 애정을 느끼고 전우애를 나누기도 한다. 해적단은 '민간인의 배는 건드리지 않는다'라는 '해랑'의 철학에 따라 오징어로 끼니를 때우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의적단 역시 궁핍한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해적단과 의적단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왕실 보물에 관한 정보를 얻게 되고 한마음이 되어 보물찾기에 나선다.
'해적: 도깨비 깃발'은 지난 2014년 866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던 '해적'의 속편이다. 전편보다 더욱 커진 규모감과 사실감 넘치는 표현력이 인상 깊은 작품. 해적과 의적이라는 섞일 수 없는 무리를 한배에 태우고 바다를 항해하는 과정을 놀라운 영화적 상상력으로 풀어내고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하며 카타르시스를 끌어낸다.
공들여 구현된 아름다운 바다의 풍광은 시각적 즐거움을 만들어주고 바다의 불기둥부터 번개섬 등 영화적 상상력을 사실적으로 구현하며 역동적인 영화적 '체험'을 선사한다. 한국 영화로도 이제 충분히 어드벤처물이 구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영화적 상상력과 체험으로서 만족스러운 면이 많지만 이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캐릭터들을 소화하는 방식은 아직 조금 아쉬움이 있다. 각양각색 캐릭터들은 그들이 가진 매력에 비해 이를 마음껏 활용하지 못했다는 인상이다. 허술해 보이지만 압도적인 검술 실력을 갖춘 '무치'와 바다를 평정한 리더십과 카리스마를 가진 '해랑'을 주축으로 '해적왕'을 노리는 배신의 아이콘 '막이(이광수 분)', 타고난 사기꾼 '해금(채수빈 분)', '해랑'을 보좌하는 명사수 '한궁'(오세훈 분), 의적단 부두목 '강섭'(김성오 분), 해적단 돌주먹 '아귀'(박지환 분) 등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깊은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 적재적소에 배치되지 못했다는 인상이다. 보물을 노리는 역적 '부흥수'(권상우 분)도 어수선함을 보탤 뿐 제 몫을 다했다기에는 아쉬움이 있다.
그럼에도 '해적: 도깨비 깃발'이 보여준 여러 가능성은 앞으로의 한국 영화 제작에 좋은 지표가 되어줄 것으로 보인다. 판타지를 가미한 영화적 상상력을 구현하는 일부터 동물과 함께하는 촬영 등 여러 위험 요소를 배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방향성을 보여주었다. '태종 이방원' 사태로 많은 이가 충격을 받은 상황인만큼, '해적: 도깨비 깃발' 속 '막이'와 그와 호흡을 맞추던 펭귄의 모습이 더욱 마음에 남는다. 1월 26일 개봉. 상영 시간은 125분이며 관람 등급은 12세 이상이다.
한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남긴 말이다. 장소, 날씨, 몸 상태 등 하나하나가 모여 '분위기'를 만든다는 의미다. 영화도 마찬가지. 그날의 기분이나 몸 상태에 따라 영화가 재밌기도 하고, 형편없이 느껴지기도 한다. '최씨네 리뷰'는 이러한 필자의 경험과 시각을 녹여 관객들에게 영화를 소개하는 꼭지(코너)다. 조금 더 편안하고 일상적으로 논평(리뷰)을 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최근 KBS 대하 사극 '태종 이방원' 동물 학대 논란을 지켜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사실적인 표현'을 위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위협해왔던 걸까? 사극 드라마, 영화 속 무심히 지나쳤던 장면들이 어떻게 그렇게 사실적으로 그려질 수 있었는지. 너무나 무심하고 당연하게 지켜봐 왔던 것이 아닐까?
드라마·영화 속 동물 학대에 관한 미심쩍은 눈초리 속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감독 김정훈)도 달리 보게 됐다. 영화 '미스터고' '신과 함께' 시리즈, '백두산' '모가디슈' 등을 제작하고 VFX를 담당해온 덱스터 스튜디오가 참여해 바다, 섬, 동굴을 오가는 해적들의 모험을 실제처럼 받아들일 수 있게끔 완성도 높은 비주얼을 구현해냈다.
덱스터 스튜디오가 제작한 작품 속에는 고릴라, 호랑이, 공룡, 개 등 컴퓨터그래픽(CG)으로 구현된 동물들이 등장했는데 실은 때마다 '기술력 자랑 타임'이라며 삐딱한 시선으로 봐왔던 게 사실이었다. '실제 동물을 출연시키면 될 걸 굳이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는 안일하고 무지함에서 비롯했던 무심함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태종 이방원' 동물 학대 사태로 인한 충격이었다. 이들이 왜 계속해서 실제 동물이 아닌 컴퓨터 그래픽으로 동물들을 구현해왔는지 생각하게 되었고 현재 기술력이 어느 정도로 동물을 구현할 수 있는지 눈으로 실감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사실적 표현'을 위해 실제 동물들에 위험한 장면을 강요하거나, 수면제·마취제 등을 이용하며 재우지 않아도 된다. 이들을 희생하지 않아도 우리의 기술력은 충분히 원하는 바를 구현 할 수 있다는 걸. '해적: 도깨비 깃발'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영화 '도깨비 깃발'은 화려하고 장대한 그리고 사실적인 비주얼이 자랑인 작품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못지않은 규모감과 사실적인 표현 그리고 생생한 생동감이 주는 재미는 어드벤처물로서의 재미를 극대화한다.
자칭 '고려 제일검'이라지만 어딘지 모르게 허술한 인상의 의적단 두목 '무치'(강하늘 분). 그는 관군에게 쫓겨 바다를 표류하던 중 해적 단주 '해랑'(한효주 분)의 눈에 띄어 목숨을 구할 수 있게 된다. 한배를 타게 된 '해적단'과 '의적단'은 사사건건 부딪치고 으르렁거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에게 깊은 애정을 느끼고 전우애를 나누기도 한다. 해적단은 '민간인의 배는 건드리지 않는다'라는 '해랑'의 철학에 따라 오징어로 끼니를 때우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의적단 역시 궁핍한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해적단과 의적단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왕실 보물에 관한 정보를 얻게 되고 한마음이 되어 보물찾기에 나선다.
공들여 구현된 아름다운 바다의 풍광은 시각적 즐거움을 만들어주고 바다의 불기둥부터 번개섬 등 영화적 상상력을 사실적으로 구현하며 역동적인 영화적 '체험'을 선사한다. 한국 영화로도 이제 충분히 어드벤처물이 구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영화적 상상력과 체험으로서 만족스러운 면이 많지만 이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캐릭터들을 소화하는 방식은 아직 조금 아쉬움이 있다. 각양각색 캐릭터들은 그들이 가진 매력에 비해 이를 마음껏 활용하지 못했다는 인상이다. 허술해 보이지만 압도적인 검술 실력을 갖춘 '무치'와 바다를 평정한 리더십과 카리스마를 가진 '해랑'을 주축으로 '해적왕'을 노리는 배신의 아이콘 '막이(이광수 분)', 타고난 사기꾼 '해금(채수빈 분)', '해랑'을 보좌하는 명사수 '한궁'(오세훈 분), 의적단 부두목 '강섭'(김성오 분), 해적단 돌주먹 '아귀'(박지환 분) 등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깊은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 적재적소에 배치되지 못했다는 인상이다. 보물을 노리는 역적 '부흥수'(권상우 분)도 어수선함을 보탤 뿐 제 몫을 다했다기에는 아쉬움이 있다.
그럼에도 '해적: 도깨비 깃발'이 보여준 여러 가능성은 앞으로의 한국 영화 제작에 좋은 지표가 되어줄 것으로 보인다. 판타지를 가미한 영화적 상상력을 구현하는 일부터 동물과 함께하는 촬영 등 여러 위험 요소를 배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방향성을 보여주었다. '태종 이방원' 사태로 많은 이가 충격을 받은 상황인만큼, '해적: 도깨비 깃발' 속 '막이'와 그와 호흡을 맞추던 펭귄의 모습이 더욱 마음에 남는다. 1월 26일 개봉. 상영 시간은 125분이며 관람 등급은 12세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