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멸공(滅共)과 코리아디스카운트
2022-01-12 16:01
멸공(滅共). 요즘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는 말이다. '멸공'은 1980년대까지는 초등학교 건물에도 대문짝만 하게 걸려 있을 정도로 자주 보이던 문구였으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거의 보이지 않게 됐다. 그랬던 문구가 무려 30년 세월을 가로질러 2022년 새해 벽두부터 연일 언론의 관심 대상이 되고,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1980년대에는 초등학생들까지 공산당 때려잡자는 구호를 외치고, 미술수업에서는 찰흙으로 탱크를 만들고, 도로 주변 담벼락 여기저기에 간첩신고 포스터가 나붙어 있었다. 그러던 세상이 1990년대 들어 달라진 것은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하고, 북한의 위협을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삼던 군사정권이 종식돼 1992년 문민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멸공'을 외쳐야 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지금 와서 새삼스럽게 '멸공'을 외쳐야 할 이유도 딱히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렇게 자취를 감추는 듯했던 멸공(滅共)이라는 단어가 30년 세월을 넘어 갑자기 우리 일상에 훅 들어왔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지난해 11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멸공' 해시태그를 달면서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까지 그에 호응해 이마트에서 멸치와 콩을 사는 것을 공개한 소위 '멸공 챌린지'에 참여하는 등 유력 정치인들도 가세했다. 지금도 그 열기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듯하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다른 요인으로 지목되는 지배구조 문제에 관해서는 멸공 논란과 관련한 언론 보도에 달린 한 댓글이 이목을 끈다. 광주신세계를 거론하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 원인은 소액주주 몫을 가져가는 오너들의 행태 때문이므로 정용진 부회장이 거론할 처지가 아니다'는 취지다. 그 배경을 보면 지난해 9월 광주신세계의 최대주주였던 정용진 부회장이 그 보유 지분 전량을 당시 주가 대비 20% 프리미엄을 얹어 1주당 27만4000원에 매각한 반면 그 주가는 이튿날부터 폭락해 소액주주들이 많은 손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경영권을 수반한 대주주 지분 매도 시 소액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는 이른바 의무공개매수제도가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의무공개매수제도'는 1997년 4월 1일 옛 증권거래법 개정을 통해서 도입했던 제도이나 1998년 외환위기 당시에 신속하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폐지됐다. 회사 지배권 변동은 경영진 및 경영정책의 변동을 초래하고 그에 따라 경영 성과도 달라지고 결국 주식의 가치 내지 가격 변동도 초래하므로 그 과정에서 소액주주는 많은 손해를 입을 수 있다. 그러나 지배권 변동을 수반하는 주식 거래는 기존에 경영권을 가진 대주주와 인수자 간에 매매가 이뤄지므로 소액주주들은 관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결국 우리나라 회사에 투자한 소액주주들은 회사에 중대한 사정 변경이 발생하는 지배권 변동 상황에서도 공정한 가격에 주식을 매도하는 방법으로 회사에서 탈출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이는 소액주주에게 주식 매도 압력을 초래하고 결국 주가 하락을 초래하고, 자본시장에 대한 신규 참여를 저해함으로써 우리 자본시장을 전체적으로 위축시키는 효과가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한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후보가 발표한 대선 공약이 막고자 하는 그 상황이 광주신세계에서 정용진 부회장에 의해 발생했고, 광주신세계 소액주주들은 정용진 부회장에 대해 이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이는 윤석열 후보가 한편에서 정용진 부회장의 멸공 챌린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과는 모순적으로 보인다.
철 지난 멸공 놀음에 참여하기보다는 자신이 발표한 공약의 개선 대상이 되는 그 행위들과 상황에 주목하는 것이 더 필요한 일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