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신고증가에도 물증 확보 어려움에 배상 난항
2021-12-22 16:06
사용자측, '투명인간 갑질'로 피해자 스스로 퇴사 유도
사용자 입증 책임 전환 통해 피해자 부담 완화 필요
사용자 입증 책임 전환 통해 피해자 부담 완화 필요
"4년 동안 직장 상사에게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최근 그 상사가 저를 타 부서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새 부서에서도 저를 투명인간 취급합니다. 사람들도 저를 꺼려하고 일을 주지도 않습니다. 이대로 나가야 하나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3년이 돼 가지만 여전히 직장 내 괴롭힘은 이어지고 있다. 폭행이나 폭언 등 직접적인 괴롭힘은 줄어도, 괴롭힘의 형태는 교묘해졌다. 전문가들은 직장 내 괴롭힘 근절을 위해선 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 물증 확보와 함께 피해자에서 사용자로의 입증책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카톡 대화도 직장 내 괴롭힘 증거 가능
현행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은 '직장에서 지위나 관계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정의된다. 해당 행위가 사회통념에 반하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물론 정당한 업무 지시와 가해행위 경계에 있을 수도 있다.
권순용 변호사(법률사무소 로웍스)는 "직장 내 괴롭힘은 피해자와 사용자 모두 법률 자문이 꼭 필요하다"면서 "(직장 내 괴롭힘 판단은) 당사자와의 관계, 장소, 상황, 행위에 대한 상대방의 명시적 또는 추정 반응의 내용, 행위의 빈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게 된다"고 전했다.
피해자들은 괴롭힘과 관련해 녹음된 녹취본이나 모바일 대화 내용 등을 미리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권 변호사는 "당시에 썼던 일기나 다른 사람과 나눈 대화도 증거가 된다"며 "(소송에서 승소를 받아내기 위해선) 피해자로서 직장 내 괴롭힘을 증명하기 위한 자료가 충분히 확보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괴롭힘 신고 증가세..사용자 입증책임 전환 필요
사용자가 가해자일 경우 처벌 기준이 높아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개정안이 지난 10월 시행됐지만, 직장 내 괴롭힘은 멈추지 않고 있다.
직장갑질119와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지난 2019년 7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 증가세다. 올해는 지난달 30일까지 7507건이 신고, 이미 지난해 신고 건수(7398건)를 넘어섰다.
정현철 직장갑질119 사무국장은 "법 시행 이후 신고는 계속 늘고 있다"며 "신고 이후 피해자에게 불이익이나 보복을 한다는 점과, 신고를 해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에 신고를 하지 않는 비율도 꽤 높다"고 밝혔다.
직장갑질119는 "최근에는 사용자들이 '투명인간 갑질'을 사용하기도 한다"며 "정부지원금을 받는 중소기업이 해고나 권고사직을 할 경우 지원금이 끊기니 스스로 나가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신 변호사는 "처벌만이 능사는 아닌 터라 직장 내 문화가 바뀌어야 하는 시점"이라며 "괴롭힘 신고하는 사람에게 유별나다는 꼬리표를 붙일 게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당당히 말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도 했다.
권두섭 직장갑질119 대표 변호사는 "프랑스 노동법은 근로자가 괴롭힘을 추정할 수 있는 사실을 제시하면, 사용자는 괴롭힘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도록 한다"며 "우리도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직장 내 괴롭힘에서 입증 책임을 사용자가 지도록 전환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령에서 행위자에 대한 처벌 가능한 부분도 구체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 변호사는 "고용노동부 가이드라인에는 직장 내 괴롭힘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만 법적 효력이 없다"면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대한 시행령에서 행위자에 대한 처벌이 구체화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