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대선이다] 나라살림 70조원 적자인데 말 한마디에 70조원 롤러코스터…위험한 票퓰리즘 게임

2021-12-02 00:00
<공약 숨은 1인치① 재정정책> 여야, 예산 처리 난항
'李 대표 공약' 지역화폐 예산 증액 두고 여·야·정 갈등
與 "정부안 6조원 수준서 올해 예산 21조원 수준으로"
야당 "李 선거 지원"...정부도 재정건전성 이유로 난색
尹 "당선 시 50조원 지원"...재원 확보 방안 등 불분명

'표(票)퓰리즘에 빠진 정치권을 어찌 할꼬…' 여야 대선 후보들의 위험한 머니게임이 도를 넘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현금을 살포하는 매표 행위가 대표적이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비롯해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나라살림 적자액이 70조원에 달했지만, 대선 주자들의 표퓰리즘은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다.  
 
특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대표적 공약인 '지역화폐(21조원)'와 '소상공인 손실보상(50조원)' 관련 예산만 70조원을 웃돈다. 윤 후보의 50조원 소상공인 손실보상액은 국방부 1년 예산에 육박한다. 올해 코로나19 피해 지원 등으로 나라살림 적자가 70조원을 넘긴 가운데 양당 대선 후보 말 한마디에 예산 70조원이 출렁이는 셈이다.
 
여야 정치권은 내년도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12월 2일) 하루 전인 1일 지역화폐 예산 증액 문제를 두고 예산안 처리에 온종일 난항을 겪다가 협상 막판 4조7000억원가량 증액에 합의했다. 총 예산 규모는 정부 제출안보다 3조원가량 증가한 약 607조원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30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에 위치한 기업형 메이커 스페이스 'N15'를 방문해 자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나라살림 빨간불인데···재정건전성 '모르쇠'

기재부가 매달 발표하는 '월간 재정동향(11월호)'에 따르면 국가 실제 재정 상황을 나타내는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약 74조7000억원이다. 전월(약 70조2000억원) 대비 4조5000억원 늘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적극적인 재정 집행 영향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이런 확장적 재정 기조가 계속될 경우 내년 초부터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이 불가피하고 이 경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마지노선이던 40% 선을 넘길 가능성도 점쳐진다. 

그럼에도 여야 대선 주자들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돈 뿌리기 경쟁에 몰두하고 있다. 이 후보의 지역화폐 예산 증액이 대표적이다.

◆지역화폐 예산 증액 놓고 여·야·정 협상

민주당은 내년도 지역화폐를 올해 수준인 21조원 이상으로 발행하기 위해 당초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6조원 규모보다 최소 15조원 이상을 추가로 발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서는 1조2000억원에서 1조5000억원가량의 예산이 더 필요하다.

윤호중 원내대표는 전날 "지역화폐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요구가 높고 또 국민과 소상공인 모두가 바라는 정책"이라며 예산 증액 필요성을 피력했다.

그러나 야권에서는 여당의 지역화폐 증액 요구가 결국 이 후보에 대한 선거 지원이라는 판단이 대체적이다. 

허은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지역화폐는 작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무용론을 제기했을 정도로 효과가 미심쩍은 정책"이라며 "이 후보의 공약이라는 것 외에는 지금 시점에 무리하게 해당 예산을 증액시킬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야당뿐 아니라 정부 역시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지역화폐 예산의 대폭 증액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앞서 윤 원내대표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날 국회에서 만나 협의했지만 기존 입장 차를 확인했을 뿐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윤 원내대표와 홍 부총리는 이날 오후에도 예산안 합의 목적으로 국민의힘 원내지도부와 회동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지역화폐는 위험한 발상"이라며 "지역 간에 불필요한 복지 경쟁을 부추길 수 있고 지역에서는 자기들 돈이 다른 지역으로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 아니냐. 전부 고립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야당과 정부 반대에도 애초 민주당은 증액 심사를 통해 5조~6조원가량을 반영, 여야가 합의한 감액분 2조4000억원을 고려하더라도 정부 제출안 604조원 규모보다는 늘어난 예산을 편성한다는 방침을 정했었다.

박완주 정책위의장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도 "이미 예결위가 삭감한 게 2조4000억원이기 때문에 추가로 (삭감)해도 5조원 이상 삭감하기 어렵다"며 "큰 틀에서 정부안보다는 (최종 예산)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1일 오전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을 방문, '겨레의 함성관'에서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尹 쏘아올린 '50조'···비판했던 李 갈지자

이에 더해 이 후보는 그간 비판 의사를 밝혀온 윤 후보의 소상공인 지원 방안에 대해 돌연 '수용'으로 입장을 바꾸며 왔다갔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후보는 최근 광주를 찾은 자리에서 윤 후보를 향해 "말씀하신 (소상공인) 50조원 지원 약속, 저도 받겠다"면서 "대신 당선돼서 하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자"고 제안했다.

앞서 윤 후보는 이달 5일 후보 선출 직후 이뤄진 언론 인터뷰에서 당선되면 새 정부 출범 100일 내에 50조원을 투입해 소상공인 피해를 보상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여권에서는 "재정의 기본도 모른다", "전형적인 금권선거"라는 비판이 줄 이었다. 이 후보도 "국민 우롱"이라고 혹평한 바 있다.

그러나 이 후보는 돌연 민생 대통령을 강조하며 "저는 누가 득을 보느냐 손해를 보느냐를 떠나서 우리 국민께 필요한 일을 해내는 것으로 책임을 다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윤 후보 역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 대한 긴급 구조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이날 청주에서 기자들과 만나 "엊그제까지는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하다가, 표 계산을 해보니 그렇게 (반대)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민주당 쪽에서 든 모양"이라면서 "어찌 됐든 그것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169석의 여당은 즉각 "내년 예산에 50조원을 반영할 수는 없다"며 선을 그었다. 두 후보 주장이 모두 허울 좋은 정치적 구호에 그친 셈이다.

실제로 윤 후보가 제시한 50조원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정부의 방역 정책으로 손해를 입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손실보상을 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했지만, 재원 확보 방안과 지원 계획 등에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다.

이 후보가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등 대선 전 현금 살포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윤 후보도 50조원으로 맞받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