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4주년 기획-2022 리스타트 원년] 노벨상이 던진 화두…이민ㆍ차별 등 건드린 문학·경제

2021-11-15 07:53

매년 발표되는 노벨상은 전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와 관련돼 있는 경우가 많다. 이번 노벨상 시상 전 코로나19 관련 수상자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의외의 결과가 나온 부문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노벨상을 수상한 이들은 인류가 마주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이들이나 해당 문제에 대해 강력한 질문을 던진 이들에게 주어졌다. 2021년 노벨상 부문 중 문학상과 경제학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화하고 있는 난민·정체성의 문제와 경제적 분배의 문제를 다룬 이들이 차지하게 됐다.

2010년대 중반부터 달아오른 고립주의와 배척주의 흐름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한때 신자유주의를 등에 업고 세계는 하나의 시장이라고 외쳤던 글로벌리즘(globalism)은 반이민 정서와 국내중산층 붕괴 등의 부작용을 생산하며 강력한 역풍을 만들어 내고 있다. 올해 노벨 문학상과 경제학상은 외부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깊어지는 시기와 자본주의의 부작용에 대한 고찰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일부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한 압둘라자크 구르나 [사진=노벨위원회 누리집 갈무리]

◆난민 문제와 정체성에 대한 고찰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이다. 영국으로 망명한 탄자니아 출신 작가 압둘라자크 구르나(73)는 누구에게도 언급되지 않았었다. 스웨덴 한림원은 선정 이유로 구르나의 작품 속에서 빛을 발하는 '진실에 대한 헌신'과 '단순화에 대한 혐오'를 뽑았다. 세계화 속에서 우리는 이민자가 되기도, 혹은 이민을 받아들이는 나라의 국민이 되기도 한다. 다른 문화에 속한 이들은 서로에 대해 지나치게 단순하게 바라볼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경우 '흑인, '식민지' 등의 단어로 뭉뚱그려지기 쉽다. 그러나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구르나의 작품 속에서는 단순하지 않은 인물들의 삶이 그려진다. 편견과 단순화가 지배적인 세상에서 경계에 놓인 이들은 설 곳이 없다. 소설 속 이민자들은 영국이나 출신지에서도 모두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다. 사회가 만들어진 주류의 정체성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배척당하는 것이다. 고향에서는 가짜 흑인으로 비난받는 이들이 영국에서는 자신이 믿는 종교 때문에 밀려난다. 구르나는 식민 지배라는 역사와 인종, 종교라는 복잡한 사회적 요소가 교차하면서 피해와 가해의 경계도 명확해지지 않는 상황을 짚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림원은 "구르나가 식민주의의 영향과 난민들의 운명에 대한 타협 없는 열정적인 통찰력을 작품을 통해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아프리카의 비백인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은 1986년 나이지리아 작가 월레 소잉카 이후 35년 만에 처음이다. 

동아프리카 해안의 잔지바르 섬 출신인 구르나는 스무살 때 영국으로 망명했다. 잔지바르는 포르투갈(16세기), 오만 제국(17세기)의 지배를 받은 바 있으며 19세기엔 영국 식민지였다. 1963년 잠깐 이슬람 독립군주국이 되기도 했지만, 결국 이후 아프리카인들로 구성된 혁명 세력이 무력으로 정권을 전복했고, 이후 대륙의 탕가니카와 통합해 탄자니아의 일부가 됐다. 복잡한 역사는 다양한 인종·종교의 혼합을 가져왔다. 혁명 세력의 탄압과 학살을 피해 아랍계 이슬람인 구르나 가족은 영국으로 이주했다. 

이후 영국에서 지내며 영어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켄트대학에서 영문학과 탈식민주의 문학을 가르쳤던 구르나는 식민주의 이후 글쓰기와 식민주의 관련 담론에 대한 탐구를 주로 이어갔다. 1987년 첫 장편 <출발의 기억>을 내놓은 이래 지금까지 10권의 장편소설과 다수의 단편을 발표했으며, 대부분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난민이 겪는 세계의 붕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국 측 브렉시트 협상 담당 데이비드 프로스트 영국 총리 유럽 보좌관 [사진=AP·연합뉴스]

난민 문제는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갈등 요소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 2015년 브렉시트와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은 잠재된 문제들이 표면으로 떠오른 대표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한 데이빗 카드(왼쪽), 조슈아 앵그리스트(가운데), 귀도 임벤스 [사진=노벨위원회 누리집 갈무리]

◆중산층의 붕괴와 임금 논쟁 

올해 노벨경제학상은 노동시장 문제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 교수 3명에게 돌아갔다. 데이빗 카드 캘리포니아주립(UC) 버클리대 교수와 조슈아 앵그리스트 MIT(매사추세스공대) 교수, 귀도 임벤스 스탠퍼드대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이 패스트푸드점의 고용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통계학을 사용해 경제현상을 실증적으로 연구해 온 이들이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수상자들이 노동경제학에 대한 통계학적·실증적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캐나다 태생인 카드 교수의 경우 '최저임금과 고용: 뉴저지주와 펜실베니아주의 패스트푸드점 사례연구'라는 논문을 통해 맥도날드 등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최저임금을 인상해도 고용이 유의미하게 줄어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밝혀낸 바 있다. 

최저임금과 고용의 상관 관계는 많은 국가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 중 하나다. 이같은 연구는 세계 각국에서 저소득층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한 최저임금 인상 논쟁에서 자주 언급돼 왔다. 

미국 출신 앵그리스트 교수와 네덜란드 태생의 임벤스 교수는 자연실험 상황에서 인과관계를 실증하는 방법론에 대한 연구 업적을 인정받았다. 노벨위원회는 수상자들의 연구는 사회에 큰 이익과 관련한 주요 인간관계 질문에 대해 답을 할 수 있는 역량을 향상시켰다고 평가했다. 

양극화가 심화하고 중산층의 붕괴가 빨라지는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은 가장 주요한 이슈 중 하나다. 이번 노벨상 수상자 선정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최저임금과 고용의 상관 관계에 대한 논의가 다시 한번 활발해지기도 했다. 물론 노벨상 위원회는 새로운 연구 방법론을 정립한 것에 주목하면서 노동문제 등 세계가 직면한 과제에 대한 연구 역량을 키워낸 것에 방점을 찍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최저임금 상승이 이어졌다. 어느 때보다 최저임금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던 우리나라였기에 이번 경제학상 수상자들의 면면과 연구 결과는 다른 어떤 수상 부문보다 주목을 받았다. 

물론 수상자는 본인들의 연구가 최저임금의 가파른 상승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는 입장이다. 수상자인 카드 교수도 수상자 발표 직후 인터뷰를 통해 최저임금을 올리자는 주장을 한 것이 아니라, 임금 결정 과정을 주목한 것이라고 밝혔다. 카드 교수와 공동으로 최저임금 관련 연구를 했으며 경제 불평등 연구의 대가였던 앨런 크루거 교수도 당시 연구에 대해 “‘완만한’ 최저임금 인상은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거의 미치지 않지만,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초래할 수 있는 영향도 조사된 바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