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국민심서] 미·중 패권경쟁 속 평화프로세스 집착 벗어야

2021-11-04 07:19

 

[박승준 논설고문]



“한국전쟁 長津湖전투 투입된 군, 인민지원군 아닌 紅軍 최정예 사단”

‘장진호 전투’는 71년 전인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보름 동안 함경남도 장진군 장진호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다. 미 제10군단 산하 제1해병사단을 주축으로 한 미군이 중국 인민지원군 제9병단 산하 3개 사단과 벌인 전투다. 장진호 전투는 한국전쟁에서 중공군과 미군이 처음으로 조우한 전투로 미국과 중국 양국 전사(戰史)는 기록하고 있다. 미·중 양국군이 서로 승리한 전투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당시 영하 40도 부근의 혹한 때문에 미 해병 1사단은 장진호를 넘어 강계 부근의 압록강으로 전진하려던 작전계획을 포기하고 흥남으로 철수했다. 흥남에서 부산으로 철수하던 미군 함정에 탄 피란민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의 아버지가 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천카이거(陳凱歌)가 감독한 영화 ‘창진후(長津湖)’는 지난 9월 30일 첫 상영된 뒤 11월 1일까지 두 달 동안 모두 1억6200만 명의 중국인이 관람했다고 검색엔진 바이두(百度)는 집계해 놓았다. 71년 전의 한국전쟁 전투를 그린 영화 창진후에 왜 중국인들은 열광하는 것일까.

중국 관영 중앙TV는 지난해 중공군의 한국전 투입기념일 10월 25일을 앞두고 20집 연속 다큐멘터리 ‘항미원조 보가위국(抗美援朝 保家衛國)’을 10월 12일부터 저녁 8시 황금시간대에 방영했다. 이 가운데 장진호 전투를 그린 공식 다큐멘터리 ‘빙호혈전(氷湖血戰)’은 10월 19일 방영했다. 장진호 전투가 중국인들 사이에 열광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 것은 바로 이 다큐멘터리 ‘빙호혈전’에서 중국군 당국이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중국의 한국전 참전은 일종의 의용군인 ‘인민지원군’이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투입된 것으로 중국측은 주장해왔다.

그러나 다큐멘터리 ‘빙호혈전’은 장진호 전투에 투입됐던 ‘인민지원군 제9병단’이 인민지원군이 아니라 중국 정규군 제3야전군 산하의 제9병단이었으며, 마오쩌둥(毛澤東)의 직접 선택에 따라 투입돼 ‘인민지원군 제9병단’으로 부대 이름을 바꾸어 달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중국 홍군 제9병단은 중국내전을 겪으면서 가장 전투경험이 많은 병사들로 구성된 최정예군이었으며, 홍군 최후의 전투로 예상된 대만점령 전투 투입을 기다리며 산둥(山東)성 취푸(曲阜)에 주둔하고 있었다. 다큐멘터리 ‘빙설혈전’은 최정예 제9병단 병사들이 이동을 위해 기차에 탈 때까지도 자신들이 탄 기차가 대만 점령 전투를 위해 남하할 것으로 생각했다가, 기차가 북상하는 걸 보고 놀랐다는 지휘관 츠하오톈(遲浩田·나중에 국방부장을 지냄)의 증언도 기록해 놓았다. 중국군 최정예 제9병단이 한국전에 투입돼 장진호 전투에서 미국의 최정예 ‘왕파이(王牌·King Card)’ 사단인 미 제10군 산하 제1해병사단을 대패시키는 승리를 거두었다고 ‘빙호혈전’은 공개했다. 지난 9월 30일 상영되기 시작한 영화 창진후는 이런 중국군 당국의 비화 공개를 거쳐 중국인들의 열광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동해는 이미 중·러 해·공군 합동훈련장으로 변해

중국에서 미·중 갈등과 긴장 속에서 장진호 전투는 이제 더 이상 70년 전의 역사가 아니라 현실의 세계로 들어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노골적인 반중(反中) 외교정책에 이어 올해 1월 취임한 바이든 대통령은 쿼드(QUAD)와 오커스(AUKUS)에 이어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Summit for Democracy)’를 올해 12월 9∼10일 화상으로 개최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포위망을 형성해서 압박하는 전략을 구사하자 중국은 우리의 동해에서 러시아와 손을 잡고 미국에 대응하는 전략적 선택을 했다. 이 때문에 동해는 마치 1894년 청일전쟁과 1905년 러일전쟁 때 서해가 그랬던 것처럼 ‘험난한 바다(Sea of Troubled Water)’가 되어가고 있다.

중국관영 중앙TV 채널4가 매일 몇 차례씩 방영하는 시사 프로그램 ‘포커스 투데이(今日關注)’는 지난 14일부터 17일까지 중국 해군 신형 미사일 구축함 4척이 동중국해의 중국 군항을 출발해서 제주도 남쪽 해상과 대한해협을 거쳐 동해를 통해 북상해서 17일 러시아 군함들과 만나 합동훈련을 하는 모습을 과시하듯 보여주었다, 중·러 연합해군은 모두 10척으로 연합함대를 구성해서 일본 열도를 북에서 남으로 한 바퀴 선회하는 합동훈련을 미국 보란듯 보여주었다. 이 중·러 합동 함대 훈련에는 중국측에서 난창(南昌)함, 쿤밍(昆明)함, 빈저우(濱州)함 등 최신예 미사일 구축함과 보급함 둥핑후(東平湖)함 등 5척이 참가한 것으로 공개됐다.

중·러 연합함대는 양국이 합동으로 최초의 ‘제1도련(島鏈· Islands Chain)’ 통과 훈련을 실시한 것이다. 중·러 연합함대는 동해를 북상해서 동쪽으로 방향을 꺾어 일본 혼슈(本州)와 홋카이도(北海道) 사이의 쓰가루(津輕) 해협을 통과한 다음 일본 열도 동해안을 따라 남하한 다음 서쪽으로 방향을 꺾어 규슈(九州) 남단과 오키나와 열도 사이의 오스미(大隅)해협을 통과하는 항로를 택했다. 중·러 연합함대는 항행 중 미사일 실탄 발사 훈련도 하고, 대잠 헬기를 띄우는 작전도 실시했다. 중국이 설정한 제1도련은 일본열도와 필리핀을 연결하는 선으로, 이 선을 넘어서면 미군 기지가 있는 괌도가 있는 해역이 된다. 일본 동쪽해역에서 남태평양을 연결하는 제2도련선을 넘어서면 미국 인도태평양 함대 사령부가 있는 하와이 해역으로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중국 해군 발표에 따르면, 중국과 러시아 해군은 2012년 이후 2019년까지 모두 9차례의 해상합동훈련을 동해에서 실시했으나, 중·러 연합함대가 일본 열도를 따라 동해안을 북상해서 일본 열도의 쓰가루 해협을 관통한 다음 다시 오스미 해협을 관통해서 동중국해로 돌아오는 훈련을 실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동해에서 실시되는 중·러 합동훈련에 참가하는 젠(殲·J) 계열의 중국 전투기와 훙(轟·H)계열의 폭격기, 공중경보기들은 동해로 가기 위해 제주도 남쪽의 우리 방공식별구역(KADIZ)을 우리 당국에 아무런 통보 없이 침범하고 통과해왔다. 중국 공군기들의 거침없는 우리 KADIZ 통과는 하도 잦아서 이제는 우리 공군기들이 일일이 대응 출격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KADIZ뿐만 아니라 동해의 독도 상공에까지 러시아 폭격기가 출몰하는 일이 최근 벌어졌다. 러시아 국방부는 지난 8월 17일 러시아 전략폭격기 2대가 동해 상공에서 정례 훈련 비행을 했다고 공개하기도 했다. 인테르팍스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국방부는 “전략폭격기 투폴레프(TU)-95MS 2대가 수호이(SU)-35 전투기들의 호위를 받으며 약 9시간 동안 한반도 동해 상공을 정례 비행했다”고 발표했다. 미·중간 갈등은 중국 해군과 공군기들의 우리 공역과 해역 침범은 물론, 러시아 해공군의 우리 동해와 동해 상공 드나들기를 정례화 했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미·중 패권 다툼으로 한국과 대만은 ‘생존의 기로’에

미·중 갈등으로 대만 상공에서도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중국 공군기들이 대만의 방공식별구역은 물론, 타이베이(臺北) 상공까지 침투해서 전투기와 폭격기 비행훈련을 감행한 사실을 대만 중앙통신의 발표를 인용해서 공개하고 있다. 중국의 건국기념일인 '국경절' 연휴가 시작된 10월 1일부터 나흘간 중국 군용기 149대가 대만 방공식별구역에 들어가 전례 없는 대규모 무력 시위를 벌였다. 지난달 4일에는 J-16 전투기 38대 등 총 52대의 중국 군용기가 대만 방공식별구역을 침입했다. 이는 대만 국방부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중국군의 대만 주변 활동을 공개하기 시작한 작년 9월 이후 최대 규모였다.

미국의 압박에 대한 대응전략으로 중국이 한반도의 동해와 대만 상공에서 무력 시위를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미 다트머스 대학의 제니퍼 린드(Jennifer Lind) 교수와 대릴 프레스(Daryl Press) 교수는 지난달 7일 미 워싱턴 포스트지에 한국의 핵무장을 권하는 기고문을 게재해 관심을 끌었다. 두 교수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불법적이었지만, 북한 핵의 위협을 받고 있는 한국이 핵무기 개발에 나설 경우 NPT(핵비확산 조약) 제10조의 규정에 따라 합법화 될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한국의 핵무기 개발은 북한의 핵무기 위협에 대한 정당한 대응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트머스 대학 두 교수의 제의는 종전선언이나 교황의 방북,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 때 중국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과 만나 남북한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하는 것만이 우리의 살길이 아니라 또 다른 길도 있다는 견해로 우리가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것일까. “현재 진행 중인 미·중 각축과 갈등이 우리에게 위험한 이유는 우리와 동맹국인 미국과, 동반자국인 중국의 관계가 악화된 상황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정재호 교수의 견해다. 미·중관계와 한반도를 40년 가까이 연구해온 정 교수는 최근 펴낸 저서 <생존의 기로 : 21세기 미중관계와 한국>에서 그런 진단을 제시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은 유지하되, 동맹국인 미국에 대한 정책 선택과 중국에 대한 정책 선택은 그 위치가 달라야 한다는 것이 정 교수의 견해다. 정 교수의 견해가 아니더라도, 이제는 우리가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과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서 현실적인 시각으로 새로운 한반도 안보전략을 생각하기 시작해야 할 때가 아닐까.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