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행정부 '디폴트 악몽' 실현하나?...공화당 총력 공세에 위기 고조

2021-09-28 11:25

미국의 '국가 부도'라는 사상 초유의 위기 가능성이 고조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 미국 의회는 이달까지 연방정부 임시 예산안과 부채한도 적용 유예안을 처리하는 논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야당인 공화당의 반대 공세로 조 바이든 행정부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 위기가 높아지고 있다는 평가다.

27일(현지시간) 로이터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야당인 공화당은 상원에서 미국 행정부의 임시 예산안과 부채한도 적용 유예 법안 통과를 무산시켰다. 해당 법안은 앞서 지난 21일 하원이 송부한 법안으로, 오는 12월 3일까지 연방정부에 긴급 자금을 지원하는 임시 예산안과 내년 12월까지 부채한도 적용을 유예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이날 상원에서 해당 법안은 절차 투표 과정에서 찬성 48표 대 반대 50표로 부결됐다. 절차투표는 최종 표결에 부치기 위한 사전 단계로, 상원 전체 정원 100명 중 60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현재 여당인 민주당과 야당인 공화당은 동수(각각 50석)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27일(현지시간) 미국 상원에서 절차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사진=EPA·연합뉴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이날 표결에 앞서 "부채한도 적용 유예안을 제외할 경우 임시 예산안에 찬성할 수 있다"며 "(연방정부의) 부채 한도를 상향하기 위해 공화당의 표를 줄 순 없다"고 단언했다.

표결을 마친 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공화당은 스스로가 '디폴트 정당'임을 확고히 했다"라며 "그 대가는 미국 국민이 치르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다만, 대체로 해당 법안이 상원에서 손쉽게 통과될 것으로 예상하진 않아왔지만, 최종 표결 전 단계에서부터 여당 안에서 반란표가 나온 것은 예상 밖이라는 평가다.

이에 미국 언론들은 다음 달 1일 자정으로 다가온 '예산 절벽 위기'가 더욱 고조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의회가 법정 한도(28조7800억 달러·약 3경4038조원)를 초과한 상태인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한도를 유예하지 않거나 새 회계연도에 예산을 승인하지 않을 경우, 미국 재무부의 현금이 소진하며 10월 15일~11월 사이에 미국 행정부는 디폴트 선언을 할 수밖에 없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의 국가 디폴트 위기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한 번도 현실화한 적은 없었다"면서도 이번에는 공화당의 반대 공세로 그 어느 때보다 디폴트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금융시장 혼란과 경기 회복세 충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따라서, 민주당 측은 연방정부의 디폴트 선언과 업무 중지 사태(셧다운)를 막기 위해 당초 함께 처리하려고 했던 임시 예산안과 부채한도 증액안을 분리하는 것으로 방향을 수정했다. 공화당의 요구를 받아들여 임시 예산안을 우선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부채한도 유예 연장 실패에 따른 디폴트 선언 시기는 다음 달 중순경으로 예상되는 만큼, 다음 달 1일부터 시작되는 회계연도에 당장 사용할 예산안을 처리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논리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왼쪽)과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사진=AP·연합뉴스]


다만, 이를 두고 민주당 내부에서도 혼선을 빚고 있는 상황이라 상황을 낙관할 순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총 4조5000억 달러에 달하는 2개의 인프라 투자 예산안을 두고 진보파 세력 사이의 내분이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방정부의 재정 지출에 소극적인 중도파는 1조 달러 규모의 1차 법안을 먼저 발효하고 3조5000억 달러 규모의 2차 예산안을 추가 심의하자는 입장이며, 진보파는 두 개의 법안을 한 번에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앞서 27일로 제시했던 법안 처리시한을 30일로 미루고 1차 법안의 하원 표결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WSJ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연준)가 미국의 디폴트 사태에 대비해 지난 2013년 마련했던 비상계획을 재검토할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야당인 공화당의 예산안 처리 거부로 16일 동안이나 셧다운 상태에 들어가며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디폴트 위기를 맞기도 했다.

당시 연준은 디폴트 선언으로 지급 불능 상태가 된 미국 국채를 시장에서 매입하고 별도로 보유 중인 국채를 내다 파는 방식을 논의했다. 이 시기 연준 이사회에 소속했던 현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제도적 리스크(위험성)가 크기 때문에 연준이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상실할 수 있다"면서 "정말로, 정말로 하고 싶지 않은 결정"이라고 평가했으며, 재닛 옐런 현 미국 재무장관은 "나 역시 그렇게 하고 싶진 않지만, '절대 할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해당 문제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나는 낙관주의자로 태어났다"면서 "나는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불안감을 완화하려는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