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흥망 가른 ESG 대응

2021-08-20 06:00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세제 등 고체 화장품 제조업체 ‘동구밭’은 2019년 20억원이었던 매출이 지난해 60억원으로 두배 급등했다. 2017년 이후 매년 두배 이상의 매출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동구밭은 지속적인 성장세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기반의 여러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데서 찾는다. 동구밭은 직원의 절반 이상을 발달장애인으로 고용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또 친환경 제품에 대한 윤리적 소비자들의 니즈를 파악해 플라스틱 사용량이 적은 고체 비누 제품을 판매한다. 동구밭에 따르면, 고체 비누 사용을 통해 줄인 플라스틱 양이 1만㎏ 이상이다.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는 비건 공식 인증마크까지 획득해 탄소 배출 절감과 식물성 원료에 대한 윤리적 소비자들의 수요를 충족했다.

기업경영에 ESG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 됐다. 자금조달을 위한 투자부터 대기업과의 거래, 수출, 소비자 선택까지 사업 전반에 ESG 요소가 고려되는 추세가 강화되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대기업처럼 인지도가 낮다고 ‘ESG 리스크’가 적을 것으로 안심했다간 거래가 중단되는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 반대로, 선제적인 ESG 대응으로 장기계약을 따낸 기업도 있다.

◆빨라지는 ESG 흐름…2030년까지 투자규모만 130조원 달할 듯
국내에서 ESG가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다. 하지만 2005년 ‘유엔 글로벌 콤팩트’ 콘퍼런스에서 처음 ESG 투자에 대한 개념이 제시되고, 이듬해 유엔책임투자원칙(UN PRI)이 출범하면서 세계적으로 ESG 투자에 대한 개념은 널리 인식돼 왔다.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들이 수탁자로서 투자 의사를 결정할 때 투자 대상 기업의 재무적 요소뿐만 아니라 ESG 등 비재무적 요소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게 큰 줄기다.

이후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을 중심으로 부정적인 이슈의 기업을 배제하는 소극적인 지속가능투자에서 ESG 성과를 추구하는 적극적인 지속가능투자로 전환하고 있다. 나수미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 입장에서 ESG 확산은 지속가능경영을 부스팅(Boosting)하는 외부자금조달(투‧융자) 환경의 변화”라고 설명했다. 세계 지속가능투자 연합(GSIA)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세계 ESG 투자 규모는 약 40조5000억 달러(약 4경6000억원)에 달한다. 독일 최대 은행인 도이치은행(Deutsche Bank)은 ESG 투자가 2030년까지 130조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했다.

ESG 흐름은 유럽연합(EU)집행위원회와 미국의 바이든 정부를 중심으로 더욱 빨라졌다. EU는 2014년부터 ESG 정보 의무공시제도를 발전시켜 왔고, 2018년엔 근로자 500인 이상 기업에 대해 환경‧사회‧노동‧인권‧반부패에 관한 정보 공개를 의무화했다. EU집행위는 올해 지속가능한 기업지배구조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입법 완료 시 EU 역내기업에게 공급‧하청 업체 전체를 포괄하는 글로벌 공급망의 ESG 부정 요소를 실사하고 이를 예방‧완화해야 하는 법적 의무가 부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EU집행위는 2026년부터 본격 시행되는 세계 첫 탄소국경세 도입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미국 역시 3조5000억 달러(약 4000조원) 규모의 친환경 투자와 탄소세 부과에 대한 의견을 모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한국은 ESG 태동기…개념‧대응 혼란 겪는 중소기업
#소규모 가구업체 A사는 지난해 미국 글로벌 유통사에 납품을 준비하던 중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평가를 요청받았다. A사는 수백만원의 심사비용을 내고 CSR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외국인 근로자 숙소의 안전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납품이 무산됐다.

#선박엔진 부품 제조업체 B사는 최근 ESG 데이터 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자율적으로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발간했다. 세계적으로 비재무적 요소와 지속가능성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B사의 판단은 적중했고, 글로벌 선박엔진 제조기업의 평가 기준을 웃돌아 450억원의 매출 증가를 가져온 장기계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ESG 확산, 지속가능경영 글로벌 규제 도입, 지속가능한 소비 확대 등의 환경 변화는 기업의 자금조달과 구매자 관리 같은 경영환경에 영향을 준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은 ‘ESG 확산이 중소기업에 미치는 영향 및 지원방향’ 보고서에서 “대기업은 이러한 환경 변화에 직접적으로 노출돼 있어 대응 과정에서 협력사인 중소기업들이 간접적 영향을 받게 된다”며 “글로벌 대기업과 거래하는 수출 중소기업도 ESG 확산의 직접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먼저 ESG 투자다. 아직은 대기업을 비롯한 상장기업이 가장 큰 영향을 받지만, 향후 중소기업 자금조달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중소기업의 경우 정책자금, 담보대출, 벤처캐피탈의 직접투자가 주요 외부 자금조달원으로서 ESG 성과와 연계되는 부분은 없다”면서도 “ESG 투자 확산으로 중소기업 금융도 조금씩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B2B(기업 간 거래)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ESG 위험 관리가 공급망 전반으로 확대되는 경향으로 ESG 성과에 따라 공급망에 포함되거나 배제될 수 있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ESG를 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선제적인 ESG 관리는 공급망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B2C(기업‧소비자 간 거래) 중소기업은 윤리적 소비 확산이라는 흐름을 활용하면 매출 증대로 이어질 수 있다. 동구밭은 B2C 중소기업이 ESG 성과를 홍보하고 윤리적 소비를 확산시켜 매출 확장으로 이어진 사례다.

수출기업은 EU‧미국 등 글로벌 기업이 납품기업에 대한 ESG 관련 요구 수준을 강화하는 추세를 주목해야 한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수출기업의 절반 이상(54%)은 글로벌 고객사에 수출‧납품하는 과정에서 사회책임 수준의 평가를 요구받았다.

나수미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세계 자본시장과 규제 환경의 급박한 변화에 직면한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ESG 교육‧인식 확대, ESG 위험 발생 상황을 위한 긴급 지원 창구 마련과 같은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중소기업이 ESG에서 기회요인을 포착하는 적극적 지속가능경영의 단계까지 진보할 수 있도록 ESG 성과 제고를 위한 정책금융 공급, ESG 데이터 관리를 위한 오픈 플랫폼 제공, 대‧중소기업 지속가능경영 협력 유인 등을 제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