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CB 불패' 막는 전환가 상향제 도입 환영

2021-08-19 15:07



한국 자본시장의 전환사채(CB)는 투자자 입장에선 마법과도 같은 금융상품이다. 만기까지 보유하면 이자수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주가가 오르면 주식으로 전환해 차익을 낼 수 있다. 주가가 떨어져도 전환가 조정(리픽싱)이 가능하다. 발행사는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고, 투자자는 위험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상품이다.

얼핏 보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이 상품은 기존 주주 입장에선 눈엣가시다. 주식으로 전환되면 신주 발행과 함께 매도 물량이 한꺼번에 나오는 오버행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리픽싱을 통해 전환가액이 내려갔다면 발행되는 주식 수도 늘어나는 셈이기 때문에 기존 주주의 지분도 더욱 많이 희석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결과만 놓고 보면 주가 하락으로 인한 CB 투자자의 위험부담을 기존 주주에게 떠넘기는 형태가 된다. 

때로는 CB 발행이 대주주의 지분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대주주에게 매수 권리(콜옵션)을 부여한 전환사채를 발행해 경영권 강화나 승계에 활용하는 것이다. 허위사실을 유포해 의도적으로 주가를 낮추는 사례도 존재한다. 대부분의 CB가 공시 의무가 적은 사모 형태로 발행되기 때문에 일반 투자자 입장에선 정황 파악도 어렵다.

코스닥벤처펀드 출범 이후 CB 발행이 증가한 뒤론 CB 발행을 둘러싼 시비도 더욱 커졌다. 코스닥벤처펀드는 공모주를 우선 배정해주는 대신 코스닥 상장사의 주식이나 CB 등에 투자해야 한다. 다수 운용사가 공모주 배정을 위해 CB 투자를 진행하다 보니 시장에도 왜곡이 발생했다. 자금 조달이 필요하지 않은 기업에 찾아가 CB 발행을 권유하는 경우도 나타났다. 무리한 CB 발행 뒤 주주들에게 손을 벌리는 기업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금융당국이 주가가 오를 경우 전환사채(CB)의 전환가액을 의무적으로 상향 조정하는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회사채 발행이 어려운 기업에겐 이번 제도 변화가 자금 조달 비용을 늘리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중소 상장사들의 돈줄이 메마를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는 지나친 감이 있다. 오히려 이자율 0%의 CB가 대거 발행되는 모습이 비정상 아닐까. 뒤늦게나마 이뤄진 제도 개선을 환영하는 이유다.
 

[사진=안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