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들이 매출 확대를 위해 과다 출혈경쟁에 나서면서 기준 없이 과지급되던 모집수수료가 금융당국의 '1200% 룰' 시행으로 일부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200% 룰' 시행으로 수수료에 상한을 두면서 설계사 인센티브 경쟁이 줄어들고 보험사 실적도 개선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독립보험대리점(GA)들이 소속 보험설계사에게 판매건수당 지급하는 시상수수료를 인상하는 등 편법까지 나타나면서, 1200% 룰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 1200% 룰 적용 효과에 손보사 사업비율 개선

손보업계에 따르면 삼성화재와 현대해상 등 국내 손보사 10곳의 사업비는 3조934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0.9%(347억원) 줄었다.

같은 기간 이들 손보사의 사업비율은 20.53%로 전년 동기 대비 1.19%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2017년 말 이후 최저치다. 사업비율은 보유보험료에 비해 사업비의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사업 규모에서 영업이 차지하는 비율을 보여준다. 이 수치가 하락했다는 것은 그만큼 보험사의 사업비 지출이 축소됐다는 뜻이다.

손보사별로 보면, 업계 1위인 삼성화재의 순사업비율은 19.83%로 전년 동기 대비 1.40%포인트 하락했다. 현대해상은 19.72%로 0.59%포인 낮아졌다. 특히 2015년 이후 사업비 지출을 늘리며 장기보험 관련 상품 판매 확대에 힘쓰던 메리츠화재도 5.40%포인트 떨어진 23.47%를 기록하며 업계 중 하락 폭이 가장 컸다. 이어 NH농협손해보험(3.62%포인트↓), 한화손해보험(3.98%↓), 롯데손해보험(1.13%↓), MG손해보험(0.41%↓)도 사업비율이 떨어졌다.

손보사의 사업 비율이 낮아진 이유는 올해 본격 가동된 1200% 룰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올 초 도입된 1200% 룰은 보험설계사에게 지급되는 첫해 모집수수료를 특별수당을 포함해 월 납입액의 1200% 이하로 제한하는 것을 말한다.

손보사들의 사업비 절감은 곧바로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손보사들이 올해 1분기에 거둔 당기순이익은 1조317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1.5% 급증했다. 본업인 보험영업에서의 손실이 5490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59.0%나 줄어든 영향이 컸다.

사업비 절감에 따른 손보사의 실적 개선세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하나금융투자는 2분기 순이익이 메리츠화재가 전년 대비 22%, 현대해상이 15%, 삼성화재가 11%가량 각각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장기보험 시장 안정화와 설계사 수당 규제, 비대면 판매 확대 등 사업비를 감축할 수 있는 요인들이 겹치면서 손보사들의 실적 개선 흐름을 보이고 있다"며 "특히, 설계사의 초회 모집수수료를 제한한 1200% 룰이 적용되면서 보험사별로 과도한 인센티브 지급 경쟁에 따른 사업비 출혈이 줄어든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 1200% 룰 피해 편법 시상 등장

보험료 인상, 불완전판매 문제를 바로잡고자 '1200% 룰'을 도입했음에도 대형 GA를 중심으로 수수료를 선지급하는 등 편법 수법이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최근 일부 대형 GA는 소속 보험설계사에게 판매건수당 지급하는 시상수수료를 월 보험료의 300%에서 500%로 올렸다. 월 보험료가 5만원인 보험을 판매하면 다음달 설계사에게 25만원을 시상수수료로 지급하게 된다.

기존에 GA들은 보험사로부터 약 1100% 수수료를 받아, 800%를 비례(유지기간 비례) 수수료로, 나머지 300%를 설계사 시상 재원으로 각각 활용했다. 그러나 최근 일부 대형 GA는 자체적인 '추가 시상' 명목으로 특정 보험사 상품에 대해 월 보험료의 최대 200%를 추가로 지급하기 시작했다. 늘어난 시상을 고려하면 계약 1건당 첫해 모집수수료가 실질적으로 1300%로 확대되는 효과가 생긴다.

이어 보험업계는 대형 GA가 특정 보험사와 '이면 합의'를 거쳐 2년 차 수수료를 편법으로 선지급하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200%에 이르는 추가 시상이 특정 손보사 상품 위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대형 GA들은 특정 손보사 상품에 대해 자체 규정을 두고 상향된 시상수수료를 지급하는 실정이다. 손보업계 내에서는 이들 대형 GA가 특정 보험사와 이면 합의로 2년차 수수료를 선지급하는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손보사 관계자는 "GA의 시상수수료는 1200% 룰을 우회하는 지급 편법행위"라며 "원수사들도 상품 판매 등을 이유로 2년 차 수수료를 선지급하는 형태로 대형 GA의 편법 영업에 따라갈 수 있어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보험업계가 우려하는 부분은 1200% 룰 제정에도 편법적인 시상수수료 지급으로 규제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는 점이다. 비슷한 편법이 단기간에 업계 전반에서 악용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편법으로 1200% 룰을 우회하면 규제 도입 당시 기대했던 보험료 인하 효과나 불완전판매 근절을 기대하기 어렵다. 대형 GA가 여전히 원수사에 비해 우월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어 상품을 판매해야 하는 원수사가 '울며 겨자먹기'로 GA의 편법 영업에 따라갈 수 있다는 풀이다.

실제 1년 차 모집수수료 제한에도 전체적인 모집수수료는 비슷하거나 되려 상승해 사업비 절감이나 보험료 인하 등 효과에 의문이 제기된다는 지적도 나오는 형국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1200% 룰 시행 이전 모집 수수료는 평균 1400%였지만, 현재는 1~2년 차 합산 기준 1600%로 높아졌다"며 "이런 편법을 막지 못하면 과열 경쟁으로 인한 불완전판매 등 문제가 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GA업계는 1200% 룰 적용으로 실적이 악화된 만큼,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사실상 설계사 수수료가 줄어든 만큼 GA의 수익성이 악화해 편법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주요 GA의 실적은 올해부터 곤두박질하고 있다. GA업계에 따르면 GA 1호 상장사인 에이플러스에셋은 올해 1분기 1200% 룰 시행 영향으로 당기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4.4% 감소한 37억원을 기록했다. GA업계 1위인 GA코리아도 올해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6%, 글로벌금융판매도 전년 동기 대비 20%가량 감소했다.

GA 한 관계자는 "GA 수입 대부분이 수수료인 만큼, 1200% 룰 시행으로 가장 타격을 입은 업권은 GA"라며 "게다가 1200% 룰에는 GA 운영비와 관리비를 제외하고 보험사에서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비용을 제외하고 수수료, 시상까지 이 안에서 지급해야 하는 만큼, 1200% 룰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