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찬 칼럼] 기본소득, 재원대책 없으면 공약(空約)
2021-07-27 21:35
보편적 기본소득은 한 사회의 구성원 모두에게 일정 소득을 분배하는 보조금이다. 여기서 보편적이란 말은 개개인이 처한 경제적 상황에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동일한 액수를 적용한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에게 일률적으로 똑 같은 세금을 부과하는 보편적 세금인 인두세(head tax)의 역개념, 곧 역인두세(negative head tax)라 할 수 있다.
개인에게 돌아가는 실제 혜택은 보조금에서 세금을 뺀 액수다. 보조금 액수가 세금 액수와 같으면 그 개인이 받는 실제 혜택은 제로가 되고, 보조금보다 세금이 더 많으면 실제 혜택은 마이너스가 된다.
보편적 기본소득이 의미가 있으려면 세금이 개인의 소득과 환경에 따라 달라야 한다. 다시 말해 인두세가 없어야 한다. 보편적 세금인 인두세가 있으면 인두세만큼 보편적 기본소득이 상쇄되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세금은 인두세로 매기고, 보조금을 소득과 환경에 따라 달리 지급해도 보편적 기본소득과 마찬가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사람들은 소득이 높아지면 노동시간을 줄이고 여가시간을 많이 가지고자 한다. 기본소득이 생활에 충분한 소득이라면 일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기본소득은 최소생계비 개념이 될 수밖에 없다. 최소생계비 보장도 일할 인센티브를 줄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데 기여하기 때문에 장점이 단점보다 크다. 문제는 재원이다. 세금과 보조금 체계를 단순화해서 여기에 집중하면 가능하겠지만, 현재의 체계는 나름대로 필요가 있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바꾸기가 쉽지 않다. 이를 테면 나이든 사람들을 위한 연금, 의료혜택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공공 건강보험 등을 모두 없애고,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단일화하자고 하면 찬성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현재 많은 국가와 지방에서 시행하고 있는 기본 틀은 일정한 최저소득 제공과 소득에 따른 차등 세율이다. 일정 소득 이하인 사람들은 세금을 내지 않고 오히려 보조금을 받는다. 그 보조금 액수는 소득에 따라 다르다.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 제안이 실행가능한 재원대책이 없어 정책논쟁이 아닌 정치논쟁으로 격하된 것은 아쉬운 일이다. 허경영 후보의 국민배당금, 앤드루 양 후보의 자유배당금처럼 한때의 선거 구호로 기억될 것이다.
보편적 기본소득이라는 개념 자체는 살아 있다. 지식산업의 발전으로 고정비용이 늘어나고 가변비용이 줄어들어, 자본·노동 등 생산요소들 간의 소득 배분이 경쟁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개별적 또는 사회적인 협상에 의해 결정되는 시대가 되고 있다. 효율적이고 공정한 분배를 지향하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채수찬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수학과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 박사 ▷카이스트 대외부총장